靑 떠나는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인수위 없는 정부 출범부터 경제외교까지
"훈식이형!" 李 농담 건네기도
각별한 신뢰 속 국정 보좌
인사 검증 논란으로 사의 23일 만

"인수위도 없이 출범한 정부, 펜 한 자루 없이 시작된 청와대가 '대체불가 대한민국'을 꿈꿀 수 있게 되기까지 힘이 되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보고 듣고 겪은 사람들과 상황이 있기에 이재명 정부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은 가져갑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청와대는 성공한 정부에 더욱 가까워질 것입니다."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 곁을 지켰던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14일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성공한 정부를 만들겠다며 3선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고 청와대에 입성한 지 499일 만이다. 비상계엄과 탄핵의 혼란 속에서 국정 정상화를 이끌고 경제외교의 최전선까지 누볐지만, 잇따른 인사 검증 논란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한 이후 23일 만에 물러나게 됐다. 이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훈식이형'이라 부를 만큼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핵심 참모의 퇴장이었다.

강 실장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자신의 후임인 임광현 신임 비서실장을 직접 소개하며 마지막 임무를 마쳤다. 그는 "국민 여러분께 꼭 성공한 정부를 보여드리고 싶어 국회의원직을 내려놓았다고 말씀드렸던 마음은 그대로"라며 "오로지 그 일념으로 분투한 499일"이라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 마음에 보답하고 싶어 조급하지는 않았나 돌아보겠다"며 "더 잘할 수 있었던 순간들, 더 깊이 살펴야 했던 일들도 오래 기억하겠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강훈식 비서실장이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인구전략 비전선포식에 입장하고 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신임 비서실장으로 임광현 국세청장을 임명했다. 2026.10.14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강훈식 비서실장이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인구전략 비전선포식에 입장하고 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신임 비서실장으로 임광현 국세청장을 임명했다. 2026.10.14 연합뉴스

AD
원본보기 아이콘

3선 의원직 내려놓고 499일…국정 정상화부터 경제외교까지


강 실장의 청와대 생활은 지난해 6월 4일 이 대통령 취임과 함께 시작됐다. 충남 아산을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그는 의원직을 내려놓고 역대 첫 1970년대생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탁됐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조차 없이 출범한 정부에서 참모진을 꾸리고 국정운영 체계를 정비하는 일이 첫 과제였다. 이후 1년 4개월여 동안 당·정·청을 잇는 가교이자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로 국정 전반을 조율했다.


활동 반경은 청와대를 넘어 미국, 중동, 유럽 등을 아울렀다. 지난해 8월 한미 관세 협상 과정에서 극적으로 수지 와일스 미국 백악관 비서실장과 소통 채널을 구축했고, 대통령 전략경제협력 특사로 캐나다·폴란드·아랍에미리트(UAE) 등을 찾아 협상에 나섰다. 특히 올해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에너지 수급에 비상이 걸리자 지난 3~4월 두 차례 중동과 중앙아시아를 방문해 원유와 나프타 추가 도입을 위한 협상을 벌였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참모를 넘어 주요 국정 현안의 해결사 역할까지 맡은 셈이다.

이 과정에서 특유의 '스킨십 외교'도 빛을 발했다. UAE의 실세인 칼둔 아부다비 행정청장이 강 실장을 '형님'으로 여길 만큼 가까워졌고, 강 실장 역시 그를 '형제 칼둔'이라 부르며 '두쫀쿠'를 선물하는 등 친밀한 관계를 쌓았다. 두 사람의 신뢰는 650억달러 규모의 경제협력 합의로도 이어졌다.

대통령 전략경제협력 특사로 임명된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13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에서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로 출국하기 전 취재진과 약식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11.13 연합뉴스

대통령 전략경제협력 특사로 임명된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13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에서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로 출국하기 전 취재진과 약식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11.13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훈식이형, 땅 산 거 아녀?"…대통령의 각별한 신뢰 속 보좌


이 대통령과 강 실장의 관계는 공식 석상에서도 남달랐다. 지난해 12월 11일 세종시에서 열린 정부 부처 업무보고가 대표적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강 실장에게 "고향에 왔는데 한 말씀 하시지"라며 발언을 권한 뒤 "훈식이형, 땅 산 거 아녀?"라고 농담을 던졌다. 강 실장은 손사래를 치며 웃었고 행사장에도 한바탕 웃음 꽃이 피었다. 당시 인사청탁 논란에서 등장했던 '훈식이형'이라는 호칭을 이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면서 강 실장이 정치적 부담을 덜수 있는 계기가 됐다.


지난 1월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강 실장의 지방선거 차출 가능성과 관련해 두 사람을 '사랑하는 사이'로 표현한 질문이 나오자 이 대통령은 "저는 제 아내를 사랑합니다. 언제 사랑하는 사이로…. 징그러워"라며 농담으로 받아쳤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22년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강 실장은 이재명 후보의 정무조정실장을 맡았고, 지난해 대선에서도 종합상황실장으로 선거를 지휘했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과 국정 철학을 가까이서 이해해 온 핵심 참모였던 만큼 정책 조율과 정무 현안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도 강 실장에 대한 신뢰를 감추지 않았다.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강훈식 실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며 "황무지 벌판에서 시작된 국민주권정부를 조기에 안정시키고 국정을 정상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해주셨습니다"라고 썼다. 마지막 감사 인사에도 '훈식이형'이라는 호칭을 쓰며 각별한 신뢰감을 나타낸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아랍에미리트(UAE) 특사 방문을 마친 강훈식 비서실장에게 격려 발언을 한 뒤 웃고 있다. 2026.3.19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아랍에미리트(UAE) 특사 방문을 마친 강훈식 비서실장에게 격려 발언을 한 뒤 웃고 있다. 2026.3.19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사의 표명 23일 만에 퇴임…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인사 검증 실패 논란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에도 강 실장은 용혜인·김승원 장관 후보자 등의 연쇄 낙마로 검증 부실 논란에 직면했고, 국정 지지율 하락까지 겹치면서 청와대의 인적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지난달 21일 스스로 물러나기로 결단했다. 청와대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장으로서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책임을 지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AD

사의 표명 이후에도 강 실장은 23일 동안 대통령의 해외 순방과 주요 국정 현안을 챙겼다. 후임 인선을 둘러싸고 이 대통령의 고민이 길어지나 일각에선 유임 가능성까지 거론됐지만 결국 이날 후임 인선 발표에 이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인구전략 비전선포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공식 일정을 마쳤다.


15일자로 야인으로 돌아가는 그는 향후 서울시장이나 국무총리 후보군으로 다시 거론될 가능성이 있지만, 당분간 대외 활동을 자제하면서 다음 구상을 구체화 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 한식당에서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과 저녁 식사를 하며 식당 주인에게 술을 권하고 있다. 2026.2.9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 한식당에서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과 저녁 식사를 하며 식당 주인에게 술을 권하고 있다. 2026.2.9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