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민 KISTEP 인재전략센터장 인터뷰
여성 과기인 정책 연구에서 국가 인재전략 설계까지 25년
대형 연구과제 여성 책임자 9.2%…여전한 성장 장벽
출산·육아로 승진 밀렸던 경험, 여성 인재정책 문제의식으로
"AI 시대엔 질문하는 힘 중요…인재가 존중받는 나라 만들어야"
그런데 정작 자신이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는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여성 연구자의 임금격차를 연구하던 연구자가 출산과 육아로 자신의 승진이 밀리는 경험을 했다. 심정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인재전략센터장에게 여성 과학기술인의 경력 문제는 연구 대상이자 자신의 삶이었다. 그는 당시를 돌아보며 "한 번 밀리면 계속 밀리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박사학위 과정과 주요 정책과제, 두 아이의 육아가 겹쳤던 시절이었다.
2008년 제2차 여성과학기술인 육성·지원 기본계획 수립으로 정책 연구를 본격화한 그는 25년간 과학기술 인재정책을 연구해왔다. 올해 8월 31일 확정된 제5차 과학기술인재 육성·지원 기본계획(2026~2030)에서는 수립 사업의 최초 입안자이자 총괄부서장을 맡았다. 여성 인재를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에서 출발한 관심은 이제 그들이 어디에서, 어떤 기회를 얻고 성장할 수 있는가로 확장됐다.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의 2024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연구개발기관 신규채용 인력 중 여성은 31.9%였지만 보직자는 13.1%, 연구과제 책임자는 13.3%에 그쳤다. 연구비 10억원 이상 대형과제의 여성 책임자는 9.2%에 불과했다. 심 센터장은 최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에게 역량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 것"이라며 여성 과학기술인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과학기술 정책 연구자의 길은 어떻게 시작됐나.
▲처음부터 정책 연구를 하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외환위기(IMF) 시기에 졸업하고 민간기업에 다니면서 구조조정을 경험했다.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공공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고 우연히 KISTEP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입사 후에는 연구개발사업 평가와 예산 조정 업무 등을 담당했다. 본격적인 전환점은 2008년 제2차 여성과학기술인 육성·지원 기본계획을 맡으면서다. 주니어 연구자에게 국가 중장기계획을 담당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당시 여성 연구자의 연구 실태와 생산성, 성별 임금격차 등을 연구했다. 그 경험이 지금까지 인재정책을 연구하는 출발점이 됐다.
2008년 11월 18일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심의·확정한 '제2차 여성과학기술인 육성·지원 기본계획(2009~2013)' 문서. 심정민 KISTEP 인재전략센터장은 당시 이 계획 수립을 맡으며 과학기술 인재정책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원본보기 아이콘-여성 연구자의 경력 문제를 연구하다 자신도 그 문제를 경험했다.
▲과학기술계는 전문성이 높아 남녀 임금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 연구를 해보니 노동시장 구조에서 비롯되는 임금격차가 있었다. 그 무렵 나 역시 출산과 육아를 경험했다. 아이 둘의 터울이 20개월인데 박사학위 과정과 승진까지 겹쳐 있었다. 출산과 육아로 일정 기간 자리를 비우면서 실제로 승진에서 밀리기도 했다.
당시 '한 번 밀리면 계속 밀리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 미친 듯이 일했다. 한꺼번에 대여섯 개 과제를 맡기도 했다. 남편과 가족의 도움도 컸다. 늦었지만 박사학위를 마쳤고 승진도 했다. 그때까지는 정책을 남의 일처럼 연구했는데 어느 순간 나의 문제가 됐다. 지금은 두 딸이 엄마가 하는 일을 자랑스러워한다. 가끔 엄마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보람을 느낀다.
-여성의 이공계 진출은 늘었는데, 왜 고위직이나 대형 연구과제 책임자는 여전히 적을까.
▲여성 과학기술인의 경력을 흔히 'L자형'이라고 한다. 기술 변화가 빠르고 전문성이 중요한 분야여서 한 번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면 재진입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연구가 대형화·융합화되면서 초기부터 중요한 과제에 참여하고 연구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 출산과 육아로 그 과정에서 빠지면 다시 핵심 연구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전공별 편차도 크다. 여성들은 생명과학이나 바이오 분야에 상대적으로 많이 진출하지만 기계·전기전자·우주항공 등에는 적다. 실제로 2024년 자연계열 재학생의 여성 비율은 52.5%였지만 공학계열은 23.7%에 그쳤다. 여성들이 선택하는 전공과 산업의 인력 수요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여성의 이공계 진출을 늘리는 것에서 나아가 어떤 분야에서 어떤 기회를 갖고 성장하는지 살펴야 한다.
-여성의 학업 성취와 사회 진출이 확대된 만큼 지원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우리 조직에서도 최근 신규직원 9명을 채용했는데 8명이 여성이었다. 이런 현상만 보면 여성 지원 정책이 왜 필요하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교육과 노동시장 진입에서의 성과와 진입 이후의 성장은 다른 문제다. 여성들이 좋은 일자리를 얻고 경력을 유지하며 핵심 연구를 주도하고 고위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는 여전히 구조적 한계가 있다.
과거에는 여성 인재를 얼마나 많이 길러내느냐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이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한 이후에도 계속 성장하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성에게 협업이나 소통 능력이 강점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경력 초기부터 제공해야 한다.
-센터장으로서 조직을 이끄는 원칙은 무엇인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편하게 질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모르는 것을 스스럼없이 묻고 서로 토론하며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나에게도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도록 하려고 한다.
두 번째는 직원들의 성과를 밖에 잘 알리는 것이다. 우리 센터에는 여성 박사들이 많은데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자신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외부 전문가들을 만나면 후배 연구자들이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전문성을 가졌는지 구체적으로 소개하려 한다. 그렇게 알려진 성과가 새로운 네트워크와 기회로 이어진다. 좋은 결과를 낸 사람들이 제대로 드러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센터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제5차 과학기술인재 육성·지원 기본계획(2026~2030)의 3대 추진 전략. '과학기술인이 되고 싶은 나라, 과학기술인이 존중받는 나라'를 비전으로 인재의 성장과 활약을 위한 기회·보상 확대, 역동성·다양성 강화, 국가적 인재관리 체계 구축을 제시했다. 심정민 KISTEP 인재전략센터장은 이 계획의 수립을 총괄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원본보기 아이콘-제5차 과학기술인재 육성·지원 기본계획에서 가장 중요하게 본 문제는 무엇인가.
▲과학기술 인재가 중요하다는 말은 누구나 한다. 그런데 정작 과학기술을 공부하는 학생이나 현장에서 일하는 연구자들에게 미래의 비전이 충분히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오랫동안 공부하고 높은 전문성을 갖춰도 원하는 일자리를 얻고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정규직 연구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고 연구 자율성이나 행정 부담 등의 문제도 남아 있다.
그래서 이번 계획에서는 단순히 인재를 많이 양성하는 것보다 길러낸 인재들이 현장에서 성장하고 활약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좋은 연구 일자리와 합당한 보상, 안정적인 연구 환경이 필요하다. 이번 계획의 비전도 '과학기술인이 되고 싶은 나라, 과학기술인이 존중받는 나라'다.
해외로 나가는 인재를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좋은 환경에서 경험을 쌓고 다시 돌아오거나 해외에 있더라도 국내 연구자들과 협력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국가에 도움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인재 유출을 막는 것보다 인재들이 돌아오고 싶어 할 만한 연구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AI 시대에 필요한 인재의 조건과 젊은 여성 연구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하는 힘이다. 나도 챗GPT와 클로드, 제미나이 등을 사용하는데 AI가 내놓은 답이 이상하면 다시 질문하고 근거를 따져 묻는다. AI는 답을 제시하지만 무엇을 궁금해하고 어떤 문제를 제기할지는 사람이 결정해야 한다. 프롬프트를 잘 작성하는 기술보다 '왜 그럴까'라고 묻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근거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특히 젊은 여성 연구자들에게는 자기 분야의 전문성을 쌓고 성과를 적극적으로 알리라고 말하고 싶다. 일을 잘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도 있다. 자신의 역량을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어야 새로운 기회도 만들어진다.
-앞으로 꼭 해결하고 싶은 과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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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지역 인재의 일자리와 AI가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이다. 지역에서 인재를 길러내도 좋은 일자리가 없으면 머물기 어렵다. AI가 기존 일자리를 어떻게 바꾸고 어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낼지도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막연한 대안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할 정책을 만들고 싶다.
오랫동안 국가 중장기계획을 수립하면서 정책의 연속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새로운 정책을 내놓는 것도 필요하지만 실제 효과가 나타나려면 시간이 걸린다. 예전에 어떤 전문가에게 '영혼이 담기지 않은 계획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모든 계획에 나름대로 영혼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이번 기본계획도 문서로만 남지 않고 실제 현장에서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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