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조사 절차 흠결 정조준… 공정위 vs 기업 ‘적법절차’ 다툼 본격화[Invest&Law]
쿠팡·한화 등 협조 관행 깨고
현장조사·자료제출명령 거부
법원도 한화 측 신청 인용
법조계 “근본 절차 정비 시급”
무분별 디지털 포렌식 등 대응
통신비밀보호 관련 법리 추가
공정거래위원회의 고강도 현장조사에 대한 기업들의 대응 기류가 180도 달라지고 있다. 공정위의 포괄적인 자료 요구에 묵묵히 협조해오던 관행이 깨지고, 쿠팡의 현장조사 전면 거부와 한화의 자료제출명령 효력정지 신청 사례처럼 '절차적 위법성'을 정면으로 다투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서울고등법원이 한화 측의 신청을 인용하며 법원마저 기업의 손을 들어주면서, 조사권을 지나치게 넓게 해석하는 공정위의 무리한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는 분석이다.
무리한 휴대전화 영치에 법원 "효력 정지"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9일 서울고법 행정7부(권순형 재판장)는 한화와 한화 직원 A씨가 공정위를 상대로 낸 자료제출명령 효력정지 신청을 인용했다. 이에 따라 공정위가 한화 측에 부과한 자료제출명령은 내년 1월31일까지 그 효력이 정지된다.
이번 사건은 공정위가 지난 7월 한화의 기업브랜드 사용료 내부 거래 의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한화 측에 따르면 당시 공정위 조사관은 한화 직원의 휴대전화 화면을 직접 만지며 문자를 열람했고, 이후 휴대전화를 장시간 조사실에 영치하면서 보관조서조차 교부하지 않았다. 직원 개인 휴대전화는 단순한 업무자료뿐만 아니라 사적인 대화와 제3자의 정보, 영업 비밀 등 민감한 정보가 함께 저장돼 있는 매체다. 이에도 불구 공정위는 해당 직원이 문자메시지 제출을 거부하자 캡처본이 담긴 USB를 내라며 별도의 자료제출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한화는 이에 불복해 결국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다.
재판부는 "공정위의 처분으로 한화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효력을 정지할 긴급한 필요가 있다"며 한화 측의 손을 들어줬다.
로펌들 "공정위, 조사권 범위 자의적 해석"
이번 법원의 결정을 계기로 법조계에서는 공정위 현장조사의 근본적인 절차 정비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검찰의 강제수사는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을 거쳐 통제받는 반면, 공정위의 현장조사는 행정조사라는 이유로 사후에 적법성을 다투는 방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어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행정조사권의 범위를 과도하게 넓게 해석해 내부망이나 개인 휴대전화 등 무관한 정보까지 가져가는 절차적 문제가 잇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 현장조사에서 기업 측을 대리해온 한 변호사는 "조사 공문에 '부당지원 관련 법조문' 하나 기재해 놓고, '무엇이 나올지 모르니 일단 다 뒤져보겠다'는 식의 무제한적 강제조사에 가깝게 회사 내부망 전체를 열람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포괄적으로 자료를 요구한 뒤, 이를 가져오지 않으면 조사 기간을 일주일씩 늘리는 식의 압박도 빈번하다"면서 "사실상 영장이 없는 강제조사를 하는 셈"이라고 했다. 다른 로펌의 공정거래전문 변호사도 "최근 로펌들은 공정위의 무분별한 디지털 포렌식 등에 대응하기 위해 '헌법상 통신의 자유와 통신비밀보호' 관련 법리를 적극적으로 추가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공정위의 조사 관행은 대법원 판례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이 기업 측의 주장이다. 과거 공정위 조사관이 삼성전자의 사내 전산망 전체에 대한 열람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해 과태료를 부과한 사건에서, 2010년 8월 수원지법 민사항소4부(백강진 재판장)는 "전산망 전체에 대한 무제한적 열람 요구는 최소한의 범위 내 조사가 아니라 영장의 대상인 수색에 더 가까운 행위"라며 과태료 부과 처분을 취소했고, 이 결정은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된 바 있다.
행정조사 절차적 흠결 다툼 본격화
이 같은 절차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공정위와의 관계 등을 고려해 그간 이를 법정에서 '적법절차 위반'으로 다투기가 쉽지 않았다. 현장에서 공정위가 요구해 작성하는 '조사과정 확인서'에 서명하는 관행 때문이다. 하지만 현행 공정거래법은 현장진입을 저지하거나 지연시키고, 자료제출명령에 응하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거부할 경우 무거운 처벌이 뒤따를 수 있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기업 측의 동의를 과연 '온전한 자발적 동의'로 볼 수 있는지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관행에 정면으로 맞서는 사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공정위 조사관이 공유폴더 전체를 보여달라고 요구하자 이를 거부하고, 조사관의 '조사거부 확인서' 작성 요구에 "자료를 특정하지 않고 무제한적 열람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돼 거부한다"는 취지의 판례까지 명시하여 확인서를 작성한 사례도 있다. 한 변호사는 "쿠팡의 자료제출 거부 사건 이후, 기업들이 공정위 요구에 무조건 협조하기보다 '규정대로 요구하면 협조하고 규정 밖의 요구는 거부한다'는 방향으로 기류가 바뀔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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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형 로펌의 조세 및 세무 전문 변호사는 "과거 세무조사도 장부와 컴퓨터를 무작정 가져가는 관행이 있었지만, 중복 조사 등 절차적 위법성이 인정돼 과세 처분 자체가 취소되는 판결들이 이어지면서 국세기본법 절차가 크게 선진화됐다"고 했다. 그는 "이에 비해 공정거래법의 조사 규정과 적법 절차 규정은 형사소송법이나 세법에 비해 너무나 원시적인 수준"이라면서 "결과의 정당성만큼 적법절차도 중요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인 만큼, 관련 분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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