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산 마지막 구간 열린다
1·21사태 이후 제한된 남서자락 개방
인왕산·남산·청와대·경복궁 조망 1.32㎞
돌고래쉼터서 만세동방·1·21사태 소나무까지
1968년 1·21사태 이후 출입이 제한됐던 명승 서울 백악산(북악산)의 단계별 개방이 마지막 남서 자락으로 마무리된다. 국가유산청은 16일 한양도성 창의문에서 기념행사를 열고, 17일 오전 9시부터 1.32㎞ 구간을 국민에게 개방한다.
17일 오전 9시 개방되는 백악산 남서자락 1.32km 구간은 돌고래쉼터에서 만세동방 약수터, 1·21사태 소나무까지 이어진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돌고래 쉼터에서 1·21사태 소나무까지
이번 개방 구간은 창의문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처음 나오는 돌고래 쉼터에서 출발한다. 인왕산, 남산, 청와대,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탐방로를 거쳐 만세동방 약수터와 1·21사태 소나무까지 이어진다. 소나무 숲과 암반이 어우러진 길에선 인왕산과 마주한 산세를 볼 수 있다. 조망 쉼터 네 곳도 새로 들어섰다.
3단계 사업은 다섯 기관이 역할을 나눠 추진했다. 국가유산청은 명승의 가치 보존과 역사문화 탐방환경 조성을 맡았다. 대통령경호처는 경호·경비와 탐방 안전이 조화를 이루도록 개방과 안전관리를 도왔다. 서울시와 종로구는 탐방로 정비와 현장 관리, 지역사회 협력을 뒷받침했고, 국가유산진흥원은 현장 운영과 활용을 지원했다.
한양의 북쪽 주산
백악산은 한양을 둘러싼 내사산(內四山) 가운데 가장 높은 342m다. 2009년 12월 9일 명승 제67호 '서울 백악산 일원'으로 지정됐다. 면적은 약 360만㎡다. 산림청이 소유자에 포함되고, 관리는 서울특별시가 맡는다.
국가유산청은 풍수상 도읍의 북쪽을 지키는 주산으로 본다. 조선왕조가 도성을 정한 사상과 지형의 원리를 보여주는 산이라는 평가다. 경복궁 후원으로서 소나무 중심의 조선시대 경관 조성 원리를 간직한 점도 가치로 꼽는다. 지정 명칭에는 일제강점기 이후 널리 쓰인 북악산 대신 조선시대에 가장 많이 불린 백악산이 쓰였다.
한양도성 축조는 조선 태조 때 이 산을 기점으로 시작됐다. 정도전이 5만9500자로 잰 성곽 둘레는 아흔일곱 구간으로 나뉘어 천자문 글자로 번호가 매겨졌다. 산 정상의 '천(天)'에서 동쪽으로 한 바퀴 돌아 다시 산에 닿는 순서다. 도성은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백악산 서쪽 기슭에는 자하문으로도 불리는 도성의 북소문인 창의문이 있다. 사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조선시대 모습을 간직한 문이다. 문루는 영조 때 중건됐고, 2015년 보물 제1881호로 지정됐다.
한양도성은 백악산을 기점으로 축조됐다. 1968년 1·21사태 이후 출입이 제한된 이 산은 2020년 1단계, 2022년 2단계에 이어 3단계 개방으로 주요 탐방로가 하나로 연결된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원본보기 아이콘1968년 닫힌 길, 단계별로 열리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 서른한 명이 청와대 습격을 노리고 서울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했다. 이들은 군경과 교전한 끝에 북악산과 인왕산 일대로 달아났다. 당시 탄흔은 이번 3단계 구간이 닿는 1·21사태 소나무에 남아 있다. 사건 이후 일대는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일반인 출입이 제한됐다.
통제는 40년 가까이 이어졌다. 개방은 서울성곽 일대 전면 개방 계획에 따라 단계적으로 추진됐다. 당시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노무현 대통령의 개방 의지와 결단이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2006년 4월 홍련사~숙정문~촛대바위 구간 1.1㎞가 먼저 열렸고, 이듬해 4월에는 와룡공원~숙정문~청운대~백악마루~창의문 구간 4.3㎞ 성곽길이 개방됐다.
이 길에는 곡장과 청운대, 백악마루가 있다. 곡장은 방어를 위해 성벽 일부를 바깥으로 내밀어 쌓은 곳이다. 청운대는 한양도성 전체에서 조망이 가장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백악마루는 도성의 최고봉이다.
2020년에는 1단계로 북측 한양도성 탐방길 2.2㎞가, 2022년에는 2단계로 남동 자락 숲 일대 3.0㎞가 열렸다. 북측 탐방길에는 청운대~곡장 구간 성벽 바깥쪽 300m가 포함돼, 축조 시기별 성벽의 차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통제 시기의 군 시설물 일부는 '기억의 공간'으로 보존된다. 이렇게 열린 길에 남서자락 1.32㎞가 더해지면서 백악산의 주요 탐방로는 하나로 이어진다.
한양도성은 백악산을 기점으로 축조됐다. 1968년 1·21사태 이후 출입이 제한된 이 산은 2020년 1단계, 2022년 2단계에 이어 3단계 개방으로 주요 탐방로가 하나로 연결된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원본보기 아이콘백악산에 남은 유산
백악산은 한양도성을 비롯해 부아암, 삼태성바위, 만세동방 약수터, 촛대바위, 말바위, 백악신사, 청계천 발원지, 법흥사 터에 얽힌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다.
만세동방 약수터 위 바위에는 '만세동방 성수남극(萬世東方 聖壽南極)'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는 뜻이다. 글을 남긴 이와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약수터는 2022년 주변 자연석을 활용해 정비됐다.
촛대바위는 숙정문에서 북서쪽으로 약 400m 떨어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상단에는 쇠말뚝이 박혔다. 광복 뒤 제거되고 촛대가 세워지면서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정상부에는 진국백(鎭國伯)이라는 여신을 모신 백악신사가 있었다. 숙정문 개방 뒤 문화재청은 신사가 섰던 산마루에 '백악산 342m' 표지석을 설치했다.
서쪽 자하문 고개에는 청계천 발원지로 알려진 약수터가 있다. 1·21사태 때 순직한 최규식 경무관 동상에서 정상 쪽으로 약 150m 떨어진 곳이다. 남측 탐방로에는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사찰로 전해지는 법흥사 터가 남아 있다.
한양도성은 백악산을 기점으로 축조됐다. 1968년 1·21사태 이후 출입이 제한된 이 산은 2020년 1단계, 2022년 2단계에 이어 3단계 개방으로 주요 탐방로가 하나로 연결된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원본보기 아이콘청와대 복귀에도 이어진 개방
경호처는 지난 3월 대통령의 청와대 복귀 뒤에도 탐방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밝혔다. 수도방위사령부와 협력해 경호·경비 체계는 유지하되 시민의 이용에는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국가유산청은 당시 창의문·청운대·곡장·숙정문·말바위·삼청의 안내소 여섯 곳을 다시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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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권 대통령경호처장은 13일 개방 계획을 알리며 "북악산을 온전히 국민께 돌려드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국가유산청은 이에 맞춰 한양도성, 경복궁, 청와대와 연계한 탐방·해설·활용 프로그램을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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