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책]가짜 돈 진짜 부 外
AD
원본보기 아이콘

가짜 돈 진짜 부

성실하게 저축했는데 왜 자산 격차는 더 벌어졌을까. 박종훈은 그 질문을 개인의 투자 실패가 아니라 돈 자체의 변질에서 시작한다. 1980년 무렵 최고 연 41.6%까지 올랐던 재형저축 금리와, 1979년 2100만원이던 은마아파트가 43억원까지 오른 시간을 나란히 놓으면 '성실의 배신'이라는 표현이 과장만은 아니다. 새 돈은 모두에게 동시에 도착하지 않는다. 담보와 신용을 가진 사람은 싼 금리로 먼저 자산을 사고, 임금과 예금에 의존하는 사람은 가격이 오른 뒤에야 그 돈을 만난다. 로마 은화에서 오늘의 달러와 원화, AI가 끌어올리는 구리·전력 수요까지 건너가는 1부가 '돈의 가치'를 다룬다면, 뒤에서는 미국 10년물 국채와 재정적자, 사모대출, 스테이블코인까지 불러내 '돈의 가격'이 반격하는 국면을 짚는다.


마지막 4부에선 재테크책의 표정이 선명해진다. 장기채를 무조건 안전자산으로 믿지 말 것, 자산을 폭풍에 버티는 '닻'과 성장의 바람을 받는 '돛'으로 나눌 것, 달러와 위험자산도 한 번에 베팅하지 말 것. 특히 폭락장에서 "세일은 버틸 수 있는 사람에게만 세일"이라는 논리는 책 전체의 문제의식을 압축한다. 생활비를 헐거나 빚을 얹은 계좌에는 같은 하락도 강제 청산으로 온다. 거시경제와 투자전략을 한 권 안에 모두 넣다 보니 몇몇 대목은 전망의 확신이 앞서지만, 금리·환율·주가를 별개의 뉴스로 보지 않고 '누가 먼저 돈을 받고, 누가 나중에 청구서를 받는가'라는 하나의 구조로 엮는 설명은 분명하다. 부를 만드는 기술보다 먼저, 내가 들고 있는 돈이 정말 안전한가부터 의심하게 한다. (박종훈 지음ㅣ글로퍼스)

[이 주의 책]가짜 돈 진짜 부 外 원본보기 아이콘

특별함을 만드는 일

특별한 브랜드는 대개 처음부터 특별하지 않았다. 아크네 스튜디오는 패션회사가 아니라 광고기획사에서 출발했고, 알로는 이미 의류 제조업을 하던 두 창업자가 자신들이 매일 하던 요가의 경험을 사업에 겹치며 태어났다. 조엘 킴벡은 이런 출발점에서 '독창성'의 신화를 조금 걷어낸다.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발명하기보다, 이미 잘 아는 것과 잘하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조합하고 그것을 오래 밀어붙인 결과가 브랜드의 스테이터스가 된다는 것이다. 아크네, 아우구스티누스 바더, 자크뮈스, 톰 포드, 토템에서 출발해 루이비통·바이레도·알로를 지나 글로시에·에르메스·티파니까지 이어지는 구성도 '탄생-확장-지속'이라는 브랜드의 시간에 맞춰져 있다.


현장감은 해외 진출을 다루는 장에서 특히 살아난다. 한국에서 성공한 이름과 콘셉트가 미국에서는 문화적 맥락을 잘못 읽은 탓에 진입부터 막힐 수 있고, 세포라는 단순한 판매처가 아니라 소비자가 낯선 브랜드를 시험해보는 거대한 체험 플랫폼이 된다. 글로시에는 온라인 직판의 성공 공식을 고집하다가 결국 세포라에 들어가며 2023년 매출을 크게 끌어올렸다. 한편 저자는 일본의 이세이 미야케·꼼데가르송·시세이도·산토리·닷사이·호시노 리조트를 나란히 놓고, 한국 브랜드가 'K'라는 관심이 식은 뒤에도 무엇으로 기억될지를 묻는다. 패션·뷰티와 럭셔리 사례에 무게가 쏠린 한계는 있지만, 20여 년간 글로벌 브랜드의 전략과 비주얼을 직접 다뤄온 사람이 말하는 '특별함'은 광고 문구보다 선택의 일관성에 가깝다. 유행을 따라가는 감각보다, 유행이 지나도 버리지 않을 기준 하나를 먼저 가지라는 책이다. (조엘 킴벡 지음ㅣ북스톤)

[이 주의 책]가짜 돈 진짜 부 外 원본보기 아이콘

성장이 우리를 구한다는 거짓말

GDP가 늘면 사회는 정말 나아지는가. 티모테 파리크는 탈성장을 도덕적 절제나 '덜 소비하자'는 생활운동에서 꺼내 경제학의 논쟁대로 옮긴다. 돌봄과 여가, 공동체와 건강한 환경은 GDP에 희미하게 잡히지만 환경 복구비나 사고 처리비처럼 사회적 손실에서 발생한 지출도 경제활동으로 계산된다. 더 근본적인 반론은 '녹색성장'에 향한다. 기술이 효율을 높이면 성장과 환경 파괴를 분리할 수 있다는 탈동조화 논리를 수백 편의 연구와 함께 검토한 뒤, 효율 향상보다 생산 확대가 더 빠르게 진행되는 현실과 반등효과를 문제 삼는다. 개인은 소득, 기업은 이윤, 정부는 GDP를 늘리려는 세 개의 '속도계'가 서로를 가속하는 구조에서는 친환경 기술조차 더 많은 생산과 소비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파리크가 단순한 성장 반대론자와 갈라지는 곳은 그 다음이다. 5장의 탈성장 사상사를 지나 '무엇을 대신 세울 것인가'로 넘어가면서 기업의 생산 사명을 명문화하고, 다중 이해관계자가 이를 정하며, 외부 기관이 사회적 필요와의 부합 여부를 심사하는 구상까지 내놓는다. 탈성장이 노동자에게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는 '생태적 긴축' 아니냐는 비판도 12가지 쟁점과 부록에서 직접 상대한다. 물론 시장·가격·사유재산·화폐를 포스트성장 사회에서 어떻게 배치할지는 여전히 빈칸이 많고, 저자 스스로 그 어려움을 감추지 않는다. 그래서 더 읽을 만하다. '성장을 멈추자'는 구호보다 훨씬 까다로운 질문, 무엇은 줄이고 무엇은 오히려 늘려야 인간의 삶이 풍요로워지는가를 경제의 중심으로 끌어온다. 성장률이 사회의 목적이 된 순간부터 놓쳐온 것들을 다시 계산하게 하는 책이다. (티모테 파리크 지음ㅣ이미옥·박대진·전광철 옮김ㅣ착한책가게)


[이 주의 책]가짜 돈 진짜 부 外 원본보기 아이콘

슬로 브랜딩

브랜드를 빨리 알리는 기술은 많아졌지만,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시간까지 단축되지는 않는다. 30년 넘게 일본 브랜딩 현장에서 일한 에가미 다카오는 그 간극을 '슬로 브랜딩'이라 부른다. 그가 말하는 느림은 광고를 덜 하거나 신제품을 늦게 내놓으라는 뜻이 아니다. 지적장애인과 함께 포도를 기르고 야생 효모를 고집하는 코코 팜 와이너리, 인간의 존엄을 경영 원칙으로 삼은 브루넬로 쿠치넬리, 제초제와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다나베 농장, 5대 장인의 전통을 현대 신발로 옮긴 나이토를 따라가며, 고객의 머릿속에 브랜드가 '축적된 기억'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보여준다. 애착 인형을 호텔에 두고 간 아이에게 인형의 '휴가 사진'을 보내준 리츠칼튼 사례도 같은 맥락이다. 매뉴얼 밖의 수고가 때로 광고보다 오래 남는다.


'비효율'을 찬양하는 책으로 읽으면 핵심을 놓치기 쉽다. 저자가 끝내 묻는 것은 무엇을 위해 그 비효율을 감수하는가다. 브랜드를 경쟁사와 다른 특징의 묶음이 아니라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으로 옮기고, 마케팅을 당장의 고객 확보, 브랜딩을 지속적인 가치 축적으로 구분한다. 두 배 비싼 바나나도, 로고가 보이지 않는 옷도 그 선택 전체가 하나의 철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설득력을 갖는다. 속도를 늦추라는 처방보다 더 까다로운 주문이 남는다. 오늘의 성과를 위해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정하라는 것. 오래가는 브랜드는 유행을 천천히 좇는 브랜드가 아니라, 변하지 않을 이유를 먼저 가진 브랜드다. (에가미 다카오 지음ㅣ최지현 옮김ㅣ김영사)


[이 주의 책]가짜 돈 진짜 부 外 원본보기 아이콘

자각하는 우주

2008년 세균성 수막뇌염으로 이븐 알렉산더는 일주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 신피질을 비롯한 뇌 기능이 심각하게 손상됐던 그 기간에 오히려 이전보다 생생한 의식 상태를 경험했다는 그의 주장은 앞서 '나는 천국을 보았다'를 세계적 논쟁작으로 만들었다. '자각하는 우주'는 그 경험을 다시 들려주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신경외과 수술을 4000건 넘게 집도했던 의사가 카렌 뉴웰과 함께 '뇌가 의식을 생산한다'는 전제를 의심하며 신경과학, 심리철학, 양자물리학, 임사체험 연구를 528쪽에 걸쳐 엮는다. '진정한 난제'에서 '원초적 마음 가설', 기도와 명상, 자유의지, 양자 측정 문제까지 가는 목차 자체가 이 책의 야심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 책은 과학서와 영성서 사이의 위험한 경계에 서 있다. 알렉산더는 자신의 임사체험을 토대로 뇌를 의식의 발생지가 아니라 더 거대한 의식을 받아들이는 일종의 통로로 해석하고, 인간을 '우주가 스스로를 자각하는 창구'로 본다. 개인적 체험에서 우주의 존재론으로 넘어가는 이 도약을 과학적으로 입증된 결론처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오히려 하나의 형이상학적 가설이자 삶의 태도에 관한 제안으로 읽을 때 책이 더 흥미로워진다. 후반부가 결국 사랑과 연민, 연결감, 죽음 이후보다 지금 어떻게 살 것인가로 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의식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난제를 해결했다기보다, 유물론적 설명만으로는 무엇이 남는지를 집요하게 묻는 책이다. (이븐 알렉산더·카렌 뉴웰 지음ㅣ옥스퍼드 휴먼즈 옮김ㅣ김영사)


[이 주의 책]가짜 돈 진짜 부 外 원본보기 아이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탐정 롤랑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사건은 자기 자신이다. 흥신소 주인 위트가 은퇴하자, 기억을 잃은 채 그에게서 '롤랑'이라는 이름을 받아 살아온 남자는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가진 것은 귀퉁이가 떨어진 사진 한 장과 부고 같은 빈약한 단서뿐이다. 바의 피아니스트, 정원사, 사진사, 오래된 주소와 전화번호부를 따라가며 그는 어떤 사진 속 남자가 자신이었을지 추측하고, 한때 가까웠을지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을 붙잡는다. 단서는 늘 다음 단서를 낳지만, 퍼즐은 완성되는 대신 갈수록 흔들린다. 1978년 공쿠르상을 받은 모디아노의 대표작이 탐정소설의 외형을 취하면서도 추리의 쾌감과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유다.

AD

모디아노에게 기억은 발굴하면 온전히 되찾을 수 있는 저장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고, 사진은 증거가 되기보다 또 다른 의심을 만든다. 개인의 기억상실 뒤에는 전쟁과 점령, 유대인 박해가 남긴 프랑스 사회의 집단적 망각도 어른거린다. 그래서 롤랑이 찾는 것은 이름 하나가 아니라, 한 시대가 지워버린 사람들의 흔적에 가깝다. 로마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까지 이어지는 추적 끝에도 과거는 환하게 복원되지 않는다. 발자국이 잠시 남았다 사라지는 모래처럼, 인간의 정체성도 몇 사람의 기억과 낡은 명부 속에서 겨우 형태를 얻었다가 다시 흐려진다. 기억을 되찾는 소설처럼 시작해, 끝내 인간이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ㅣ김화영 옮김ㅣ문학동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