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이주의 전시는 전국 각지의 전시 중 한 주간 만나볼 수 있는 다양하고 매력적인 전시를 정리해 소개합니다.
우병윤의 ‘들떠 있는 풍경 Floating Landscape 26-09-329’. 평평한 석고 바탕을 반복해 긁어내며 흰 선을 드러내고, 그 선의 밀도로 산의 윤곽과 공간감을 만들어낸 작품이다. 선화랑

우병윤의 ‘들떠 있는 풍경 Floating Landscape 26-09-329’. 평평한 석고 바탕을 반복해 긁어내며 흰 선을 드러내고, 그 선의 밀도로 산의 윤곽과 공간감을 만들어낸 작품이다. 선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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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윤 개인전 '중첩: 들떠 있는 풍경'

풍경은 그려 넣기보다 긁어낸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우병윤은 자연을 자신의 감정이나 기억을 투사하는 배경으로 삼지 않는다. 인간의 시선과 무관하게 이어지는 세계, 그 안에 인간 역시 잠시 포함돼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선화랑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는 기존 '중첩(Superposition)' 연작과 이를 확장한 신작 '들떠 있는 풍경(Floating Landscape)' 등 회화 32점이 나온다. 물질의 표면을 탐구하던 작업이 산의 윤곽과 공간을 가진 풍경으로 이동한 변화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우병윤의 ‘중첩重疊 Superposition 26-01-301’. 석고를 쌓고 채색한 표면을 다시 긁어내며 만든 선들이 파도와 산, 재료의 결 사이를 오가는 작품이다. 선화랑

우병윤의 ‘중첩重疊 Superposition 26-01-301’. 석고를 쌓고 채색한 표면을 다시 긁어내며 만든 선들이 파도와 산, 재료의 결 사이를 오가는 작품이다. 선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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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첩' 연작은 나무 패널에 석고를 올려 요철을 만들고 색을 칠한 뒤 다시 긁어내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신작에서는 평평한 석고 바탕을 채색하고 한 방향으로 반복해 긁어 흰 석고를 노출시킨다. 색을 더할수록이 아니라 덜어낼수록 산의 윤곽과 부피가 생긴다. 그 위를 일정한 수평선과 수직선이 가로지르며 방금 만들어진 깊이를 다시 평면으로 되돌린다. 전시 제목의 '들떠 있음'은 그래서 공중에 떠 있다는 뜻보다 자연과 인간, 추상과 풍경, 평면과 깊이 가운데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정착하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 전시는 11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선화랑.


양하의 ‘A Very Tiny Event_2’. 문과 창처럼 안과 밖을 나누는 형상 사이에 사건의 흔적을 남겨, 이미 지나간 일과 아직 오지 않은 장면을 함께 상상하게 한다. FIM

양하의 ‘A Very Tiny Event_2’. 문과 창처럼 안과 밖을 나누는 형상 사이에 사건의 흔적을 남겨, 이미 지나간 일과 아직 오지 않은 장면을 함께 상상하게 한다. F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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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하 개인전 'Over there'

편지는 도착하는 순간 이미 누군가의 과거가 된다. 암스테르담과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는 양하는 이번 개인전에서 '이동'과 '경계', 그리고 무언가가 전달되는 '메시지'에 주목한다. 멀리서 출발한 것이 다른 장소와 시간에 도달했을 때 그 의미는 처음과 같을 수 없다. 작가의 회화에서도 익숙한 사물과 장면은 원래의 맥락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문과 아치, 창처럼 안과 밖을 가르는 형상은 화면 너머에 있을 또 다른 장면을 상상하게 한다. 사건을 직접 보여주기보다 사라진 인물과 주변의 흔적을 남겨, 이미 지나간 일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한 화면에 겹쳐 있는 듯한 긴장을 만든다.

양하의 ‘A Very Tiny Event_8’. 익숙한 사물과 풍경을 본래 맥락에서 비껴놓으며, 이미지가 이동하고 다시 해석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FIM

양하의 ‘A Very Tiny Event_8’. 익숙한 사물과 풍경을 본래 맥락에서 비껴놓으며, 이미지가 이동하고 다시 해석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F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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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그 이동은 실제 물질의 이력으로도 이어진다. 한국 창원에서 네덜란드 아른헴으로 산업용 기계를 운송할 때 사용한 방수포와 고정용 끈이 전시장에서는 조각적 기둥으로 바뀐다. 수개월 동안 이동하며 생긴 먼지와 흔적, 실제 운송 송장은 그대로 남겨두고 작가가 반복해온 도상을 자수로 덧붙였다. 한쪽에는 사물이 이동한 기록이, 다른 한쪽에는 이미지가 이동해온 시간이 놓이는 셈이다. 경계를 나누던 것이 이동하면서 경계를 흔드는 장치가 되고, 저쪽의 것이 이쪽에 도착하면서 다시 해석된다. 회화와 설치 20여 점을 하나의 '바다를 건너온 편지'처럼 읽게 하는 전시다. 11월 14일까지, 서울 용산구 F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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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용의 ‘Reality+Image 2511-2619’. 벽돌의 형상을 입방체로 환원하고 색과 그림자의 반복을 통해 평면 위에 실제 공간처럼 보이는 깊이를 만든 작품이다. 표갤러리

김강용의 ‘Reality+Image 2511-2619’. 벽돌의 형상을 입방체로 환원하고 색과 그림자의 반복을 통해 평면 위에 실제 공간처럼 보이는 깊이를 만든 작품이다. 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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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용 개인전 'KIM KANG YONG: REALITY IMAGE'

벽돌이 사라질수록 김강용의 그림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보게 한다. 반세기 가까이 '벽돌 작가'로 불려온 그는 1970년대 산업화와 도시개발 속에서 대량생산되는 익명의 단위인 벽돌에 주목했다. 같은 모양의 벽돌이 반복돼 건물과 도시를 이루는 모습은 개인과 집단, 존재와 익명성의 관계를 보여주는 장치였다. 이번 전시는 그 벽돌을 얼마나 정교하게 그렸는가보다, 오랜 반복 끝에 그의 시선이 벽돌 사이의 간격과 여백, 빛과 그림자로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따라간다.

김강용의 ‘Reality+Image 2511-2597’. 푸른 화면 위 두 개의 입방체와 그림자만을 남겨 실재와 이미지, 평면과 공간 사이에서 흔들리는 시선을 드러낸다. 표갤러리

김강용의 ‘Reality+Image 2511-2597’. 푸른 화면 위 두 개의 입방체와 그림자만을 남겨 실재와 이미지, 평면과 공간 사이에서 흔들리는 시선을 드러낸다. 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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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면에서는 벽돌의 형상마저 입방체로 단순해지고, 그 사이의 빈 공간이 더 넓어진다. 실제 모래와 물감을 섞어 만든 표면은 가까이서 보면 거칠고 평평하지만 몇 걸음 물러서면 입방체가 튀어나오거나 안으로 들어간 듯한 깊이를 만든다. 실제와 이미지, 평면과 공간이 보는 거리에 따라 뒤집히는 것이다. 한때 현실의 벽돌에서 시작한 질문은 이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으며 그것을 왜 실재라고 믿는가'라는 문제로 옮겨왔다. 벽돌을 지워온 자리에 결국 남은 것은 이미지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10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표갤러리.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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