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잡겠다던 정부의 상한선
결국 정유사에 '사인' 보낸 형국
사라진 경쟁 투명한 가격의 역설

[The View]정부가 정한 가격, 담합의 신호가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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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SK에너지와 HD현대오일뱅크의 휘발유·경유·등유 담합 혐의로 심의를 시작했다. 공정위는 두 회사가 2022년 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약 4년간 판매가격 정보를 주고받았고, 올 3월 중동 전쟁 직후에는 공급가격까지 담합했다고 본다. 관련 매출액은 44조1000억원이고, 단순 계산으로는 과징금이 4조6000억원 안팎까지 가능하다.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변하던 때가 가격 정보교환의 계기가 됐다는 게 공정위 설명이다. SK에너지는 소명하겠다는 입장이고, HD현대오일뱅크는 담합이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경제학자의 눈에 걸리는 건 '정보교환'이다. 가격이 서로 훤히 보이면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 같지만 반대일 수 있다. 몰래 가격을 내려 손님을 뺏으려 해도 곧바로 들키고 따라 내리니, 내릴 이유가 사라진다. 반대로 한 업체가 올리면 나머지가 따라 올리기 쉽다. 합의서도, 밀담도 필요 없다. 공통된 정보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곧 암묵적인 가격 합의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가 정한 최고가격과 같은 숫자도 경쟁사에 똑같은 신호를 제공함으로써 일종의 가격 기준점 구실을 할 수 있다. 올 3월 중동전쟁으로 기름값이 치솟자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했고, 정유사가 주유소에 넘기는 휘발유 공급가격의 상한은 넉 달째 ℓ당 1784원으로 정해져 있다. 공급가격 상한이라는 공통의 정보가 생기면서, 국내 4개 정유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가 가격을 균일하게 맞추기 쉬워졌을 수 있다. 가격 상한이 암묵적인 가격 합의의 기준점이 된다는 연구는 이미 있다. 1980년대 미국 신용카드 금리 상한을 분석한 논문은 상한에 묶이지 않는 카드사들도 상한에 맞춰 금리를 매겼다고 보았다.


꼭 가격 상한이 아니더라도 정보 공유 자체가 암묵적 가격 합의를 더 쉽게 만든다는 연구도 있다. 호주 멜버른 주유소 시장을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2007~2014년 이 시장의 대형업체들은 서로의 주유소 가격을 15~30분 간격으로 보여주는 사설 플랫폼에 가입해 있었다. 처음엔 매주 정해진 요일에 일제히 가격을 올리던 업체들이 2011년 이후 새 방식을 만들었다. 선도 업체가 일부 주유소(대개 20% 안팎)의 가격을 먼저 올려 신호를 보내면, 다음 날 더 많은 주유소가 올리고 나머지 업체가 따라 올린다. 저자들은 업체들이 플랫폼에서 보이는 가격을 통해 일종의 대화를 나눈 셈이라 했다. 이 과정에서 가격에서 비용을 뺀 마진이 약 30%나 높아졌다고 한다. 호주 경쟁당국(호주의 공정위)은 2014년 이 플랫폼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5년 합의로 끝났다. 서호주 퍼스라는 도시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점유율 1위 BP가 일부 주유소 가격을 수요일에 먼저 올리면 나머지 업체가 목요일에 따라 올렸고, 3년에 걸쳐 모두가 목요일에 올리는 관행이 굳어졌다. 그 사이 마진이 19~64% 오른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에서 경쟁사들이 암묵적 가격 합의에 사용할 수 있는 숫자는 한국과 정 반대 방향이다. 한국의 최고가격제는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처음 시행된 정책으로, 정유사 공급가에 상한을 둔다. 미국에는 휘발유 소매가격이 도매가격보다 일정 비율 이상 높아야 한다고 정한 주들이 있다. 흔히 불공정판매법(Unfair Sales Act)이나 최저 마진 규제(Minimum Markup Law)라 부른다. 대공황기에 덩치 큰 업체의 헐값 공세로부터 소규모 업체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생겼고, 위스콘신주의 경우 휘발유를 실제 매입비용에 6%를 더한 값과 지역 평균 도매가에 9.18%를 더한 값 중 높은 쪽 이상으로 팔도록 한다. 25개 주 안팎에 이런 법이 있고 휘발유가 대표적인 적용 품목이다. 우유에도 비슷한 규제가 있다. 연방정부는 우유 가공업체가 생산자에게 지급할 최저 가격을 정해 놓았고, 펜실베이니아는 우유의 최저 도매가와 소매가까지 정한다. 필자가 위스콘신 사례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최저 마진 규제가 있을 때 업체들이 마진을 더 높게 붙였다.


한국은 가격이 너무 오를까봐 천장을 씌우고, 미국은 너무 내릴까 봐 바닥을 깐다. 천장이든, 바닥이든 정부가 정한 숫자는 업체들이 눈치껏 맞추는 기준점이 되기 쉽다. 그래서 질문이 남는다. 정부가 시장에 던진 숫자는 소비자를 지키는 방패인가, 업체들에 가격 기준점을 알려주는 전광판인가. 숫자를 정할 때, 누가 그것을 어떻게 읽을지도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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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영 미국 인디애나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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