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생산 역동적 7호선
의정부~부천 '서울의 날줄'
중랑·광진 등 중산층 밀집
신도시 아닌 '재생 도시'

자본과 속도 새로운 9호선
마곡~둔촌 '서울의 씨줄'
지식산업 화이트칼라 일터
폐쇄형 고급 아파트 단지

사대문 안은 복원과 보존
밖으로 팽창 '오늘의 서울'

[걸으며 서울을 생각하다]한강을 건너는 7호선, 한강을 따라가는 9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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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노선이 한강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현대 서울이 거쳐온 서로 다른 발전의 궤적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7호선은 한강을 수직으로 가로지른다. 청담대교를 통해 강북의 뚝섬유원지와 강남의 청담을 단숨에 건너는 이 노선에서 한강은 반드시 넘어야 할 물리적 경계선이다. 의정부 장암에서 출발해 노원과 중랑 같은 고밀도 베드타운을 거쳐 강남을 관통한 뒤, 서남부의 대림동과 가산디지털단지를 지나 광명, 부천, 인천까지 이어지는 7호선의 여정은 산업화와 인구 팽창을 지탱했던 '생산과 일상의 서울'을 상징한다. 7호선 승객에게 한강은 화려한 풍경이기 이전에, 강북의 주거지와 강남·서남부의 일터를 매일 오가며 마주하는 생활의 분기점이다.


반면 9호선은 한강을 한 번도 건너지 않는다. 대신 강남 쪽 강변을 따라 나란히 달리다가 강남 한복판을 가로질러 송파로 향한다. 9호선에서 한강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낳는 프리미엄의 축이다. 첨단 연구개발 기지로 계획된 서쪽 끝자락 마곡에서 시작해, 여의도의 금융가와 반포의 초고가 재건축 단지를 지나 강남의 업무지구를 꿰는 이 노선은 2000년대 이후 재편된 '자본과 세계화의 서울'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포공항과 이어진다는 점, 개통 당시 해외 자본이 참여한 민간투자 사업이었다는 점, 서울시 지하철로는 처음으로 급행열차를 도입했다는 점도 상징적이다. 속도와 효율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컸고, 출퇴근 시간의 급행열차가 '지옥철'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그 때문이다.

여의도의 야경. 아시아경제DB

여의도의 야경. 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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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대비를 살펴보자. 7호선 서남쪽의 닻인 가산디지털단지는 1960년대 섬유·봉제·전자 산업의 요람이던 구로공단 자리에 지식산업센터가 빽빽이 들어선 곳이다. 공단 부지라는 조건 위에 지어진 만큼 거대한 신도시라기보다 기존 도시 공간을 시대에 맞게 재생한 곳에 가깝다. 바로 옆 대림동에는 한국계 중국인 이주민의 상권이 자리 잡았다. 구로공단의 인력이 주로 지방에서 올라온 젊은 여성들이었듯, 대림동의 중국 동포들도 희망을 안고 일하러 서울에 왔다. 이렇게 보면 서울은 지방 출신 청년뿐 아니라 해외 동포와 외국인 노동자들도 기회를 꿈꾼 '희망의 도시'였던 셈이다.


9호선 서쪽의 닻인 마곡은 서울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대규모 농지 위에 21세기에 새로 조성된 계획도시다. LG사이언스파크 같은 대기업 연구소와 서울식물원이 대표적이다. 새 건물 사이로 녹지가 넉넉하고 도로와 보행로가 잘 정비된 이곳은 복잡하고 무질서하다는 서울의 이미지를 넘어서려 한다. 세계 여느 테크놀로지 거점과 닮은 감수성이 드러나는 동시에, 어딘가 삭막하다는 인상도 준다. 출발점은 달랐지만 가산과 마곡은 이제 모두 서울 지식산업의 중요한 거점이자 화이트칼라 전문직의 일터가 되었다.

주거와 일상의 대비도 뚜렷하다. 7호선이 지나는 중랑구, 광진구, 동작구 등에는 다가구 주택 골목과 재래시장이 많고, 주민 상당수는 중산층이다. 노원의 상계·중계동 아파트 단지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에 걸쳐 조성되어 이제는 '구축'이 되었고 재건축 논의가 한창이다. 빌라 밀집 지역 역시 주택 노후화로 청년 유입이 정체되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가산디지털단지 전경. 아시아경제DB

가산디지털단지 전경. 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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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9호선을 따라서는 폐쇄형 고급 아파트 단지가 줄지어 있다. 흑석과 반포, 그리고 둔촌동의 초대형 재건축 단지에 이르기까지 21세기에 새로 들어선 단지들은 '럭셔리 서울'의 화려한 얼굴이다. 1970년대 지어진 여의도의 아파트들도 재건축을 앞두고 있다. 서울의 집값이 계속 오르면서 이 지역은 선망의 대상인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을 불러일으키며, 서울이라는 몸에 이식된 낯선 임플란트처럼 자리 잡고 있다.


마지막으로 두 노선은 역사 도심을 비껴 달리는 만큼 이름난 문화유산이 비교적 적다. 7호선 생활권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에 속한 태릉과 강릉 정도다. 그 대신 주말이면 등산객으로 붐비는 도봉산과 수락산, 어린이대공원과 보라매공원, 옛 철길을 공원으로 바꾼 경춘선숲길 같은 생활 속 녹지가 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대학이다. 서울과학기술대, 세종대, 건국대, 숭실대가 7호선 역 이름에 나란히 올라 있다. 대부분 서울이 급격히 팽창하기 전인 1940~1960년대, 당시 외곽에서 넓은 땅을 찾아 자리 잡은 결과일 것이다.


9호선 주변에는 명소가 조금 더 많다. 몽촌토성과 석촌동 고분군 같은 한성백제 유적, 선릉과 정릉, 그리고 선릉을 지키던 봉은사, 국립서울현충원과 국회의사당, 선유도공원과 서울식물원, 잠실종합운동장과 올림픽공원까지 이어진다. 1600여년 전 한성백제의 도읍에서 1988년 서울올림픽의 흔적까지, 시간의 폭이 의외로 넓다. 반면 대학은 흑석동의 중앙대와 송파의 한국체육대 정도다. 1970년대부터 정부가 수도권 인구 억제를 위해 서울 내 대학 신설을 엄격히 막았고, 1982년 수도권정비계획법으로 이를 제도화했기 때문이다.


건대맛의거리. 서울연구원

건대맛의거리. 서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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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문 안이 복원과 보존으로 가꾼 역사 도심이라면, 7호선과 9호선이 달리는 지역은 현재 서울 사람들이 실제로 일하고 살아가는 '오늘의 서울'이다. 공업화와 노동의 고단함, 중산층의 형성과 고령화, 아파트의 발달과 그 이면, 계획된 도시 공간의 효율성과 삭막함이 두 노선을 따라 다채롭게 공존한다.


두 노선은 서울의 변화 속도도 보여준다. 7호선은 1996년에 첫 구간이, 9호선은 2009년에 달리기 시작했다. 모두 1960년대에 시작해 30여년 이어진 급성장기가 1990년대 중반 한풀 꺾인 뒤의 일이다. 그러나 디지털 혁명과 인구 구성의 변화, 끊임없는 개발과 재개발 속에서 서울의 변화는 멈추지 않았다. 지금도 7호선은 인천 청라로, 9호선은 강동 고덕으로 뻗어나가는 중이다. 노선도의 선이 길어지는 만큼 '진짜 서울'도 사대문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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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작가·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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