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감독, 亞콘텐츠&필름마켓 포럼 발표
AI 단편 '웜 트레인' 제작 재개 과정 공개
"기술은 상상력을 대신할 수 없다"
'비트', '아수라', '서울의 봄'의 김성수 감독이 인공지능(AI) 영화 제작에서 확인한 한계는 '컷과 컷 사이'였다. 이미지를 무한히 만들어내도 그 사이를 채우는 일은 아직 인간의 몫이라는 결론이다.
김성수 감독이 11일 부산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린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 포럼 '새로운 영화적 가능성: 클링 AI로 영화 제작 재상상하기'에서 단편영화 '웜 트레인' 제작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
김 감독은 지난 3월 중단한 단편영화 '웜 트레인' 제작을 최근 팀을 꾸려 재개했다. 영화 현장처럼 분야별 전문가를 동원해 역할을 나눠 맡겼다. 이 경험은 11일 부산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린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 포럼 '새로운 영화적 가능성: 클링 AI로 영화 제작 재상상하기'에서 공개됐다.
'웜 트레인'은 카프카의 '변신'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승객들과 맞닥뜨린 벌레가 군중 속에서 고립되는 과정을 그린다. 김 감독은 AI 영상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VFX의 협력자 또는 대체자로 생각했다. 직접 만들어 본 1년 사이 질문은 "얼마나 싸고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느냐"에서 "앞으로 영화를 만드는 방식 자체가 어떻게 달라질까"로 옮겨갔다.
김 감독이 가장 놀란 대목은 상상이 곧바로 눈 앞에 펼쳐진다는 점이었다. 영화 작업에서 머릿속 구상을 화면으로 옮기기까지는 최소 1~2년이 걸린다. '서울의 봄'의 경우 작품에 매달린 지 4년이 지나서야 촬영장에서 장면을 구현했다. '웜 트레인'은 달랐다. 지난 2월 클링 3.0으로 첫 신과 인물이 변하는 순간을 요구하자 불과 이틀 만에 생각했던 이미지에 가까운 영상이 나왔다.
흥분해 밤을 새워가며 이미지를 만들던 그는 근사한 이미지 열 장을 이어 붙이고 나서야 한계를 느꼈다. "영화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많이 부족했다. 영화는 한 컷에 담기지 않는다. 컷과 컷 사이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남자가 걸어오고 멀리서 여자가 그를 유심히 바라보면 이야기가 생긴다. 장면과 장면이 충돌하는 순간의 긴장과 감정이 영화의 한 장면이 되는 것이다."
김성수 감독이 11일 부산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린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 포럼 '새로운 영화적 가능성: 클링 AI로 영화 제작 재상상하기'에서 단편영화 '웜 트레인' 제작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
원본보기 아이콘지난 3월 김 감독은 지하철 장면 때문에 작업을 멈췄다. 클링 3.0이 커다란 벌레는 잘 만들었지만 수많은 승객과 벌레가 서로 부딪히고 물리적으로 반응하는 장면은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자신의 실력이 모자란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8월 돌아보니 기술이 크게 발전해 있었다. 재도전을 마음먹은 그에게 장훈 크리에이티브망고 대표는 클링과의 협업을 제안했다. 이에 지난달 받은 클링 4.0 프리뷰 버전으로 포기했던 장면을 다시 시도했다. 그러자 벌레와 승객이 접촉하는 순간의 실체감과 무게감이 화면에 고스란히 담겼다.
김 감독은 이 영화를 완성하려면 어떤 제작 시스템이 필요한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보통 AI 창작은 1인 아티스트의 일로 여겨진다. 궁극적으로 장편 상업영화를 AI 영상으로 제작하려는 그는 팀 작업을 택했다. 류재환 VFX 슈퍼바이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장훈 대표가 선발한 젊은 작업자 네 명을 합류시켰다. 여기에 애니메이션 미술감독과 극영화 편집감독, 음악감독까지 데려왔다.
작업은 지하실 작은 방에서 이뤄진다. 현재 70% 진행된 상태다. 김 감독과 작업자 네 명, 슈퍼바이저는 각각 클링 4.0으로 생성한 결과물을 두고 연기와 앵글, 조명, 동선을 토론한다. 장편 극영화를 만드는 과정과 매우 비슷하다. "영화는 사람들의 상상력과 판단력이 부딪히며 만들어진다. AI는 그 과정을 없앨 수도 없고 없애지도 않았다."
다만 편집 방식은 조금 다르다. AI가 산출한 영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앞 단계로 돌아가 수정할 수 있다. 김 감독은 이를 "프로덕션을 역주행했다가 다시 가는" 방식이라고 했다. 나머지 후반작업도 기존 극영화와 같은 공정을 거친다. 전 과정을 AI로 처리할 수도 있지만, 장편으로 갈수록 수월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김성수 감독이 11일 부산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린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 포럼 '새로운 영화적 가능성: 클링 AI로 영화 제작 재상상하기'에서 단편영화 '웜 트레인' 제작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
원본보기 아이콘김 감독은 "더는 예전처럼은 영화를 만들지 않을 듯하다"고 밝혔다. 상상을 확인하고 장면을 설계하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무엇이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느냐다.
이제 비슷한 도구는 누구나 다룰 수 있다. 김 감독은 판단이 큰 차이를 만든다고 강조했다. 어떤 이미지를 만들지, 그 이미지를 어디에 놓을지, 어떤 장면과 부딪히게 할지는 AI가 스스로 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처음엔 AI가 영화를 망치려고 온 파괴자가 아닐까 의심했는데 지금은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상상력은 기술을 기다릴 수 있지만 기술은 상상력을 대신할 수 없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침대 빼고 수술대 놓았더니…" 1.7조 뿌린 큰 손,...
김 감독은 AI를 영화가 거쳐 온 변화의 하나로 봤다. 흑백에서 컬러로, 무성에서 유성으로 모습을 바꿔 왔듯 언젠가 AI 영화라는 말이 필요 없는 날이 오리라고 내다봤다. "어쩌면 AI는 영화를 더욱 영화답게 만들어주는 새로운 방식일 수 있다. 다만 그 변화의 길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잘 모르겠다. 오늘 밤 생성 버튼을 누르며 그 답이 무엇인지 계속 찾아보겠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