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수 강북구청장 인터뷰
재활용선별장 혁신·모두의밥상·경로당대청소 등
"문제의식이 있어야 문제 보여"
"아껴서 남기자는 게 아니라 잘 쓰자는 것"
정창수 서울 강북구청장은 새벽 3시에 일어난다. 30년 넘게 이어온 습관이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신문 읽기다. 40인치 모니터를 포함해 3대의 화면에 그날 신문 지면을 통째로 띄워 놓고 1시간 반에서 2시간 동안 읽고 정리한다.
지난 8일 구청장실에서 만난 정 구청장은 "호기심이 제 삶의 큰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바로 그 호기심으로 예산의 쓰임새를 하나씩 따져 묻고 있다.
정창수 강북구청장이 구청장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뒤편에는 북한산에 사는 멸종위기 동물을 본뜬 강북구 캐릭터 호야(삵)·하로(수리부엉이)·강백(토종여우)·새싹(북한산달팽이)이 놓여 있다. 강북구 제공.
"왜 물을 사서 나눠주지?"
정 구청장의 일하는 방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여름철 '생수'다. 강북구는 그동안 일회용 페트병 생수를 무더위 쉼터 등에서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매년 생수를 사고 옮기는 데 예산이 반복해서 쓰였다. 정 구청장은 여기서 질문을 던졌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문제의식이 있어야 문제가 보인다'는 겁니다. 문제의식이 없으면 문제가 안 보여요. 저는 문제의식을 몇십 년 동안 훈련한 사람이기 때문에 '왜 물을 나눠주지?' 하고 보게 된 거죠."
정 구청장은 올여름 '강북 오아시스' 사업을 바꿨다. 우이천변에 정수기와 제빙기를 설치하고, 주민이 병을 가져와 물과 얼음을 받아 가도록 했다. 정 구청장은 "설치비는 2000만~3000만원 정도이고, 한 번 설치하면 매년 쓸 수 있다"며 "물값이나 전기 요금만 들이면 억대로 드는 생수 구매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회용 페트병 사용도 줄어 환경 보호도 된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매일 새벽 신문 읽기와 독서에서 길러졌다. "우리나라는 작은 나라가 아닙니다. 국내총생산(GDP)이 아프리카 대륙만 한 나라예요. 당연히 많은 일이 벌어지는데 우리가 몰라요. 특히 지역 뉴스는 잘 안 나오잖아요. 신문을 보면서 지나가는 것을 체크해 나중에라도 찾아볼 수 있게 만들어 놔야 합니다."
먼저 조세·재정·예산 기사를 검색해 읽고, 중요한 기사는 구글 문서에 링크를 달아 설명과 생각을 덧붙인다. 정 구청장은 "나중에 '그거 뭐였지' 하는 단어가 기억나면 검색하면 된다"고 했다. 이렇게 쌓아 둔 기록이 정책 아이디어로 이어진다. 주말에는 경제신문을 포함한 12개 신문의 책 소개면을 모두 훑는다. 책은 한 달에 스무 권가량 사서 읽는다.
"집행률은 성과가 아니다"
예산 전문가로서 정 구청장이 가장 해보고 싶었던 일은 '성과주의 예산'이다. 그는 "예산을 얼마나 썼느냐가 아니라 주민 삶에 무엇이 달라졌느냐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거듭 강조했다.
"사업을 할 때 진짜 왜 이 일을 하는지,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지 생각을 잘 안 합니다. 주어지니까 하는 거죠. 그래서 집행률은 성과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만족도든 뭐든 진짜 성과를 놓고 토론하자는 겁니다."
우선 자신의 공약 사업부터 담당 부서와 토론해 성과 목표를 정확히 세우고 있다. 무급 특별보좌관 제도와 나라살림연구소 등 외부 전문가 네트워크가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에는 구청 간부와 예산 담당 직원을 대상으로 직접 예산 특강을 했다. 주제별로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관련 부서 공무원과 함께 공부하는 '혁신 포럼'도 운영 중이다.
'예산 전문가'라는 이력 때문에 취임 전에는 '예산을 쥐어짤 것'이라는 걱정도 있었다. 정 구청장은 이렇게 답했다. "예산 효율화는 아껴서 남기려는 게 아니라 잘 쓰려고 하는 겁니다.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제대로 쓰는 게 중요하지, 안 쓰는 게 중요하면 세금을 걷지 말아야죠."
구는 지난 7~8월 모든 사업을 점검해 56개 사업을 개선·통합·폐지했고, 내년에 11억원 이상을 절감할 것으로 본다. 기존 슬로건 교체와 구청장실 리모델링을 하지 않아 10억원 이상을 아꼈다. 이렇게 확보한 재원은 주거환경 개선, 교육·복지 등 주민 체감도가 높은 분야로 돌린다.
재활용 선별장은 그가 그리는 '잘 쓰는 예산'의 청사진이다. 현재 선별장에서는 약 100명이 일하지만 반입량의 80%를 재활용하지 못하고 다시 돈을 들여 처리한다. 정 구청장은 서울시 지원을 받아 자동화 설비를 갖추면 재활용률을 9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면서 환경도 지키는 것, 그게 제 방식"이라고 했다.
정 구청장은 "정책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사람을 바꾸는 게 제일 힘들다"고 털어놨다. 그가 꺼낸 해법은 확실한 보상이다. 내년부터 포상금과 해외연수비를 크게 늘려 약 3억원이던 관련 예산을 7억원으로 올렸다. 대상자도 늘어난다.
"퍼주려는 게 아니라 일을 하게 하려는 겁니다. 정당한 포상과 보상이 늘면 '애쓰면 알아주는구나' 하는 자부심이 생기거든요."
특히 힘든 일을 하는 직원들에게 보상이 가도록 하겠다고 했다. 민원과 악취를 견뎌야 해 모두가 꺼리는 청소과에는 수당을 더 주는 방법도 찾고 있다. 같은 업무를 반복하는 토목·건축·세무·지적 등 기술직군이 더 적극적으로 일하도록 자극할 방안도 고민 중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여러분이 열심히 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노력하는 사람에게 더 보상하겠다는 겁니다. 공무원은 뭘 해도 사회에 이로울 가능성이 높은 직업이니 자존감을 가져도 됩니다."
"잘하는 곳 배워서 제대로 된 2등 하자"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데 집착하지 않는 것도 그의 스타일이다. 정 구청장은 문석진 전 서대문구청장의 슬로건을 인용했다. "새로 하려고 하지 말고 남이 잘하는 걸 배워서 2등만 하자. 그러다 보면 1등보다 잘할 수 있다."
내년 학생 돌봄 시범사업이 대표적이다. 학교마다 돌봄을 운영한 서울 중구 모델과 학교 밖에 돌봄 시설을 둔 도봉구 모델을 각각 가져와 강북구 여건에 맞게 시도한다. 재활용 선별장 자동화 역시 은평구와 경기 하남시 사례를 참고하되 "5~10년이 지난 만큼 더 좋은 설비로 하겠다"는 구상이 그런 사례다.
정 구청장이 아직 발표하지 않고 기획 중인 정책이 '모두의 밥상'이다. 누구든 3000~4000원에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공간으로, 구청 직원 식당과 비슷한 방식이다.
“구 인구 분포를 살펴보니 청년층의 절반 이상이 교통이 편한 수유역 부근에 모여 살아요. 그래서 수유역 일대에는 청년들이 출근 전 아침을 먹을 수 있는 곳을, 다른 지역에는 어르신을 위한 공간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주변 상권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운영 방식은 신중하게 설계할 계획입니다.”
어르신을 위해서는 경로당 105곳을 전문 업체가 찾아가 대청소하고 있다. 요청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직접 가 보니 관리가 쉽지 않아 냄새가 나는 곳도 있었다. 정 구청장은 "구청에서 청소해준다는 건 어르신들도 상상을 못 하셨을 것"이라고 했다. 경로당 부식비도 올렸다. 그는 "큰돈이 들지 않아도 변화의 느낌은 확실한 것부터 먼저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교 34곳에는 학부모 자치활동비를 500만원씩 지원하기로 했다. 견학이든 운동장 캠핑이든 학부모와 학생이 직접 기획하라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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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구청장은 강북구의 가장 시급한 인프라 중 하나로 공공도서관을 꼽았다. 강북구 공공도서관은 4곳에 불과하다. 규모도 작다. 구는 연내 강북구 최초의 도서관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에 착수한다. 부지 확보는 쉽지 않다. 그는 "알아보면 땅 주인들이 감정가의 몇 배를 부른다"면서도 "감정평가액 이상으로는 사지 않는다는 지키면서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인터뷰 말미, 그는 40년 전 읽었다는 잭 런던의 소설 마지막 문장을 떠올렸다. 주인공의 죽음을 '앎을 멈췄다'고 표현한 대목이다. "그때 알았죠. 아는 게 사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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