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슈퍼사이클, 10년 갈지 의문"
정부 확장정 재정정책 보수적 접근 필요
환율도 하나의 금융가격 변수
국가 부도 위험 없는 한 변동 받아들여야
가계 해외자산 투자 확대 추세 지속될 것
국민연금, 국내투자 비중 50%까지 가져가야
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가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경제 성장률이 크게 뛴 현 상황에서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은 보다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슈퍼사이클 장기화에 따른 세수 호황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출에 대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데다, 한 번 재정을 크게 늘려놓으면 이듬해 더 큰 재정으로 성장률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부동산 문제는 모두 해결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우선순위 목표에 집중, 보유세는 올리고 거래세는 낮추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봤다. 강남 주택에 관심이 커진 건 분양가 상한제의 영향도 있다고 본다며 현 상황에 맞는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 10년 갈지 의문…확장 재정 신중해야"
이 전 총재는 10일 유튜브 채널 '슈카월드'에 출연해 경제성장률 전망이 3%를 넘는 현 상황에서의 확장적 재정정책에 대해 두 가지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와 내년 세수가 좋다고 해서 대규모 투자를 하면 그 투자는 10년, 적어도 5~6년은 계속돼야 하는데, 만에 하나 (큰 규모의) 세수가 2년 정도 들어오다가 안 들어온다면 장기적 투자 계획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며 "10년간 지출에 대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번 재정을 늘려놓으면 이듬해 이보다 적은 재정을 썼을 경우 성장률에 부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 3.3% 내년 2.9% 성장한다고 하고 그것보다 높을 수도 있는데, 이는 (2%가 조금 안 되는) 우리나라 잠재성장률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굳이 성장률을 더 높이게 재정을 더 써야 될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미래를 위해 경제성장률을 평탄화(스무딩)한다는 입장에선 좀 더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게 좋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우리 경제 모든 문제를 해결하진 않아"
그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우리 경제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전 총재는 "상반기 명목 경제성장률이 21%가 넘고 9월 수출을 보면 이보다 더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수치적으로 보면 몇십년 만의 높은 성장률이 나온 것"이라면서도 "지금의 반도체 경기가 어느 정도 오래 지속될 것인지를 알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1년 전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와 달리)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엔비디아에 잘 공급하지 못할 때 한 달간 국내 반도체 전문가 20여분을 만나 의견을 들었는데, 당시 슈퍼사이클이 온다고 전망한 분은 없었다"며 "그러나 그중 많은 분이 최근엔 이 사이클이 10년은 간다고 하니, 솔직히 이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 전 총재는 "정책 담당자 입장에서는 반도체 사이클이 10년을 더 간다고 해도, 반도체 산업에 너무 집중돼 산업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면 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반도체 사이클이 진짜 오래갈 수 있을 것인가 이 두 가지가 고민스러울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우리나라를 한 단계 더 위로 올려놓고, 모든 경제 문제를 해결하진 않는다고 본다"며 "극단적인 예로 우리나라 성장주의 시대 이후 나타난 게 저출산·고령화 문제인데, 반도체 경기가 좋아진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테니까 이런 부분은 다른 면에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사이클은 삼성과 하이닉스의 경쟁력이 높아서인 이유도 있지만, 미·중 갈등 사이에서 중국 반도체 회사가 네덜란드 ASML의 노광장비 수입을 못 하다 보니 추격이 게 주춤한 원인도 있다"며 "상황이 바뀌면 반도체 산업 자체의 판도가 변화할 수 있다"고 봤다. 또 현재 70%가 넘는 삼성과 하이닉스의 영업 수익률이 유지될 수 있는지도 우려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이 전 총재는 "개인이나 기관은 낙관론에 따라 더 투자할 수 있겠으나 정책 하는 입장에선 오가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율도 주가처럼 금융상품의 가격…국가 부도 위험 없으면 변동하게 둬야"
최근 환율 급락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뒤늦게 반영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는 "올해 경상흑자 전망치는 4500억달러"라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20%가 넘는 경상흑자를 경험한 적은 그간 없었다"고 짚었다. 그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시작된 3월 이후로 환율이 떨어져야 하는데, 주가(코스피)가 짧은 시간에 9000을 넘기며 3배 이상 뛰다 보니 한국 투자 한도를 넘긴 해외 기관 투자자들이 이익을 실현하고 리밸런싱을 하면서 오히려 올랐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미국 금리가 얼마나 더 빨리 올라갈 것인가가 향후 환율의 변수"라며 "11월 미국 선거 이후 트럼프 정부 정책과 관세 변수 등도 눈여겨봐야 한다"고 짚었다.
환율 변동성에 대해선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지금 우리가 1997년도처럼 환율이 변동하면 국가 부도가 나는 것도 아니고, 너무 과거 고정 환율제에 익숙해져 있는 프레임 워크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환율 변동에 일일이 반응하면 정책을 수행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환율도 주가처럼 금융상품의 가격이라고 생각하고, 국가 부도나 위험이 있을 때만 정부가 관리하는 거지 나머지는 변동하게 둔다,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거시경제 변수 발생 시 우리 환율이 어느 정도 변동돼 충격을 완화하는 '쇼크 업소버'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는 판단이다.
최근 미국 등 주요국 국채금리 상승 요인으로는 중동전쟁에 따른 유가 상승으로 미국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점, 중장기적으로 미국 등 선진국 재정 지출이 너무 커졌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달러가 기축통화라는 특수 요인으로 인해 버텼지 다른 나라였으면 이미 엄청난 많은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며 "재정을 방만하게 하는 것에 대한 투자자들의 걱정이 반영된 것"이라고 짚었다.
"국민연금, 국내투자 비중 50% 수준까지 가져가야"
국민연금의 국내투자와 해외투자 비중은 일본처럼 각각 50% 수준까지는 가져가야 한다는 게 이 전 총재의 생각이다. 그는 "K-디스카운트가 해결되거나 해서 자발적으로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더 좋아지거나 하기 전에는 가계의 해외자산투자 확대 추세는 계속될 것"이라면서도 "국민경제 전체로 봤을 때 해외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 국내 공동화 문제 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래서 개인 저축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이 이 밸런스를 맞춰줘야 한다고 본다"며 앞으로 국내 비중을 더 늘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가 재임 기간 신경 썼던 한은의 한국 경제 구조개혁 연구는 이어져야 한다고 봤다. 그는 "과거 정부 산하에 있던 훌륭한 싱크탱크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장이 바뀌고 하다 보니 중립성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신뢰성도 예전에 비해 약화했다고 본다. 우리나라 정부가 정치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은의 연구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는 신뢰가 있으므로 한은이 구조개혁 연구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구조개혁 문제는 여야 합의를 통해 정권에 상관없이 장기적인 정책으로 꾸준히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부동산 문제는 수도권 집중과 관련돼 있고 수도권 집중은 교육 문제와도 연결돼있다. 상당히 시간이 걸리는 문제인데, 우리나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야와 관계없이 과거 정부에서 하던 건 다 나쁜 거고 다시 다 새로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잡힌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부동산 세제 문제도 많은 경우에 정권 바뀔 때마다 하도 바뀌다 보니 '어떤 세제를 해도 정권 바뀌면 또 바뀌겠지' 이런 인식이 가득 차 있어 효과가 없는 것"이라며 "하나의 구조개혁이 효과가 날 때까지 공무원들이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꾸준히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수도권 집중 현상 완화를 위해 소수의 지역을 발전시켜 '서울 대항마'로 키워야 한다는 평소 소신 역시 재차 강조했다. 그는 "공기업 2차 이전도 혁신도시처럼 열 몇 군데 나눠서 배분하면 의미 없을 것"이라며 "특정 산업을 어떤 지역에 옮긴다고 해서, 공장을 더 지어준다고 해서 젊은 사람들이 내려가지 않는다. 병원도 지어야 하고 K팝 공연장 등 문화 인프라도 있어야 한다. (다만 대항마로 키울 특정 지역을 정하는 일 등은) 정치적으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언급했다.
"보유세 올리고 거래세 낮춰야…강남 관심 커진 덴 분양가 상한제도 영향"
부동산 세제 문제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보유세는 올리고 거래세는 낮춰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돈을 버는 사람이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목표를 다 달성하기 힘든 상황에서 정책으로 이루고자 하는 우선순위 목표(매물 출회)에 집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과거 선의로 실행했던 정책도 다시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강남 주택에 관심이 커진 건 분양가 상한제도 영향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소수가 '로또 분양'으로 혜택을 보고, 이로 인해 관심을 더 키웠다는 것이다. 이 전 총재는 "정책금융도 일반서민 대상이 아니라 극빈층을 타깃해서 조금만 하고, 나머지는 서민주택 안정으로 돼야 하는데 (상황은 그렇지 않다)"며 과거에는 의미 있던 정책이라 해도 현 상황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뀐 시대에 맞는 노동시장 유연성 역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성과급 제도와 관련해 논란이 많았는데, 당시 논란을 보며 정말 이상했다"며 "각자가 기여한 바에 따라, 성과에 따라 나눠주는 게 성과급인데 N 분의 1로 나누면 어떤 동기부여가 있냐. 이런 틀을 바꿔주지 않으면 우리가 새로운 산업 구조를 갖고 선진국이 되는 데 상당히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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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총재는 퇴임 후 서울대에서 특임 교수로 미래전략원에서 일하고 있고, 연세대 인구와인재 연구원에서도 자문 활동 중이다. 미국 싱크탱크 피터슨 인스티튜트에서도 비상주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올해는 (서울대에서) 특강만 하면서 본격적인 강의 준비를 해서, 내년에는 강의도 열어볼 생각"이라며 "한국 경제에 대해서는 이 사람이 제일 잘 안다는 평판을 갖고 싶은 게 개인적인 욕망이다. 해외에서 발표도 많이 하고 그렇게 하면 저한테도 보람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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