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기술혁신으로 극복하는 에너지 위기
전 세계 73개 이상 SMR 개발중
AI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로 관심↑
에너지안보·탄소중립·산업 육성 효과 기대
미국 인허가 속도…2030년 초반 상용화
韓, 2035년까지 세계 점유율 40% 목표
"PPA 허용하고 시장 불확실성 해소해야"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에너지 안보, 탄소중립, 산업 성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해결사로 소형모듈원자로(SMR)가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SMR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SMR을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하면서 본격적으로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10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 따르면 2026년 6월 현재 국제원자력기구(IAEA) 첨단원자로정보시스템(ARIS)에 등록된 SMR 노형은 전 세계 73종에 달한다. 미국이 22개로 가장 많고 러시아 13개, 프랑스 8개 등의 순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표준설계 인가 심사중인 혁신형소형모듈원자로(i-SMR, 한국수력원자력)를 비롯해 2024년 표준 설계 인가를 받은 스마트(SMART, 한국원자력연구원), 반디(한국전력기술), 살루스-100(Salus-100, 한국원자력연구원) 등 4기가 등록돼 있다.
초기 개발 단계인 것까지 포함하면 우리나라가 개발중인 SMR은 더 늘어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소듐냉각고속로(SFR)인 살루스-100 이외에도 고온가스로(모델명:HECTAR), 용융염원자로(MARINA), 히트파이프원자로(Nuspace power)를 개발중이다.
연구원은 전기출력 100메가와트(㎿)급인 살루스-100을 250㎿급으로 확장한 헬리오스(Helios) 모델로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 민간 기업 중에서는 비즈가 고온가스로(BeSMART)를 개발하고 있다.
AI 시대 전력 해결사…성큼 다가온 SMR
SMR은 전기 출력 300㎿e(Megawatt-electric), 열 출력 1000㎿t(Mega-Watt thermal) 이하의 소형 원자로를 일컫는 말이다. 통상 대형 원전의 전기 출력은 1000㎿e 이상이다. SMR은 노심, 제어봉, 냉각재 펌프, 증기발생기, 가압기 등 주요 부품이 하나의 용기에 들어가 있는 일체형 구조이며, 공장에서 모듈로 만들어 운반한 뒤 현장에서 조립할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또 외부의 전원이 없어도 자연 순환 방식으로 노심의 열을 제거하는 '피동형 안전 시스템'을 적용해 후쿠시마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서도 안전하게 멈출 수 있도록 설계됐다. SMR보다 출력이 작은 10~50㎿e 규모의 원전을 마이크로모듈원자로(MMR)라고 부르기도 한다.
SMR은 크게 물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경수형과 그렇지 않은 비경수형으로 나뉜다. 국내에서 개발한 SMART, i-SMR은 경수형이며 소듐냉각고속로, 고온가스로, 용윰염 원자로는 비경수형이다. 비경수형 원자로는 '선진 원자로(Advanced Nuclear Reactor)' 혹은 4세대 원자로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SMR은 먼 미래의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각국이 SMR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상용화가 성큼 다가왔다. AI발 전력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것이 SMR 속도전의 주요 배경이다.
각국은 AI데이터센터나 반도체 공장에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발전원으로 SMR을 주목하고 있다. 구글, 메타 등 미국의 빅테크들은 자사 데이터센용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SMR 개발사들과 잇따라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대형 원전은 해안가 등 수요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건설한다. 안전과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기 쉽기 때문이다. 장거리 송전망도 구축해야 한다. 반면 안전성을 강화한 SMR은 수요지 인근에 건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발전 이외에도 수소, 공정열, 담수화, 선박 추진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美, 18개월 안에 인허가 완료…상용화 속도
SMR 속도전을 주도하는 곳이 미국이다. 미국은 2019년 공포된 '원자력 에너지 혁신 및 현대화법(NEIMA, Nuclear Energy Innovation and Modernization Act)'을 통해 '선진 원자로'에 대한 단계적 인허가 방식을 마련했다.
이어 2024년 '청정에너지를 위한 다목적 첨단원자로 활용의 촉진법(ADVANCE법, Accelerating Deployment of Versatile, Advanced Nuclear for Clean Energy Act)'을 통해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SMR 등 차세대 원자로의 승인과 허가 심사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2기 행정부 들어서는 더욱 속도가 빨라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잇따른 행정명령을 통해 원자력 보급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미국 에너지부(DOE) 원자로 시험 체계 개혁' 행정명령에서는 NRC가 아닌 에너지부가 차세대 원자로의 시험 프로그램에 대해 승인할 수 있도록 했다. 상업용 원자로는 NRC의 인허가가 필요하지만 시험로는 에너지부의 책임하에 승인 및 운영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에너지부는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10개 회사 11개 프로젝트를 선정했다. 이 행정명령에서는 2026년 7월까지 최소 3개의 원자로가 임계에 도달할 것을 지시했다. 실제로 2026년 8월 기준 5개의 원자로가 임계에 도달했다.
이외에 'NRC 개혁' 행정명령을 통해서는 18개월 이내에 신규 원전의 인허가 절차를 마치도록 했다. 또 '미국의 원자력 산업 기반 재건' 행정명령은 원전 재가동 및 건설 자금을 지원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상용화를 위한 준비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미국은 인허가를 단계를 지나 본격적인 건설 단계에 진입했다. 2030년대 초반에는 다수의 SMR이 상업 가동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테라파워는 소듐냉각고속로(SFR)인 나트륨(Natrium)을 와이오밍주 케머러 지역에 건설하고 있다. 테라파워의 나트륨 원자로는 상업용 SMR로는 처음으로 2026년 3월 미국 NRC로부터 건설 허가를 받았다. 전기출력은 345㎿e로 2031~2032년에 완공될 것으로 예상된다. 메타는 테라파워와 총 2.8GW 규모의 전력구매계약을 체결했다.
테라파워는 우리나라와도 깊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과 SK(주)는 2022년 8월 테라파워에 투자해 2대 주주가 됐다. 또 SK이노베이션은 2026년 1월 지분 일부를 한국수력원자력에 양도했다. 이에 따라 테라파워-SK그룹-한수원의 삼각 동맹 체제가 형성됐다.
GE버노바와 히타치가 합작 설립한 GE버노바히타치는 전기출력 300㎿e급 경수형 SMR인 BWRX-300의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NRC는 지난달 29일 테네시밸리공사(TVA)에 테네시주 오크리지에 있는 클린치 리버 부지에 BWRX-300 건설허가를 발급했다. BWRX-300이 미국에 서 받은 첫번째 건설 허가다.
이에 앞서 캐나다 온타리오파워제너레이션(OPG)은 2025년 4월 캐나다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BWRX-300 첫 호기의 건설허가를 받고 현재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X에너지는 고온가스로(HTGR) 원자로인 Xe-100을 텍사스주 다우케미칼 시드리프트 부지에 지을 예정이다. 전기출력은 80㎿e 4기로 구성된 총 320㎿e 규모다. 2026년 하반기에 건설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마존은 X에너지에 약 5억달러를 투자했으며 Xe-100 SMR을 활용해 2039년까지 5GW의 전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두산에너빌리티가 X-에너지 주기기의 공급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카이로스파워는 용융염(MSR) 원자로인 헤르메스-1(Hermes-1)과 헤르메스-2를 테네시주 오크리지에 건설중이다. 아직은 열출력 35㎿t의 실증로 수준이며 각각 2028년과 2029년에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카이로스파워는 구글과 전기출력 50㎿e 규모의 전력구매계약을 맺은 바 있다.
뉴스케일파워는 가압경수로형 원자로인 보이저(Voygr)의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뉴스케일파워는 아이다호주에서 첫 상용화를 추진했으나 전력을 구매하려던 지방 전력 회사들이 경제성을 이유로 구매 계획을 취소하면서 무산됐다.
보이저 원자로는 모듈 1개당 77㎿e의 전기를 출력할 수 있다. 2025년 5월에는 6개의 모듈을 사용해 462㎿e의 전기를 출력할 수 있는 모델이 미국 NRC로부터 표준 설계인가를 받았다. 하지만 아직 건설 및 운영허가를 받지는 못한 상태다. 뉴스케일파워는 루마니아에도 SMR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다수의 국내 기업이 뉴스케일파워와 협업하고 있다. GS에너지는 2021년 뉴스케일파워에 투자를 단행했으며 두산에너빌리티와 삼성물산도 협력사로 참여하고 있다.
"韓, 2035년 SMR 시장 40% 달성 목표"
대형 원전 건설과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도 'SMR 강국'을 향해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7일 정부는 '한국형 녹색대전환(K-GX) 추진계획'에서 2035년까지 SMR 글로벌 점유율 40%(중국 제외)를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무탄소 전원인 SMR은 기존 화석연료 기반을 발전소를 대체함으로써 탄소중립을 실현하고 국가 에너지 안보에 기여할 수 있다. 또, 국산 SMR을 해외에 수출함으로써 산업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정부가 SMR 산업을 지원하는 이유다.
SMR 건설 경험은 국내 건설 및 제조 기업들이 글로벌 SMR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국내외 다수 SMR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두산에너빌리티는 창원에 SMR 파운드리 전용 공장을 구축해 연 20기 이상의 SMR을 제작한다는 계획이다. 이외에도 삼성물산, 현대건설, 현대중공업, DL E&C, GS에너지, 삼성중공업, 현대엔지니어링, SK이노베이션 등이 해외 SMR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거나 지분을 투자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건설되는 SMR은 한국수력원자력의 혁신형소형모듈원자로(i-SMR)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28년까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표준설계인가를 획득한 후 건설허가를 거쳐 2035년에 상용 가동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한수원은 부산 기장을 국내 첫 SMR 부지로 선정했다.
정부는 비경수형 SMR 상용화를 위해 개발 초기부터 민간이 참여하는 대형 사업화연계기술개발(R&BD)도 추진한다. 한국원자력연구원, 건설사, 조선 3사 등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용융염(MSR) 기반의 선박 건조 사업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K-GX 추진 과제중 하나로 핵연료 교체없이 20년 이상 장주기 운전이 가능한 친환경 SMR 선박을 건조하겠다고 밝혔다. SMR의 조기 상용화를 위해 정부는 내년 상반기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 SMR을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할 계획이다.
소듐냉각고속로, 용융염 원자로, 고온가스로 등 비경수형 기반의 SMR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규제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현재 규제 체계는 대형 경수로 및 중수로 원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새로운 노형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이와 관련 원안위는 2026년 2월 'SMR 규제 체계 구축 로드맵'을 마련했다.
원안위 SMR 규제 체계의 핵심은 기존 '설계 완료 후 심사' 방식에서 벗어나 '규제-설계 병행 개발'로 방식을 전환하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오는 11월부터 원안위는 사전검토 제도를 도입한다. 설계 단계부터 개발자와 규제기관 간 소통을 통해 규제 기준의 적용 가능성을 파악해 불확실성을 해소하자는 취지다.
미국의 테라파워는 2대 주주인 SK이노베이션을 통해 국내 사전 검토 제도를 신청할 예정이다. 테라파워의 나트륨 원자로는 이미 미국 NRC에서 건설허가를 받은 만큼 국내에서도 빠르게 인허가 절차를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용융염 원자로를 개발하고 있는 덴마크의 솔트포스에너지(엣 시보그테크놀로지)도 사전 검토 제도를 신청할지 검토하고 있다. 솔트포스에너지는 국내 부유식 SMR 건설을 위해 삼성중공업, 한수원과 협업하고 있다. 부유식 SMR은 바지선에 SMR을 탑재한 후 필요한 곳으로 이동해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강신영 솔트포스에너지 한국지사장은 "미국 텍사스 지역에서도 관심을 표명하고 있어 미국의 인허가 절차를 밟을지, 한국 사전검토 제도를 신청할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중인 소듐냉각고속로, 고온가스로, 용융염 원자로, 히트파이프 원자로도 사전검토 제도를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듐냉각고속로는 현대건설, 고온가스로는 포스코이앤씨, 용윰염 원자로는 삼성중공업 및 현대건설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SMR 상용화 위해선 불확실성 해소해야
국회는 지난 2월 '소형모듈원자로 개발 촉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SMR 특별법)'을 의결했다. 9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이 법은 정부가 5년마다 '소형모듈원자로 시스템 개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원자력진흥위원회 산하에 소형모듈원자로시스템개발촉진위원회를 신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SMR 연구 개발 및 실증을 지원하고 민관 기업과 공공기관이 공동 출자하는 회사의 설립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가 SMR 개발을 수행하는 대학, 연구소, 기업이 밀집한 지역을 SMR 연구개발 특구로 지정할 수도 있다.
특별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업계에서는 SMR의 상용화를 위해서는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 SMR 특별법은 연구용 원자로나 실증에 한정돼 있어 민간 발전사의 SMR 진출을 위해서는 새로운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SMR 건설은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통해 초기 건설비용을 마련해야 한다. 금융 조달을 위해서는 수익성을 조기에 확정해야 한다. 원전 업계에서는 SMR에 대해서도 수요자와 전력구매계약(PPA)을 허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SMR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주민 수용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형 원전보다 안전성이 강화됐다고 하지만 검증 기간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부지를 활용해 SMR을 건설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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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R에 대한 투자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국내에 SMR 건설이 지속될 것이라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올해 수립하는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SMR이 추가로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 원자력계의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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