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직 '일곱개의 이름: 정수일 평전'
무함마드 깐수에서 문명교류학자까지…일곱 이름 뒤에 포개진 냉전의 20세기
사형을 구형받은 사람이 살려달라고 했다. 자신을 말한 게 아니었다. 압수된 컴퓨터 속 '고대 동서교류사' 원고였다. 1996년 11월 법정에서 정수일은 처벌은 받겠다면서도 연구 원고만은 없애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이 장면만 놓고 보면 지독한 학자의 미담이 된다. 그러기엔 그의 이력이 너무 복잡하다. 그는 실제 북한 대남공작원이었고, '무함마드 깐수'라는 레바논계 필리핀인으로 신분을 꾸며 1984년 한국에 들어왔다. 단국대 교수가 된 뒤에도 공작 활동을 이어가다 1996년 체포됐다.
북한 공작원 신분을 숨기고 ‘무함마드 깐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 1996년 체포된 정수일.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아 징역 12년이 확정됐다. 연합뉴스
한 사람의 이름이 일곱이면 이력서보다 색인이 먼저 필요하다. 만주에서 태어난 해성, 정수일, 일제강점기의 요시타케 슈이치, 중국의 정서우이, 무함마드 깐수, 김성철, 이철수. 국적도 여러 번 바뀌었다. 집에서는 조선어, 학교에서는 일본어, 거리에서는 중국어를 쓰며 자랐고 베이징대에서 아랍어를 공부했다. 중국 외교관으로 모로코에 갔다가 북한 교수가 됐고, 다시 공작원이 되어 레바논과 튀니지,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을 돌았다. 국경 하나를 넘을 때마다 이름 하나쯤 벗어두고 온 사람처럼 보인다.
차병직의 '일곱개의 이름'은 이 파란만장한 이력을 더 극적으로 포장하지 않아서 매력적이다. 차병직은 정수일과 약 20년을 교류했지만 그의 회고를 그대로 받아쓰지 않았다. 재판기록과 저작, 동시대 자료와 주변 증언을 대조하며 기억이 어긋난 자리까지 들춰본다. 변호사가 쓴 평전인데, 정작 눈길이 가는 것은 변호보다 확인이다. 정수일을 한쪽에서 꺼내 다른 한쪽으로 옮겨놓는 대신, 서로 잘 맞지 않는 두 얼굴을 그대로 둔다.
감옥에 들어간 뒤에도 그 두 얼굴 중 하나는 좀처럼 흐려지지 않았다. 그는 아랍어 원전으로 '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번역하고 '실크로드학'과 '고대문명교류사' 원고를 썼다. 출소하는 날에는 교정당국이 연구기록을 내주지 않자 원고 없이는 자신도 나가지 않겠다고 버텼다고 한다. 감옥 문은 열렸는데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밖에서 기다리던 자유보다 안에 남겨진 종이가 먼저였던 셈이다.
밖으로 나온 뒤에도 비슷했다. 여권을 되찾자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를 다시 걸었다. 답사에서는 낮에 본 것을 적고, 저녁이면 숙소에서 다시 정리했다. 여행은 그에게 풍경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확인하는 일이었다. 아흔을 넘긴 뒤에도 책상은 비지 않았다. 세상을 떠난 뒤 출간된 '문명교류학'은 800쪽이 넘는다. 일곱 이름을 가진 사람이 끝까지 내려놓지 못한 여덟 번째 이름이 있다면 아마 '학자'였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평생 파고든 학문이 '문명교류'였다는 사실이다. 정수일에게 실크로드는 중국과 로마를 잇는 예쁜 선 하나가 아니었다. 사람과 종교, 언어와 기술이 만나고 섞이고 흩어지는 통로였다. 그의 삶도 그렇게 여러 국경과 언어를 건넜다. 그러나 닮았다고 해서 아름다운 평행선은 아니다. 길은 비단과 불경만 실어 나르지 않는다. 사상도 옮기고 국가의 명령도 옮긴다. 어떤 국경은 학자가 넘고, 어떤 국경은 공작원이 넘었다. 정수일의 생애에서는 그 두 발자국이 자주 같은 곳에 찍혔다.
차병직은 그 발자국을 지우지 않는다. 그래서 책에서 오래 남는 장면들은 판결보다 습관 쪽에 있다. 법정에서 원고를 걱정하고, 감옥에서 번역하고, 출소하는 날 연구노트를 챙기고, 늙어서도 답사 기록을 정리하는 사람. 그렇다고 그 집요함이 앞선 선택을 대신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책도 그렇게 무리해서 봉합하지 않는다. 한 인간 안에 서로 모순되는 것들이 얼마나 오래 함께 살 수 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정수일은 말년에 자신을 '경계인'보다 '시대인'이라고 불렀다. 듣고 나면 꽤 정확한 표현이다. 그의 일곱 이름 뒤에는 만주와 식민지 조선, 중국 혁명과 냉전, 북한과 남한, 아랍 세계까지 20세기의 국경선이 겹쳐 있다. 사람이 이름을 일곱 번 바꿨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덮을 즈음에는 오히려 시대가 한 사람에게 일곱 개의 이름을 요구한 것처럼 보인다.
그 많은 이름을 지나고도 이상하게 남은 것이 있다. 책상에 앉아 읽고, 기록하고, 다시 확인하는 사람의 자세다. 정수일은 평생 길을 연구했고 실제로 수많은 길을 건넜다. 이름도, 국적도, 신분도 여러 번 달라졌다. 끝까지 바꾸지 못한 것은 아마 책을 읽고 문장을 쓰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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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개의 이름 | 차병직 지음 | 창비 | 4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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