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쇼크, 벼랑 끝 K산업|바이오]④韓, 후기개발 체력전 버틸 수 있나
5년 새 기술수출 격차 11배로 확대
바이오벤처 자금난에 조기 수출 불가피
후기 임상 투자·중국과 협력 강화해야
①中신약 통째로 쓸어담는 빅파마
②한번 팔기도 어려운데 中은 팔고 또 판다
③84억달러에 팔린 中신약, 3년 뒤 성적표는
④韓, 후기개발 체력전 버틸 수 있나
한국과 중국의 2021년 혁신신약 기술수출(라이선스 아웃) 규모는 각각 110억달러(약 14조7180억원), 134억달러(약 17조9292억원)였다. 그런데 올 상반기 중국은 약 997억달러(약 133조3986억원)의 라이선스 아웃을 했고 한국은 87억달러(약 11조6406억원)에 그치고 있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엇비슷했는데, 지금은 중국이 한국의 약 11배 수준으로 격차를 벌리며 달아나고 있는 것이다. 후보물질 발굴 경쟁에서 출발한 중국의 바이오 굴기가 임상개발과 글로벌 기술거래로 확산하면서 양국 산업의 격차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19일 국가신약개발사업단에 따르면 2022~2024년 새로 전임상이나 임상에 진입한 국내 후보물질은 1337개로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였다. 하지만 임상 단계가 올라갈수록 파이프라인은 급격히 얇아진다. 현재 임상 3상에 진입한 국내 후보물질은 57개에 그쳤다. 발굴 단계는 851개, 비임상은 760개로 전체의 74.5%가 임상 진입 전이다. 후보물질을 찾는 능력보다 이를 임상 데이터로 바꾸고 후기개발로 연결하는 힘에서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중국 기업들은 임상 데이터를 확보한 상태에서 기술수출 협상에 나서는 경우가 많은 반면 국내 기업들은 전임상 데이터로 거래를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며 "임상을 하려면 결국 자금이 필요한데 국내에서는 이 단계의 투자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산업계가 보유한 파이프라인 1929개 가운데 바이오벤처 몫은 1505개로 78.0%에 달한다. 중견기업은 399개, 대기업은 25개다. 중국에서는 헝루이제약처럼 100개가 넘는 혁신신약을 동시에 임상에서 개발하는 대형 제약사가 일부 자산의 실패를 감수하면서 다음 후보물질 개발을 이어간다. 반면 국내에서는 핵심 후보물질 한두 개의 성패에 후속 투자와 기업 존립의 명운이 예속될 가능성이 높은 바이오벤처가 파이프라인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다.
빅파마에 대한 라이선스 아웃 경험이 있는 한 바이오벤처 임원은 "현재 임상 2상을 진행 중인 후보물질이 있고 성공할 것으로 확신함에도 불구하고 좀 이른 시점, 그러니까 내년 중 빅파마로의 라이선스 아웃을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임상 완료 전에 계약하려는 이유는 100% 비용 때문"이라면서 "임상을 최대한 끌고 가 후기에 라이선스 아웃하는 게 유리하다는 것을 알지만 현실적으로 비용을 끝까지 감당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국내 바이오 투자액은 올 들어 지난달 22일까지 1조9306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규모를 넘어섰다. 업계가 문제 삼는 것은 총액보다 돈이 흘러가는 양상이다. 임상 성과나 기술이전 이력이 확인된 기업에는 자금이 몰리는 반면 후보물질 발굴 이후 초기·중기 임상을 넘어야 하는 바이오벤처는 여전히 자금난을 호소하고 있다. 임상 단계가 올라가며 비용이 수백억~수천억원 단위로 불어나는 게 보통인데 이를 수년간 뒷받침할 장기자본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투자 통계가 실제 현장의 상황을 가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투자 펀드 규모는 지난해보다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큰 규모의 자금은 이미 잘 나가는 회사로 빨려들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정작 스타트업이나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계속 공급해 줄 기업에는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민간이 투자할 수 있는 곳은 민간에 맡기고 정책자금은 위험이 있어 민간이 선뜻 들어가기 어려운 영역을 메워 생태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제언이다.
이런 제언은 바이오 투자 총액을 늘리기보다 자금의 성격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후보물질 발굴이나 초기 임상에 자금을 폭넓게 분산하는 방식과 별도로 임상 데이터를 통해 경쟁력이 확인된 자산을 선별해 후기개발까지 밀어붙일 성장자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든 후보의 임상 3상을 정책자금으로 지원할 수는 없는 만큼 민간 자본과 정책금융, 국내 대형 제약사의 자금을 묶어 가능성이 높은 자산에 장기간 투자하는 방식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물론 모든 후보물질을 임상 3상까지 직접 가져가는 것이 절대적 해법은 아니다. 실패 가능성이 높거나 글로벌 임상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자산은 초기 단계에서 글로벌 제약사와 공동개발하거나 라이선스 아웃하는 편이 합리적일 수 있다. 반대로 경쟁력이 확인된 후보물질은 임상 2상 이후까지 직접 데이터를 쌓아 가치를 높인 뒤 계약할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이 중국처럼 신약 후보 수십개를 만드는 경쟁을 할 필요는 없다"며 "자금이 떨어져 좋은 자산까지 서둘러 넘기는 게 아니라 어떤 후보물질을 키우고 어떤 후보물질을 개발중단할지 스스로 고를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강점을 보여온 임상시험 경쟁력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규모 환자군과 임상 인프라를 바탕으로 중국이 임상 속도와 품질을 빠르게 높이면서 신속하고 정확한 임상시험 수행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려워지고 있어서다.
국내 한 대학병원의 신약개발 연구자는 "과거에는 중국 임상시험 품질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 글로벌 제약사들이 한국을 찾았지만 이제는 중국의 임상 데이터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며 "한국이 강점을 가진 중개연구와 바이오마커 발굴 역량을 신약 개발에 결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병원들이 글로벌 빅파마의 신약 개발뿐 아니라 국내 바이오벤처 후보물질의 연구와 임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동기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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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무조건 추격전을 벌이는 대신 협력할 분야를 찾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미·중 갈등으로 중국 바이오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에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의 임상 인프라와 의료진, 이들이 축적한 연구 역량을 중국 기업과 연결해 일정 부분 협력과 시너지를 도모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중국 기업의 글로벌 진출과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중국과 모든 분야에서 따라잡기 경쟁을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며 "경쟁할 분야에서는 경쟁하되 임상이나 공동개발에서는 중국 기업과 함께 글로벌 시장으로 가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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