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기술혁신으로 극복하는 에너지 위기
기존 화석연료 발전 방식 수명 다해
철강·석유화학 개발 패러다임 전환 불가피
수소환원제철·전기 나프타 전 세계 과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제조업 비중이 높다. 11일 국회 예산정책처가 펴낸 '2026 대한민국 경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7.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31.1%를 차지한 아일랜드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독일(19.9%), 일본(19.0%) 등 주요 제조업 선진국과 비교해도 높은 수치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전력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발전을 위한 에너지원도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서 지정학적 리스크나 에너지 가격 변동 위협에 노출되기 쉽다.
철강과 석유화학 산업이 대표적이다. 철강과 석화는 제조업의 기초 핵심 산업으로 발전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화석연료를 사용해왔다. 고로를 통해 쇳물을 뽑아내거나 나프타를 열분해하는 과정에서 화석연료는 효율적이면서도 저렴한 에너지원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고 중동 지역 위기까지 이어지면서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는 일을 미룰 수 없게 됐다.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발전을 지속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해진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수소와 전기를 활용한 방법이다. 탄소배출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철강의 대전환, 석탄 대신 그린수소로 철 뽑는다
철강산업에서 탄소 배출의 주범은 고로(용광로)다. 전통적인 철강 생산 방식은 철광석에서 산소를 제거하고 철을 녹이기 위해 석탄 기반 연료인 코크스를 대량으로 사용한다. 고로 내부에서 철광석과 석탄을 넣고 뜨거운 바람이 불면 코크스가 타면서 일산화탄소가 만들어진다. 일산화탄소는 철광석에 붙어 있는 산소를 뽑아내는 환원 반응을 일으켜 산화철을 순수한 철로 환원시킨다. 동시에 용광로 내부 온도가 1500도 이상으로 치솟으며, 환원된 철이 액체 상태의 쇳물로 변하는 용융 반응이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화학 반응의 부산물과 에너지 연소로 인해 매우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이러한 기존의 공식을 뒤엎는 대안이 바로 수소환원제철이다. 쉽게 말해 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해 철을 생산하는 혁신 기술이다.
수소환원제철은 환원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수소도 그린수소를 활용해야 한다. 수소는 생산 방식과 탄소 배출 저감 수준에 따라 스펙트럼이 나뉜다. 석탄이나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추출하며 제조 과정에서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브라운수소·그레이수소, 그레이수소 추출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탄소 포집·저장(CCS) 기술로 포집한 블루수소,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물을 분해하는 수전해 방식으로 생산하는 수소가 그린수소다. 그린수소는 이산화탄소가 전혀 배출되지 않는 무탄소 에너지원이다.
수소환원제철은 그린수소를 활용해 철광석을 분해해야 한다. 아직 전 세계적으로 100% 수소만을 활용한 환원로는 상용화되지 않았다. 스웨덴 철강사 사브(SSAB)가 실증 사업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상용화시키지는 못했다.
국내에서는 포스코그룹이 국책사업으로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개발 중이다. 포스코그룹은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기술인 '하이렉스(HyREX)'의 실증 단계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기존 용광로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던 환원 설비와 용융 설비를 서로 분리해 탄소배출을 줄이는 방식이다. 환원로에서 철광석을 고온으로 가열된 수소와 접촉해 고체 철을 제조하고, 이를 전기로에 넣어서 녹여 쇳물을 생산하게 된다. 지난 3월 수소환원제철 건립 용지 조성을 위한 산업단지 계획 변경 인허가 승인을 완료하는 등 실증을 위한 부지 확보와 인프라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철강 산업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생산 공정을 변경하는 일은 전 세계적 과제다. 유럽연합(EU)는 전력구매계약(PPA)을 활성화해 전력망 접근성을 개선해주고 있으며 영국은 전기로 전환에 5억 파운드(9000억원) 지원 및 에너지 비용 부담을 완화해준다. 일본도 수소환원제철 등 생산 공정 전환을 위한 기술개발과 설비투자, 세제를 통해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이러한 추세는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시행되면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석유화학의 파격, 화석에너지 가열 없이 전기만으로 생산
석유화학의 기초인 나프타 분해 공정을 전기 나프타로 전환하려는 시도 역시 시험대에 올라 있다. 나프타는 일반적으로 800도 이상의 고온에서 열분해해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을 얻는 공정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가열로를 돌리려면 막대한 화석에너지가 소모된다. 반면, 전기 나프타는 화석연료를 태우는 방식 대신 전기를 활용하는 전기로를 통해 나프타를 분해하는 방식이다. 이때 생산되는 전기는 신재생에너지를 통해서 만들어져야 한다.
전기 나프타 기술은 전 세계적으로 독일 화학기업 바스프가 사빅(SABIC), 린데(Linde) 등 기업들과 함께 세계 최초로 대규모 열분해시설 전기 가열로 실증에 성공했다. 시범 공장에서는 직접 가열 방식과 간접 가열 방식 두 가지를 활용한다. 직접 가열은 나프타가 통과하는 코일 자체에 직접 전기를 흘려보내 내부 저항열로 온도를 끌어올리는 방식이라면, 간접 가열은 반응관 주변에 전열 소자를 배치하고, 이로부터 나오는 복사열을 통해 반응관을 간접적으로 가열하는 방식이다. 온도가 올라가면서 탄화수소 사슬이 끊어지면 기초유분 제품으로 분해되는 것은 기존의 방식과 동일하다.
우리나라에서는 LG화학이 국책과제로 진행하고 있다.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은 끝났고 실증 단계에 와 있다. 2028년까지 전남 지역에 해당 시설을 짓고, 최종적으로 실증에 성공하는 것이 목표다.
남은 과제는 수소와 전기 가격
수소환원제철과 전기 나프타가 성공하기 위한 선행 조건이 있다. 우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핵심이다. 대규모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셈인데 업계에서는 현재 신재생에너지 인프라가 생산하는 전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방법도 강구해야 하지만, 산업용 전력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뿐만이 아니라 소형모듈원전(SMR)을 이용한 전기화 방안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수소환원제철은 수소 공급도 중요한 해결 과제다. 공급 확대를 통해 가격을 낮추고 수소를 대규모 활용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국내 그린수소 가격은 ㎏당 약 1만원으로 알려져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산업용 수소 공급 가격을 4분의 1수준인 2500원으로 낮추겠다고 공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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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연세대 겸임교수는 "유럽이나 일본 등에서는 천연가스 가격 대비 수소 생산 가격에 대한 차액을 보전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지원을 해주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이러한 제도적 지원이 없고, 해외에서 수소를 생산하는 사업에 대한 지원도 없기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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