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양공대와 정부가 함께 자율주행 검증 역량
각국 기업은 운행 기회·싱가포르는 평가 경험 확보
韓 스타트업 오토노머스에이투지도 도전
자율주행 시대의 경쟁력은 차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능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떤 기술을 도로에 내보낼지 판단하고, 실제 운행에서 얻은 정보와 경험을 자국의 자산으로 쌓는 능력도 중요하다.
차량 생산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도시 국가 싱가포르는 세계 각국의 자율주행 기업을 끌어들여 차량 생산부터 기술 검증까지 역할을 넓히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2023년 문을 연 글로벌 혁신센터(HMGICS)는 생산 거점이다. 이곳에서 생산한 아이오닉5 로보택시의 초기 물량은 미국 모셔널로 보내져 서비스 투입을 위한 시험과 안전 검증에 들어갔다. 해외 기업의 기술과 투자를 유치해 자율주행차를 생산하고 수출하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싱가포르는 자국 도로에서 운행할 차량을 평가하고 감독하는 체계도 갖췄다. 기업에는 기술을 시험하고 사업을 시작할 기회를 제공하고, 싱가포르는 교통·인력 문제의 해법과 새로운 기술을 관리할 경험을 확보하는 형태다.
아시아경제는 싱가포르 자율주행 시험·연구센터 세트란(CETRAN)에서 한국 기업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의 차량에 올라 그 과정을 살펴봤다.
◆웨이모도 현지 검증…도로에 나설 조건은 직접 확인
미국에서 무인택시를 운행하는 알파벳 자회사 웨이모는 최근 싱가포르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웨이모는 한국 진출도 예고한 바 있다. 싱가포르 육상교통청(LTA)은 지난 9월 웨이모의 진출 계획을 발표하면서 현지 안전·규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웨이모는 2027년 사람이 차량을 운전하는 준비 단계를 거쳐 2028년 상업적 호출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목표다.
웨이모가 미국에서 운행 경험을 쌓았더라도 싱가포르의 도로 구조와 교통 규칙, 기후에 맞춰 운행을 준비해야 한다. LTA는 모든 자율주행차가 도로에 투입되기 전 CETRAN에서 안전평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의 기술력과 현지 도로에서 운행할 수 있는 자격을 별도로 확인하는 것이다.
웨이모에 앞서 중국 위라이드와 포니AI도 자율 주행으로 싱가포르를 누비고 있다. 그랩은 위라이드의 자율주행 플랫폼을, 컴포트델그로는 포니AI 기술을 활용한다. 해외 기술기업과 현지 교통사업자가 손잡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기업들이 싱가포르로 향하는 배경에는 기술 검증을 실제 사업으로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있다. 평가 절차와 운행 조건이 제시돼 있고, 승객과 차량 운영망을 갖춘 현지 사업자와 협력할 수 있다.
CETRAN은 이 과정에서 기술을 검증하는 관문이다. 난양공대(NTU)는 연구와 시험장 운영, 차량 평가를 맡고 LTA는 도로 운행을 허가하고 감독한다. 대학의 연구 역량과 정부의 운행 허가·감독 체계를 연결한 것이다.
◆같은 상황 반복해 본다…정상 주행부터 이상 대응까지
CETRAN 시험장에서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의 레벨4 자율주행 차량 로이(ROii)는 자율 주행으로 주행했다. 레벨4는 정해진 구역과 조건 안에서 운전자 개입 없이 차량이 스스로 운행하는 자율주행 단계다. 로이는 핸들도 없었다.
이 차량은 스스로 교통 신호에 따라 정지했다 출발하고, 교차로를 지났다. 곡선 코스에서도 자연스럽게 주행을 이어갔다. 좌회전시에도 무리없이 스스로 주행했다. 기자와 차량에 동승한 성동형 오토노머스에이투지 싱가포르 지사장은 "정지선에서 무조건 섰다 가야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시험 코스는 사람의 운전면허 기능시험처럼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정해진 코스를 한 번 무사히 도는 것으로 평가가 끝나지는 않는다. 실제 시험에서는 정지한 장애물과 움직이는 보행자를 발견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지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확인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실제 시험에서는 보행자 역할을 하는 더미를 일정한 조건에 따라 움직이도록 설정한다. 차량이 정해진 지점을 통과하는 순간 출발시키거나 접근 속도를 달리하는 방식이다. 조건을 통제하고 주행 과정을 기록해야 차량이 어느 지점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조건에서 대응이 일관되는지도 중요하다. 장애물 앞에서 멈추더라도 시험할 때마다 정지 위치가 크게 달라지면 안전성을 판단하기 어렵다.
이상 상황에 대응할 준비도 필요하다. 통신 두절 등 기술적 이상을 감지하면 시각·청각 경보로 운영자에게 제어권을 넘겨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으로 달릴 때의 성능과 문제가 생겼을 때의 대응 체계를 함께 심사한다는 뜻이다.
인간 운전자가 운전면허 시험에서 불합격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럼 자율 주행 면허 시험은 어떨까. 성 지사장은 "중국 업체중에서도 싱가포르에서 면허를 한 번에 받지 못한 기업들도 있다"고 했다. 자율 주행 면허를 받기 위해서도 재수, 삼수를 한다는 의미이다.
◆청소차부터 주민 셔틀까지…실제로 필요한 곳에 투입
CETRAN에서는 청소차와 트럭도 볼 수 있었다. 승객용 차량만이 아니라 이 함께 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모습은 싱가포르가 자율주행을 도입하는 목적을 보여준다. 인구 노령화로 고민 중인 싱가포르에서 물류와 청소 같은 반복 업무에 자율 주행 차량을 적용하면 인력 부족에 대응할 여지도 생긴다.
성 지사장은 "싱가포르에서는 실질적으로 뭐가 필요한지를, 뭐가 빨리 상용화될 수 있는지를 고민을 하는 것 같다"라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정부 발주사업에서도 담당 공무원이 기술과 운영 계획을 구체적으로 검토한다. 성 지사장은 현지 사업에 참여할 때 담당자들이 관련 기술을 검토하고 기업과 여러 차례 회의하며 제안 내용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원하는 서비스를 분명히 제시하고 기업이 제안한 기술과 운영 방식으로 이를 구현할 수 있는지 따지는 과정이다.
싱가포르 신도시 지역인 풍골의 주민 셔틀은 자율주행 기술이 이런 과정을 통해 이뤄졌다. 그랩과 위라이드는 올해 4월 일반인 대상 서비스를 시작했고 컴포트델그로와 포니AI도 6월 일반인 탑승을 시작했다. 주민 거주지역과 생활시설, 대중교통 거점 등을 연결한다.
운행 규모도 확대할 계획이다. 그랩은 지난 9월 차량을 10대에서 향후 6개월 동안 50대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당국의 승인을 받아 풍골 밖으로 서비스를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기업은 사업 기회 얻고…싱가포르는 평가 자료와 경험 확보
싱가포르는 해외 기업의 자율 주행을 도입하면서 새로운 이동수단만을 확보하는 게 아니다. 싱가포르의 대학인 난양공대는 CETRAN을 통해 자율주행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 연구하고 시험 요건과 평가 방법을 개발한다. 서로 다른 기업의 차량을 평가하면서 어떤 상황에 취약한지, 도로 투입 전에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살펴볼 기회를 얻는다.
시험장 정보를 당국이 확인하는 체계도 마련했다. 2017년 CETRAN 시험장 개소 당시 정부 발표에 따르면 CCTV 영상은 LTA의 지능형교통시스템센터로 실시간 전송해 차량 데이터와 함께 평가에 활용하도록 했다. 대학의 시험장에서 이뤄지는 검증을 정부의 운행 준비도 판단과 연결한 것이다.
차량이 도로에 나온 이후에도 정보 제출은 계속된다. LTA의 공공도로 시험 신청 지침에 따르면 운영자는 위치와 속도, 주행 모드 등 지정된 운행 데이터를 매 운행일의 다음 날까지 당국의 자율주행차 모니터링 시스템에 보내야 한다. 운행 기록의 제출 자체가 시험 운행 조건에 포함돼 있다.
차량 내·외부 영상과 장애물 인식 정보 등을 담은 상세 기록도 보관해야 한다. 같은 지침은 시험 기간 전체와 종료 후 최소 3년까지 기록을 보관하고, LTA가 서면으로 요구하면 조사·검사·감사를 위해 제출하도록 한다. 정기적으로 받는 운행 정보와 필요할 때 확인하는 상세 기록이 함께 감독의 근거가 된다. 성 지사장은 "당국에서 언제 어떻게 확인을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상세하게 근거를 기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업의 알고리즘이나 학습 데이터 전체를 싱가포르 정부에 넘긴다는 의미는 아니다. 당국이 확보하는 것은 차량이 어디서 어떻게 움직였고, 이상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
이 구조에서는 해외 기술의 도입이 싱가포르의 평가·운영 역량 축적으로 이어진다. 대학은 차량을 시험하고 평가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정부는 운행 자료를 토대로 허가와 감독에 필요한 판단 근거를 확보한다. 현지 교통사업자는 승객을 태우며 배차와 관제, 차량 관리 경험을 쌓는다.
현대자동차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는자율 주행차량을 생산해 수출했다.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에서 생산된 ‘아이오닉 5 로보택시’의 본닛에 로런스 웡 싱가포르 총리의 사인이 쓰여있다. 사진=백종민 테크 스페셜리스트
원본보기 아이콘테슬라와 함께 서방권 자율 주행의 '쌍두마차'로 통하는 웨이모 역시 싱가포르에서 사업을 하려면 현지 기준에 따라 기술을 검증받아야 한다. 운행을 시작한 뒤에는 그 결과를 확인할 자료도 남겨야 한다. 세계 자율주행 기업들이 싱가포르 도로에서 실적을 쌓는 동안, 싱가포르에는 그 기술을 선택하고 관리할 능력이 쌓이는 셈이다. 차량 생산의 볼모지였던 싱가프로가 자율 주행 시대에 적응하는 방법이다.
한편 오토노머스에이투지는 7일부터 경기도 광명시에서 자율주행 버스 'GM1'의 시범운행도 시작했다. GM1은 철산역과 광명역, 광명동굴을 연결하는 노선으로 왕복 24km 구간을 운행한다. 철산역 인근 생활권과 광역교통거점인 KTX 광명역, 주요 관광지인 광명동굴을 오가는 시민과 방문객이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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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형 오토노머스에이투지 대표는 "자율주행 상용화를 위해서는 시민들이 실제로 이동해야 하는 구간에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광명시 자율주행 시범운행에 필요한 차량과 기술을 제공해 시민의 생활권과 교통·관광 거점을 연결하고, 보다 더 많은 지역에 교통 수요 맞춤형 자율주행 서비스가 도입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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