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필 탄신 120주년 특별전 '상서, 컬렉션을 읽다'
첫돌 사진 속 병풍부터 오동상자까지
상서 30건 61점·유물 21건 45점·출품 유물 51건 106점 전시
'간송컬렉션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3년 질문의 마지막
1907년, 전형필은 아직 아무것도 수집하지 않았다. 한 살이었다.
1907년 촬영된 간송 전형필의 첫돌 사진. 전형필 뒤편 병풍이 이번 전시에 나온 조석진의 ‘인물고실지도’다. 수집가가 되기 훨씬 전부터 그의 곁에 있던 작품이라는 사실이 사진 한 장에서 확인된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조석진의 ‘인물고실지도’. 중국 고사 속 인물과 일화를 열두 폭에 담았다. 1907년 한 살배기 전형필의 돌사진 뒤 병풍으로 등장했던 작품으로, 적어도 그 이전부터 종로 본가에 있었던 간송가의 초기 소장품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원본보기 아이콘색동저고리를 입고 커다란 의자에 앉아 돌사진을 찍었다. 119년 뒤 그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것이 하나 보인다. 아이 뒤에 놓인 병풍이다. 중국의 옛 인물과 이야기를 그린 조석진의 '인물고실지도'. 지금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1층에 있는 바로 그 그림이다.
적어도 1907년 이전부터 전형필의 종로 본가에 있던 작품이다. 그러니 조금 짓궂게 말하면, 수집가 전형필보다 간송컬렉션이 먼저 있었던 셈이다. 현재는 열두 폭 족자로 다시 꾸며져 전하며, 이번 전시에서는 그중 여덟 점을 만날 수 있다.
7일 개막하는 간송미술관 가을 특별전 '상서(箱書), 컬렉션을 읽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간다. 무엇을 모았느냐보다 어떻게 알아보고, 기록하고, 보관했느냐를 묻는다. 그래서 김홍도와 김정희, 장승업의 그림과 글씨만큼이나 자꾸 눈에 밟히는 것이 있다. 작품 옆에 놓인 낡은 오동나무 상자다.
조선 말기 화가 김수철의 ‘북산화첩’과 이를 보관해 온 오동나무 상자. 작품 옆에 놓인 상서에는 작가와 작품의 이름, 전래 내력이 함께 남았다. 이번 전시는 명작을 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이 어떻게 기억되고 전해졌는지를 읽게 한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원본보기 아이콘전형필은 유물을 사들이고 끝내지 않았다. 스승 위창 오세창을 비롯한 감식가에게 보여 진위와 가치를 확인했고, 작품의 이름과 재료, 누구 손을 거쳐왔는지를 기록했다. 작품 규격에 맞춰 전문 장인에게 오동나무 상자도 따로 주문했다. 한 점 만드는 데 20원에서 많게는 200원대가 들었다. 당시 쌀 수십 가마니 값이었다. 현재 간송미술관에 남은 오동나무 상자는 약 700건. 그중 258건에서 이런 기록, 즉 '상서'가 확인됐다.
그 집요함은 결국 집 하나를 짓는 데까지 갔다. 1934년 성북동에 북단장을 조성해 종로 본가의 소장품을 옮겼고, 1938년에는 그 유물을 연구하고 보존할 보화각을 세웠다. 화려한 미술관이라기보다, 자신이 모은 것이 다음 세대까지 살아남도록 만든 장소에 가까웠다.
88년 된 보화각은 보수·복원을 거쳐 2024년 다시 문을 열었다. 재개관 이후 미술관은 줄곧 한 질문을 던졌다. '간송컬렉션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보화각 1938'에서 출발해 '위창 오세창', '선우풍월', '보화비장', '문화보국'으로 이어진 전시는 건물과 사람, 수집가와 감식가, 작품이 간송으로 흘러든 경로를 차례로 들여다봤다. 올해 전형필 탄신 120주년을 맞아 그 3년의 마지막에 꺼내놓은 것이 상서다. 사들이고, 알아보고, 기록하고, 넣어두고, 물려주는 것. 컬렉션이 비로소 완성되는 마지막 과정이다.
추사 김정희가 30대 중반인 1820년 무렵 청나라 문인 고순에게 써준 행서 대련 ‘직성수구’. 베이징 시장과 박석윤의 손을 거쳐 전형필에게 들어왔고, 오세창은 상자 위에 그 여정을 적으며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라고 남겼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원본보기 아이콘상자는 말이 많다. 김정희가 30대 중반이던 1820년 무렵 청나라 문인 고순에게 써준 '직성수구'는 중국 베이징의 수장가에게 넘어갔다가 육당 최남선의 매부 박석윤의 눈에 띄어 다시 한국으로 왔고, 이후 전형필의 소장품이 됐다. 1939년 겨울 이 작품을 본 오세창은 상자 위에 그 여정을 적은 뒤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라고 썼다. 작품만 보아서는 알 수 없는 한 세기의 이동이 나무판 한 장 위에 남았다.
단원 김홍도의 ‘낭원투도’.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친 동방삭을 익살스럽게 그렸다. 오세창은 1934년 비 내리던 날 이 그림을 보고 “단원 인물의 걸작”이라고 상자 안쪽에 적었다. 그림과 90여 년 전 감식가의 감탄이 나란히 전해지는 작품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원본보기 아이콘김홍도의 '낭원투도' 앞에서는 조금 더 생생하다. 1934년 비 내리던 날 작품을 본 오세창은 "단원 인물의 걸작"이라고 적었다. 90여 년 전 누군가 그림 앞에 서서 감탄한 흔적을 지금의 관람객이 다시 읽는다. 미술관 설명보다 오래된 감상평이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따라가면 상서는 더 사적인 것이 된다. 30대의 '직성수구', 50대의 '신취미태사잠유시첩', 60대의 보물 '차호호공', 70대의 '호고연경'이 이어진다. 서체가 늙어가는 것만 보이는 게 아니다. '차호호공'을 길게 평한 오세창은 마지막에 슬쩍 덧붙였다. 감평이 조금 번잡하더라도 "간송이 웃어넘겨주길 바란다"고. 공적인 감정 기록이 어느 순간 스승과 제자 사이의 말투가 된다.
추사 김정희가 60대 후반에 쓴 보물 ‘차호호공’. 거칠고 힘찬 촉예체의 경지가 드러나는 대련이다. 오세창은 상서에 작품을 길게 평한 뒤 “감평이 다소 번잡하더라도 간송이 웃어넘겨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감정 기록에서 스승과 제자의 사적인 목소리까지 들리는 대목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원본보기 아이콘그래서 이 전시는 그림과 상자 사이를 몇 번 오가게 만든다. 작품을 보고, 상자를 읽고, 다시 작품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처음에는 낡은 나무통처럼 보였던 물건이 조금씩 달라진다. 누가 이 작품을 알아봤는지, 무슨 이름으로 불렀는지, 어느 시장과 어느 사람의 손을 지나 여기까지 왔는지가 붙기 시작한다.
컬렉션은 좋은 물건을 많이 가진 상태가 아니었다. 적어도 전형필에게는 그랬던 듯하다. 사들인 뒤에도 계속 물었고, 확인했고, 이름을 남겼다. 작품을 감싼 상자뿐 아니라 그 작품이 지나온 시간까지 보관하려 했다.
간송미술관 보화각 앞에 새로 자리한 조선 석호상 한 쌍. 1935년 일본인 수장가가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 내놓은 것을 전형필이 1200원에 낙찰받았다. 바다를 건너갔다 돌아온 호랑이가 90여 년 만에 보화각의 새 문지기가 됐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원본보기 아이콘보화각 밖에서도 작은 교대가 있었다. 90년 가까이 건물 앞을 지키던 중국 석사자 대신 둥근 얼굴의 조선 석호상 한 쌍이 새 문지기가 됐다. 1935년 일본인 수장가가 내놓은 것을 전형필이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서 1200원에 사들인 유물이다. 바다를 건너갔다 돌아온 호랑이가 이제 그가 세운 건물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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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살 전형필 뒤에 있던 병풍에서 시작해, 그가 모은 그림과 글씨, 그것을 감싼 상자, 그리고 다시 보화각 문 앞까지. 우리는 오래도록 간송이 무엇을 지켰는지를 봐왔다. 이번에는 그가 어떻게 지켰는지를 본다. 그림만 남은 것이 아니다. 무엇을 귀하게 여겼는지, 그것을 다음 사람에게 어떻게 전해야 한다고 믿었는지도 함께 남았다. 전시는 12월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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