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근로시간 단축 넘어 삶의 질·생산성 함께 높일 방안 모색
'일할 땐 성과에 초점 맞춰 시간 제약 없이 하고,
쉴 땐 장기 휴가 등을 통해 제대로 쉬는' 방식 제안
보상은 추가 근무 시간 아닌 성과 중심 명확히 해야

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서울대 특임교수)가 퇴임 후 처음으로 논문을 발표하면서 '한국형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성과·자율 중심 근로시간제)' 도입을 제안했다. 총급여가 중위 임금의 200%가 넘는, 8200만원 이상이 되는 일부 관리직과 전문직, 사무직은 '일할 땐 성과에 초점을 맞춰 시간 제약 없이 자율적으로 일하고, 쉴 땐 장기 휴가 등을 통해 제대로 쉬는' 방식을 제안한 것이다. 보상은 더 일한 시간을 계산해 받는 것이 아니라, 성과 중심으로 얻을 수 있도록 명확한 성과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총재는 6일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 포럼에서 '근로시간 제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논문을 공개하면서 "과거 우리나라 경제 성장은 블루칼라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현재까지 모든 노동자를 블루칼라 중심 프레임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건 문제"라며 "화이트칼라를 중심으로 근로 시간 유연성을 높이고, 성과 중심 연봉제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열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 포럼에서 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사진 오른쪽)와 참석자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김유리 기자

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열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 포럼에서 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사진 오른쪽)와 참석자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김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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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화이트칼라에 주 52시간 제약…초과근로수당 없애고 성과 중심 보상해야"

논문은 이 전 총재와 오삼일 한은 조사국 고용연구팀장, 윤진영 고용연구팀 과장, 한진수 조사총괄팀 조사역이 함께 썼다. 이날 발표는 오 팀장이 맡았다. 오 팀장은 "고령화와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노동력 규모와 업무 방식이 달라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근로시간 제도도 변화해야 한다"며 "'한국형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도입해 실질적 재량과 성과 중심 보상이 가능한 직무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 팀장은 "연구개발·IT·금융 등 성과 중심 고숙련 지식기반 직무는 창의성·몰입도가 중요하고, 글로벌 경쟁 환경하에서 집중근무가 필수"라며 "지식기반근로자 비중이 높은 산업일수록 근로시간 유연성과 1인당 생산성 간 뚜렷한 양(+)의 관계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잠재 대상은 약 149만명으로 추정된다. 상용 근로자의 10.8%다. 오 팀장은 "관리직과 전문직, 사무직 중 총급여가 중위임금의 200%(약 8200만원) 이상인 근로자가 대상으로, 관리자의 79%, 전문가의 19%, 사무 종사자의 16%가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잠재 대상 근로자의 약 42%는 지식기반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잠재 대상의 총급여 대비 성과급 비중은 평균 18.5%로,성과 연동 보상체계 도입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미국에선 보수가 일정 수준 이상 되는 관리·전문직 등의 연장근로수당 지급 의무를 면제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도입하고 있다. 일본은 2019년 연소득 1075만엔 이상 고숙련 전문직을 대상으로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를 도입했다. 오 팀장은 "일본에선 대다수 근로자(87.7%)가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특히 성과 및 자율성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인식했다"고 말했다. 단, 근로시간이 길다(68.5%)는 지적이 있으므로 이에 대한 건강 보호 장치 등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형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의 설계는 먼저 근로시간 및 초과근로수당 규정의 적용 제외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주 40시간·주 52시간 한도(근로기준법 제50·53조)와 연장·야간·휴일 가산수당(근로기준법 제56조) 적용을 제외하는 방식이다.


뿐만 아니라 명확하고 주기적으로 조정되는 대상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오 팀장은 "상용 근로자 중위 임금의 200% 이상을 대상으로 하면서 임금 상승률, 노동시간 여건을 반영해 주기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직무 측면에서도 실제 재량성과 성과 측정 가능성을 고려해 사용자가 근로시간과 업무방식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직무는 제외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런 바탕에서, 성과 중심 보상 체계는 확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과 보상 기준, 산정 방식을 근로 계약 등에 명시하고 기존 확정 급여를 보전하며 사전에 합의된 성과를 추가 보상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충분한 건강 보호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오 팀장은 "최소 연속 휴식시간 보장, 연간 휴일·휴가 사용 의무화, 장시간 근로 시 건강검진과 면담, 사업주에게 의무화한 건강보호 조치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표준적 근로 형태 강하게 고착…집중 업무하고 쉴 때 제대로 쉬어야"

지난 20년간 근로시간은 꾸준히 감소했다. 한국의 연 근로시간은 2000년 2447시간에서 지난해 1846시간으로 줄었다. OECD와의 평균 격차 역시 687시간에서 141시간으로 줄였다. 그러나 한국의 성장 잠재력은 빠르게 둔화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집계 기준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21년 2.5%에서 지난해 1.9%로 0.6%포인트 줄었다. 같은 기간 주요 7개국(G7) 잠재성장률 변화 수준(-0.4%포인트~0.5%포인트)보다 하락 폭이 크다.


오 팀장은 "우리가 현재 일하는 모습은 저생산성·장시간 구조, 경직적인 근로시간, 낮은 휴가 소진율, 제한적인 유연근로제 활용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짚었다. 주52시간 상한제 도입을 통한 근로시간 단축으로 초과근로는 줄었으나, 소득 감소는 저소득층에 집중됐다는 분석이다. 성과급 비중이 높은 기업은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오 팀장은 "근로시간당 잠재성장률(GDP)은 OECD 평균을 하회한다. 낮은 생산성을 장시간 근로로 보완하는 구조"라며 "월요일에서 금요일,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라는 표준적 근로 형태가 강하게 고착돼 있다"고 지적했다. 필요할 때 집중적으로 일하고 이후 충분히 휴식하는 유연한 근로가 제한돼 있다는 설명이다. 오 팀장은 "1일 10시간 초과근로 경험 근로자 비중은 한국이 31.4%로, 유럽(8.9%)보다 높았으나 미국(55.2%)보다는 크게 낮았다"고 짚었다.


정형화되고 경직적인 근로시간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오 팀장은 "현재 다양한 유연근로제도가 마련돼 있으나 근무 일정의 사전 확정 요건, 짧은 적용기간, 제한적 대상 업무, 법적 불확실성 등으로 실제 활용도는 낮다"며 "한국의 유급휴가 소진율은 75%로 주요 12개국 가운데 일본(63%) 다음으로 소진율이 낮다. 주어진 휴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데다 장기휴가 활용 비중도 매우 낮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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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일률적인 근로시간 단축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쉴 때 제대로 쉬는' 문화가 장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휴가 소진율이 75%에서 95%로 상승하면 연간 약 31시간이 감소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며 "한국형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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