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장관·국회의원 거쳐
한국과총·민간 대기업·카이스트 잇단 '여성 최초'
AI 시대 인간의 경쟁력으로 공감·관계·도덕성 강조
세대 통합의 해법은 경청과 소통

"AI 시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생물학적 지능의 한계에 도전한 국면에서 김명자 국민통합위원회 고문이 던진 질문이다. AI가 초고속으로 문제를 풀고 방대한 기억 능력을 발휘하는 시대일수록 공감과 관계를 맺는 능력, 책임성, 도덕성이 더 중요한 덕목이 된다는 것이다.

김 고문은 오랫동안 기술 변화가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지 탐구해왔다. 그가 2019년 저술한 '산업혁명으로 세계사를 읽다'에서는 산업혁명이 세상을 어떻게 바꿔왔는지를 다뤘다. 동시에 1970년대 화학과 과학사를 강의하는 교수로 출발해 환경부 장관과 국회의원, 과학기술계 단체장, 비정부기구(NGO) 대표, 대기업 이사회 의장, 카이스트(KAIST) 이사장까지 55년간 서로 다른 조직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헌정 최장수 여성 장관, 최초 여성 국회윤리위원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50년 사상 첫 여성 회장, 민간 대기업 첫 여성 이사회 의장, 카이스트 첫 여성 이사장 등의 기록도 남겼다.


우리 사회의 주요 조직과 갈등의 현장을 경험한 그가 얻은 결론은 결국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환경부 장관 시절에는 개발과 환경 사이의 숱한 갈등을 조정했고, 이번까지 세 정부에서 국민(사회)통합위원회 위원과 고문으로 세대와 진영 등 복합 갈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는 "복잡한 세상에서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며 경청과 공감, 관계의 힘을 거듭 강조한다.

AI 열풍 속에서 인간다움을 다시 묻게 되는 지금, 세대와 계층의 갈등으로 분열된 사회 문제 역시 이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고 김 고문은 본다. 기술혁신이 빠를수록 사람을 이해하고 함께 일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고, 리더십에서도 IQ보다 EQ와 통합 역량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음은 김 고문과의 일문일답.


김명자 국민통합위원회 고문이 아시아경제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허영한 기자

김명자 국민통합위원회 고문이 아시아경제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허영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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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술의 진화를 어떻게 보고 있나.

▲문명사적 대전환기라고 본다. 2016년만 해도 '4차 산업혁명'이 화두였는데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의 기술 요소 중 하나였던 AI가 주도하는 AI 혁명이 되고 있다. 1997년 5월 IBM의 딥블루가 체스 챔피언 개리 카스파로프를 이긴 사건은 AI가 여는 새로운 문명을 예고했다. 2016년 이세돌 9단과 구글 알파고의 대국은 더 큰 충격이었다. 현재는 생성형 AI를 넘어 에이전틱 AI, 피지컬 AI로 가고 있다. AGI(범용인공지능), ASI(초인공지능)의 출현도 시간문제이고, AI가 세계 경제와 정치, 산업 패권을 뒤흔들 것이다. 기술혁신의 속도가 너무 빨라 인간 사회의 제도와 교육, 노동시장이 따라가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빌 게이츠의 지적대로 AI 시스템 자체가 사이버 공격, 사기, 허위정보, 생물무기 등의 물리적 위험을 일으킬 가능성이다. 이제는 기술을 얼마나 빨리 개발하느냐보다 그 기술을 어떤 가치와 규범 아래 사용할 것인가를 다뤄야 하는데, 논란이 분분한 채 아직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다.


-AI가 많은 일을 대신하면 인간에게 남는 역할은 무엇인가.

▲그 질문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까지 지능이라고 하면 IQ를 떠올렸다. 문제를 잘 풀고 계산하고 기억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그 속도와 기억 용량에서 AI가 인간을 추월하고 있다. 앞으로는 질문하고 판단하고 공감하고 협력하고 결정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다. EQ와 창의성, 인간관계,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성이 더 중요해진다는 얘기다. 1938년부터 이어진 하버드대 성인발달 연구는 사람들의 건강과 직업, 가족, 행복을 추적한 결과 재력이나 명예, 지위보다 좋은 인간관계가 행복과 건강을 좌우한다고 결론지었다. AI 시대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맺는 능력, 서로 배려하고 공감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더 큰 경쟁력이 될 것이다.


-AI가 일자리에 미칠 영향도 걱정이다.

▲구조적 격변이 예상된다. 세계경제포럼(WEF) 보고서 'Future of Jobs 2025'는 2030년까지 1억7000만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9200만개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직업이 사라지느냐만이 아니라, 어떤 직업의 어떤 과업이 사라지고 어떤 과업이 새로 생기는지를 보는 것이다. 법률, 의료, 고객 서비스, 소프트웨어, 제조업 등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특히 청년의 첫 취업이 영향을 크게 받고 있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AI가 화이트칼라의 생산성을 높이겠지만 고용 조정과 임금 격차를 키울 수 있기 때문에 AI 전환의 성과를 어떻게 분배할지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교육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답을 찾아야 한다. 교육은 AI로 인해 가장 큰 충격을 받는 분야 중 하나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로 혼란을 겪고 있지만, 어느 나라도 마땅한 제도적 틀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AI 기술이 널리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조건 막기도 어렵다. 올바르게 활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동시에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게 해야 한다. 좋은 질문을 던지고 AI의 답을 검증하는 판단력을 기르려면 기초 지식이 탄탄해야 한다. AI 시대 교육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능력, 창의성, 회복탄력성, 윤리적 판단 능력을 함께 키워야 한다.


-교수, 장관, 국회의원, 과학기술계, 기업, NGO까지 여러 조직을 경험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리더십은 무엇인가.

▲국회의원 때 '합리성과 감성의 거버넌스 리더십'을 내걸었다. 한쪽에는 논리성·합리성·효율성이 있고, 다른 쪽에는 감성·유연성·관계성이 있다. 두 영역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통찰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리더십의 시작은 경청이다.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는 어린 시절 템부 부족 회의를 지켜보면서 평생의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을 다 말하게 한 뒤 지도자인 종긴타바는 마지막에 발언하고,' 합의를 거쳐 우리가 함께 결론에 도달했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리더십이다. 겸손과 인내와 지혜가 있어야 가능하다.


김명자 국민통합위원회 고문이 아시아경제 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서울 도심을 내려다보며 기자와 이야기하고 있다. 허영한 기자

김명자 국민통합위원회 고문이 아시아경제 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서울 도심을 내려다보며 기자와 이야기하고 있다. 허영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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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국민통합위원회 고문으로 세대 간 대화에도 참여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짧은 기간에 분단과 전쟁, 산업화·민주화를 겪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1962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06달러였고, 2024년 3만6000달러를 넘었다. 지금 청년들과 우리 세대는 서로 다른 문명을 살아온 셈이다. 가치관이 다른 게 당연하다. 다만 4만달러 시대를 앞두고도 청년들이 취업과 주거, 결혼으로 고통받는 게 어른 세대로서 참 미안하고 마음 아프다. 앞으로 AI 경제로 빈부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도 우려된다.


-세대 갈등과 사회 분열을 줄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진솔한 대화와 소통이 갈등과 분열을 줄이기 위한 첫걸음이다.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1865년 3월 링컨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 연설이 인상 깊다. 북부를 향해 승리를 축하하지도 않았고, 남부를 향해 노예제를 두고 비난하지도 않았다. "국민 모두가 그 죄와 전쟁의 책임을 공유한다"는 역사 인식 아래 "그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고, 모두에게 자비를 베풀자"며 국민적 화해와 통합을 호소했다. 통합의 리더십은 서로 다른 생각을 똑같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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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최초'라는 기록이 많다. 미래 여성 리더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학위를 마친 뒤부터 55년의 커리어를 돌아보면 큰 꿈을 갖고 무엇에 도전했다기보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을 따름이다. '진인사대천명'으로 살되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중요한 것은 항상 "참으로 최선을 다했는가"였다. 요즘 후배들을 보면 스마트하고 변화에 능동적이다. 선배로서 "훌륭한 리더십은 좋은 팔로워십에서 시작된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어느 자리에 가든 "이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역량을 갖춰야 한다. 루이 파스퇴르는 "행운은 준비된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책 한 권을 추천한다면.

▲장훈 교수의 '훌리건과 벌컨'을 추천한다. 강성 팬덤과 진영 논리에 빠진 한국 정치를 진단하면서 타협의 가치를 강조한 책이다. 극단적인 목소리가 공론장을 장악하면 합리적이고 온건한 시민들은 정치에서 멀어진다.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와 양보를 통해 합의를 만들어가는 것이 민주주의다. 정치에 냉담한 시민들이 관심을 가질 때 정치가 바뀔 수 있다는 저자의 메시지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준다.

▶김명자 국민통합위원회 고문은
1944년생.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숙명여대 교수 등을 거쳐 1999~2003년 환경부 장관을 지냈으며 김대중 정부 최장수 장관으로 기록됐다. 제17대 국회의원,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등을 지냈고 2016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50년 역사상 첫 여성 회장으로 선출됐다. 효성 이사회 의장을 맡아 민간기업 부문 첫 여성 이사회 의장을 지냈으며 2023년 카이스트 설립 이후 첫 여성 이사장에 취임해 2026년 임기를 마쳤다. 현재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산업혁명으로 세계사를 읽다' , '팬데믹과 문명' 등이 있다.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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