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연행·강제 구금으로 얻은 자백… 증거능력 인정 안 돼"

대학원생 시절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반공법 위반 등으로 유죄가 확정된 남성이 57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통혁당 사건은 1968년 8월 중앙정보부가 북한의 지령을 받은 지하당 조직을 적발했다며 발표한 공안사건이다.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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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6-2부(재판장 이경훈)는 지난달 29일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재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 요지를 공시하기로 했다.

A씨는 대학원생이던 1966년 6월 대학원 동료 B씨의 소개로 C씨를 만나 활동소조(북한에서 조직되는 작은 집단 활동)를 조직해 반국가단체를 구성한 혐의로 기소됐다. 1967년 6월 C씨가 주재한 회합에서 국회의원 선거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방한할 외국 사절에 반대하는 삐라 100여매를 만들어 살포하게 한 혐의도 받았다. C씨에게서 북한을 찬양하는 선전책자를 받고 C씨를 수사기관에 알리지 않은 혐의도 적용됐다.


1심은 1969년 1월25일 A씨에게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 등을 선고했다. 2심은 같은 해 5월26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2년 등을 선고했고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A씨는 지난해 10월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 등이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경우를 재심 사유로 정한 형사소송법 420조 7호에 따라 올해 8월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쟁점은 A씨가 중앙정보부에서 쓴 자필 진술서와 신문조서 등의 증거능력이었다. 중앙정보부 수사관이 작성한 검거동행보고에는 A씨를 1968년 7월28일 오전 6시 주거지에서 검거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같은 보고서의 작성일은 그 전날인 7월27일로 기재돼 있었다. A씨의 자필 진술서 작성일도 '1968년 7월' 또는 '1968년 7월27일'이었다.


재판부는 "A씨가 7월27일 이전에 연행돼 7월30일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며 "임의동행 내지 긴급구속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강제 연행 및 구금에 해당해 적법절차와 영장주의를 위반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했다.


아울러 중앙정보부에서 한 자백 취지의 진술이 허위진술을 유발 또는 강요할 위험이 있는 상태에서 행하여진 것으로, 임의성 없는 자백에 해당한다고도 봤다. 검찰 조사 단계에서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이어졌다며 검찰 신문조서 등의 증거능력도 인정하지 않았다.


남은 증거로도 범죄 증명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활동소조 혐의에 대해 "A씨가 B·C씨와 몇 차례 만나 사회현실 등에 관한 대화를 나눈 것을 넘어 반국가단체로서의 활동소조를 조직하였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했다. 또 "삐라 제작 등은 객관적으로 부정선거를 규탄하기 위한 행위로 보일 뿐"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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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C씨에게 선전서적을 받은 것에 대해서도 "학문적 연구의 목적 또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에 따른 것으로 보일 뿐"이라며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미칠 구체적이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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