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반포 580돌 맞아
'가갸날'로 시작한 한글날
한글날 100년 뒤 달라진 우리말

오는 9일 한글날을 앞두고 이처럼 빠르게 변하는 우리말과 한글의 의미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6일 연합뉴스는 최근 온라인과 일상에서는 기존에 없던 신조어가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며 한글날 앞두고 '한글날'의 의미와 문화 현상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먼저 올해는 한글날 기념행사가 처음 열린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578돌 한글날을 기념해 광화문광장과 국립한글박물관 등에서 '2024 한글주간' 행사의 모습.  조용준 기자 jun21@

578돌 한글날을 기념해 광화문광장과 국립한글박물관 등에서 '2024 한글주간' 행사의 모습. 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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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반포 580돌이자 한글 대중화에 앞장선 국어학자 주시경 탄생 150주년이기도 하다. 100년 전 국어학자들이 우리 글을 지키기 위해 '가갸날'을 만들었다면, 한 세기가 흐른 지금 한글과 한국어는 전에 없던 속도로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내며 변화하고 있다.

줄임말·야민정음·외래어 결합까지 신조어 생성 방식도 다양

최근 온라인과 일상에서는 기존에 없던 신조어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가장 흔한 형태는 '느좋'처럼 긴 표현을 짧게 줄이는 방식이다. 과거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짐),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등이 등장했던 것처럼 젊은 세대는 최소한의 음절로 의미와 분위기를 전달하는 표현을 빠르게 만들어낸다.

글자 모양을 비틀어 새로운 단어처럼 사용하는 방식도 있다. 이른바 '야민정음'이다. 한글 자음과 모음의 모양이 비슷한 점을 이용해 '멍멍이'를 '댕댕이', '명작'을 '띵작', '광역시'를 '팡역시'로 적는 식이다. '폭풍눈물'을 글자 모양이 비슷하게 보이도록 뒤집은 '롬곡웊눞' 같은 표현도 한때 온라인에서 유행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한글이 새겨진 세종대왕 동상옆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조용준 기자 jun21@

서울 광화문광장에 한글이 새겨진 세종대왕 동상옆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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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어와 한국어를 결합해 새로운 뜻을 만드는 경우도 흔하다. 근거 없는 개인적인 생각을 뜻하는 '뇌피셜'은 '뇌'와 영어 '오피셜(Official)'을 결합한 말이고, 부지런하고 모범적인 일상을 의미하는 '갓생'은 영어 '갓(God)'과 '인생'을 합친 표현이다. 여기에 '밤티'나 '늙크크'처럼 배경지식이 있어야 이해 가능한 신조어도 있다. '밤티'의 경우 온라인 게임 이용자의 별명에서 유래해 '못생겼다', '별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늙크크'는 아이돌 그룹 코르티스의 곡 '영크크'(영 크리에이터 크루)를 뒤집어 최신 유행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일컫는 표현이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별다른 설명 없이 통하지만, 기성세대에게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말들이다. 문제는 새로운 말이 생겨나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면서 세대 사이 언어 장벽까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성호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최근에는 과거보다 신조어의 의미를 유추하기조차 어려운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며 언어 사용자 사이에 세대 분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새로운 표현이 생겨도 단어 구성만 보면 어느 정도 뜻을 추측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나 게임, 아이돌 문화 등 제한된 집단에서 만들어진 표현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배경을 모르면 의미 자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한글 파괴"일까…알고 보면 '한글'과 '한국어'는 다르다

신조어가 등장할 때마다 "한글이 파괴되고 있다"라거나 "한글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다만 전문가들은 한글과 한국어를 구분해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글은 한국어를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자 체계'이고, 한국어는 우리가 말하고 사용하는 '언어'다.

신조어가 등장할 때마다 "한글이 파괴되고 있다"라거나 "한글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다만 전문가들은 한글과 한국어를 구분해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아시아경제DB

신조어가 등장할 때마다 "한글이 파괴되고 있다"라거나 "한글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다만 전문가들은 한글과 한국어를 구분해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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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I love you'를 소리 나는 대로 '아이 러브 유'라고 적으면 글자는 한글이지만 언어는 영어다. 반대로 '사랑해'를 로마자로 'Saranghae'라고 적는다면 글자는 한글이 아니지만, 언어 자체는 한국어다. 따라서 '뇌피셜'이나 '갓생'처럼 단어를 줄이거나 외국어와 결합해 새 표현을 만드는 현상은 엄밀히 말해 '한글의 변형'이라기보다 '한국어의 변화'에 가깝다. 반면 '댕댕이'나 '띵작'처럼 글자의 시각적 모양을 이용하는 '야민정음'은 한글 자체의 형태를 변형해 사용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2017년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에서 고(故) 연규동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교수 역시 언어와 문자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우리말을 사랑하는 것과 우리글을 사랑하는 것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지만, 한국어와 한글을 정확히 구분해 이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취지다.

100년 전에는 '가갸날'…한글날의 시작

지금은 매년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지만, 처음부터 날짜와 명칭이 지금과 같았던 것은 아니다. 1926년 조선어연구회는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맞아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기리는 기념행사를 준비했다.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국어학자들은 한글을 민족정신을 지키는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했다. 첫 기념식은 1926년 11월 4일, 당시 음력 9월 29일에 열렸다. 조선어연구회는 세종실록 1446년 음력 9월 29일 기록에 있는 '이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졌다'는 내용을 근거로 이날을 기념일로 정했다.

당시 이름은 '한글날'이 아닌 '가갸날'이었다. '가갸'는 한글을 익힐 때 초성 'ㄱ'과 모음을 차례로 결합해 읽던 '가갸거겨…'에서 비롯된 표현으로, 과거 한글을 부르던 말 가운데 하나다. 이후 '한글'이라는 명칭이 널리 사용되면서 기념일 명칭 역시 자연스럽게 '한글날'로 바뀌었다. 날짜는 여러 차례 변경됐다.

서울 종로구 세종이야기를 찾은 관람객들이 한글과 관련된 전시물을 보고 있다. 강진형 기자aymsdream@

서울 종로구 세종이야기를 찾은 관람객들이 한글과 관련된 전시물을 보고 있다. 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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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음력을 기준으로 행사를 열었지만 매년 날짜가 달라지는 불편이 있었다. 1931년부터 1933년까지는 율리우스력 환산을 기준으로 10월 29일을 기념했고, 1934년부터는 그레고리력을 적용해 10월 28일로 하루 당겨졌다. 현재의 10월 9일이 자리 잡은 계기는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해례본'이었다.


해례본에 기록된 '정통 11년 9월 상한'에서 '상한'은 매달 1일부터 10일까지를 뜻한다. 조선어학회는 이를 바탕으로 1446년 음력 9월 10일, 양력 10월 9일을 훈민정음 반포일로 정했다. 광복 이후 한글날은 10월 9일로 확정됐다. 정부는 1949년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했으나 1990년 공휴일이 많다는 이유로 제외했다. 이후 한글 관련 단체와 시민들의 요구가 이어졌고 2005년 한글날은 5대 국경일 가운데 하나로 지정됐다. 2012년에는 다시 공휴일이 됐다.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 내부 모습. 강진형 기자aymsdream@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 내부 모습. 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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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올해는 한글 역사에서도 여러 의미가 겹치는 해다. 한글날 첫 기념행사 100주년이자 훈민정음 반포 580돌이며, 주시경 탄생 150주년이다. 특히 주시경은 최초의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 발행에 참여하고 최초의 우리말 사전인 '말모이' 원고 집필에 나서는 등 우리말과 한글 연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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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점자 '훈맹정음' 역시 올해 반포 100주년을 맞았다. 송암 박두성이 조선어점자연구회를 조직해 연구한 끝에 만든 훈맹정음은 1926년 11월 4일 세상에 공개됐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첫 가갸날 기념식이 열린 날이기도 하다. 6개의 점을 조합해 우리말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한 훈맹정음은 시각장애인들이 일본어 점자가 아닌 우리말 점자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문자 문화유산으로 평가받는다.


방제일 기자 zeilis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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