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5일 DDP·서울 전역서 개최
5개 권역 150개 디자인 스팟 연결
79개 브랜드, 품목 대신 '생활방식'으로 전시
유현준·마리아 포로 등 국내외 전문가도 한자리

당신은 '세심한 살림꾼'인가, '고요한 몽상가'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유쾌한 동반자'나 '다정한 미식가'에 가까울지 모른다.

지난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5 서울디자인위크’ 현장. 올해 행사는 오는 14일부터 DDP를 넘어 성수·연희·서촌·압구정 등 서울 전역으로 무대를 넓힌다. 서울디자인재단

지난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5 서울디자인위크’ 현장. 올해 행사는 오는 14일부터 DDP를 넘어 성수·연희·서촌·압구정 등 서울 전역으로 무대를 넓힌다. 서울디자인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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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울디자인위크의 입구에는 의자, 조명, 그릇 같은 익숙한 품목명이 없다. 대신 사람이 있다. 어떤 집에서 어떻게 쉬고, 누구와 무엇을 먹으며, 일상을 어떤 물건으로 채우고 싶은지를 먼저 묻는다. 디자인을 물건의 모양보다 삶의 방식에서 읽겠다는 얘기다.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은 오는 14일부터 25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서울 전역에서 '2026 서울디자인위크'를 연다고 6일 밝혔다. 올해 주제는 '디자인 레시피(The Design Recipe)'. 전시와 장터, 강연을 DDP 안에 차려놓는 데 그치지 않고 성수·연희·서촌·압구정까지 서울의 일상 속으로 디자인을 흩어놓는다.

가장 먼저 취향을 시험하는 곳은 DDP 디자인페어다. 국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79곳을 제품 종류가 아닌 네 가지 인간형에 따라 나눈다. '세심한 살림꾼의 시장'에는 작은 질서로 집을 꾸리는 물건을, '고요한 몽상가의 시장'에는 휴식의 시간을 만드는 브랜드를 모은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위한 '유쾌한 동반자', 한 끼를 중요하게 여기는 '다정한 미식가'도 각각 하나의 시장을 이룬다.


꽤 영리한 분류다. 컵은 컵끼리, 의자는 의자끼리 세워놓던 박람회의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난다. 같은 찻잔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살림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휴식이다. 디자인페어는 그래서 "무엇을 살 것인가"보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먼저 고르게 한다.

지난해 열린 ‘DDP디자인페어’ 전경. 올해는 국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79곳이 참여해 제품 종류가 아닌 ‘세심한 살림꾼’ ‘고요한 몽상가’ 등 소비자의 취향과 생활방식에 따라 전시장을 꾸민다. 서울디자인재단

지난해 열린 ‘DDP디자인페어’ 전경. 올해는 국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79곳이 참여해 제품 종류가 아닌 ‘세심한 살림꾼’ ‘고요한 몽상가’ 등 소비자의 취향과 생활방식에 따라 전시장을 꾸민다. 서울디자인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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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름 없는 디자이너들의 물건도 같은 공간에 놓인다. 서울대·이화여대·서울시립대·홍익대·경희대 등 대학생 100여명이 20개 팀을 꾸려 현대자동차, 옥스팜, 굽네, 대한적십자사, 다비치안경 등과 실제 과제를 풀었다. 교실에서 끝날 법한 아이디어가 제품과 공간, 브랜드로 넘어가는 과정 자체가 전시가 된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디자인의 '결과'보다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들이 기다린다. '스튜디오 실천'은 국내외 디자인 스튜디오가 무엇을 만들었는지만 보여주지 않고 그것을 만들어내기까지의 시행착오를 함께 펼쳐놓는다. '콜렉티브 서울'에서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인 집단 10팀을 만나고, '잇에일리언스: 낯선 이탈리아'는 이탈리아 산업디자인을 서울로 가져온다.


음식도 디자인의 재료가 된다. 스페인 푸드디자인 스튜디오 폰도(FONDO)의 전시는 식재료가 한 접시의 음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과 감각으로 설계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디자인이 물건의 외형을 예쁘게 만드는 기술이라는 오래된 정의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장면들이다.


말로 디자인을 해부하는 자리도 있다. 15일에는 건축가 유현준이 '서울의 풍경을 재정의하다'를 주제로 서울의 공간적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서울시 브랜딩을 총괄하는 이지현 특보를 비롯해 희녹 박소희 대표, 프릳츠컴퍼니 김병기 대표, 서울모닝커피클럽 박재현 대표도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브랜드가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풀어놓는다.

지난해 서울디자인위크 특별전 ‘시팅서울’ 전경. 다양한 형태와 소재의 의자를 통해 서울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의 감각과 동시대 가구 디자인의 흐름을 보여줬다. 서울디자인재단

지난해 서울디자인위크 특별전 ‘시팅서울’ 전경. 다양한 형태와 소재의 의자를 통해 서울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의 감각과 동시대 가구 디자인의 흐름을 보여줬다. 서울디자인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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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에는 시선이 서울 밖으로 향한다. 세계 최대 가구·디자인 박람회인 밀라노 살로네 델 모빌레의 마리아 포로 회장과 마우로 포르치니 삼성전자 최고디자인책임자(CDO), 안나 바바라 폴리디자인 학장 등이 서울을 찾는다. 이탈리아 디자인이 어떻게 세계의 취향이 됐는지, 이제 세계가 K-디자인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함께 논의한다.


올해 행사의 가장 큰 변화는 DDP 밖으로 나가야 한다. 동대문과 연희, 성수, 서촌, 압구정 등 다섯 지역의 디자인 공간과 상점, 스튜디오 150곳을 '서울 디자인로드'로 묶었다. 성수에서는 서울의 공간과 일상을 다시 해석한 '서울다움(Seoulness)'이 열리고, 연희에서는 평소 문을 열지 않던 디자인 스튜디오와 건축사무소 등을 찾아가는 '디자인 오픈스튜디오'가 진행된다. 각 지역을 따라 걸으며 디자인 스팟을 찾아가는 지도도 제공한다.


지난해 DDP 디자인페어에는 약 3만명의 유료 관람객이 찾았다. 올해는 그 사람들이 한 건물 안에서 전시를 보고 돌아가는 대신 서울 골목으로 흘러나가도록 판을 키웠다. DDP를 행사장으로 쓰던 디자인위크가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를 전시장으로 삼기 시작한 셈이다.


서울디자인위크라는 이름만 보면 거창하지만, 올해 행사가 던지는 질문은 의외로 사소하다. 어떤 컵을 고르고 어떤 가게에 들어가며, 어떤 공간에서 쉬고 싶은가. 결국 디자인은 우리가 매일 별생각 없이 반복하는 선택의 모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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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150곳을 모두 돌아볼 필요는 없다. '세심한 살림꾼'이면 살림꾼답게, '고요한 몽상가'라면 몽상가답게 몇 곳만 골라도 된다. 올해 서울디자인위크가 만든 가장 흥미로운 전시장은 DDP가 아니라, 취향을 핑계 삼아 다시 걷게 되는 서울의 거리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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