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바뀌면 월세 시세로 재조정 허용
서울 수익률 3~4%대…기관 요구는 6~15%
해외 연기금·사모펀드, 서울 도심·대학가 매입
미 중간선거 쟁점으로…"펀드가 월세 올려"

정부가 주거 안정을 명분으로 기업형 장기 민간임대주택 활성화에 나섰으나 서민들의 월세 부담만 가중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사모펀드 등 기관투자자의 주택 매입을 주거비 급등 원인으로 지목하고 규제에 나선 미국 등 해외 흐름과도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프랜차이즈 빵집 전철 밟나" "월세 인상 불가피"…수요자 '냉소'

서울 동작구 중앙대 인근 흑석동 주민 알림판에 원룸·하숙 광고가 게시돼 있다. 연합뉴스

서울 동작구 중앙대 인근 흑석동 주민 알림판에 원룸·하숙 광고가 게시돼 있다. 연합뉴스

AD
원본보기 아이콘

5일 국토교통부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8월 '주택 신속공급 방안'을 통해 공공지원 민간임대 제도를 개편해 사업자의 '임대수익 확보' 길을 열어주기로 했다. 특히 20년 이상 장기 임대 모델을 도입하면서 규제를 대폭 풀었다. 세입자가 바뀔 때 기존의 '5% 인상 상한' 규제를 적용하지 않고, 시세의 95% 수준까지 임대료를 새로 산정해 올릴 수 있도록 허용한다. 금융 지원 문턱도 낮췄다. 정부는 20년 장기 임대 사업자에게 주택도시기금 융자 금리를 낮춰주고(2.6~3.4%→2.0~2.8%), 가구당 최대 2억원으로 융자 한도를 확대해 금융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기업형 임대를 주도할 글로벌 사모펀드와 기관투자자 입장에서는 멍석이 깔린 셈이다. 시장에서는 현재 서민들이 부담하는 월세 수준으로는 기업형 임대 사업성이 성립하기 어렵다고 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8월 오피스텔 수익률은 연 5.12%다. 이는 매매가 대비 연 임대료를 단순 계산한 표면수익률로, 세금과 관리비 등을 공제한 실제 순 임대수익률은 3~4%대에 그친다.


반면 기업형 사업을 주도할 기관투자자의 요구 수익률은 이를 훌쩍 뛰어넘는다. 부동산업계와 자본시장에 따르면 기관투자자들이 코리빙(공유주거) 등 주거용 부동산 매입 시 사업성에 기준을 두는 최소 목표 캡레이트(요구수익률)는 5%대 선이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밝힌 국내 임대주택 투자 목표 수익률도 연 6~7% 선이다. 특히 펀드를 조성해 진입하는 외국계 자본은 사업 운용 기간 내 9~15% 수준의 높은 총 내부수익률(IRR)을 타깃으로 삼는다. 불확실한 매각 차익을 논외로 하면, 정부의 규제 완화를 발판 삼아 세입자가 바뀔 때마다 월세를 대폭 인상하는 것 외에는 펀드의 약정 배당률을 맞출 방법이 없는 구조다.

조정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토지주택위원장은 "다른 나라 사례를 보더라도 기업형 임대로 가면서 월세가 오르고 주거비가 폭등했다"며 "우리나라도 월세가 급등해야 기업형 임대가 운영 가능한 구조인데 정부가 혜택까지 주려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 동네 빵집을 밀어내고 가격을 인상했던 과거 사례에 빗대어 "기업형 임대가 들어오면 관리는 깔끔해지겠지만 가격 결정권이 본사(펀드)로 넘어가 결국 월세가 미친 듯이 오를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기업은 알고리즘대로 월세를 올리고, 미납 시 전문 법무팀이 칼같이 강제 퇴거시킬 것", "평범한 동네 집주인은 적폐로 몰면서 대기업과 외국 자본이 서민들 월세를 쓸어가는 건 괜찮다는 것이냐"는 자조 섞인 비판도 공감을 얻고 있다.


이미 들어와 있는 해외 큰손…美는 '주거비 급등' 규제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주택 단지 모습. 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주택 단지 모습.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글로벌 자본은 이미 국내 임대주택 시장에 발 빠르게 진입 중이다. 미국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싱가포르투자청(GIC), 영국 엠앤지(M&G) 등 대형 해외 사모펀드(PEF)와 기관은 서울 도심과 대학가 일대 코리빙 하우스 등 임대주택 자산을 잇달아 매입했다.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사업자들은 수익성 확보를 위해 세제 혜택을 요구하고 있다.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와 5000억원 규모 합작법인을 세운 디벨로퍼 엠지알브이(MGRV)의 조강태 대표는 지난 8월 여당 의원 주최 토론회에 참석해 "매입형 임대주택에 종부세가 부과되면서 수익률이 2%에도 못 미치게 됐다"며 "수익 악화로 임대주택 매수와 건설이 모두 중단됐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임대료 규제 완화는 이런 사업자들의 수익성 개선 요구와 맞닿아 있다.


국내에서 기업형 임대주택 육성이 추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도입된 '뉴스테이' 역시 공적 지원이 집중됐으나, 초기 임대료 규제가 없어 세입자 거주 안정을 담보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회예산정책처도 막대한 재정 지원에 비해 임대료 안정 효과가 미흡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거대 자본이 임대 시장을 장악했을 때의 부작용이다. 미국 연방회계감사원(GAO)은 2024년 5월 74건의 관련 연구를 종합 검토한 결과, 기관투자자의 주택 시장 진입이 집값과 임대료 상승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펀드가 수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주거비 급등을 부추겼을 수 있다는 것이다.

AD

실제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사모펀드와 기업형 임대사업자를 주거비 급등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주요 격전지 상·하원 후보 중 24명 이상이 이들의 주택 매입과 소유를 제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을 정도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올해 1월 대형 기관투자자의 단독주택 투자를 제한하고 반독점법 위반 소지가 있는지 검토하도록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지난 7월에는 단독주택 350채 이상에 대한 투자 지배력을 가진 대형 투자자의 기존 주택 추가 매입을 금지하는 법안까지 제정돼 유예기간(180일)을 거쳐 시행을 앞두고 있다.


"결국 서민들 부담만 늘어날 것"…정부 추진하는 '기업형 임대' 향한 우려[부동산AtoZ] 원본보기 아이콘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