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기술혁신으로 극복하는 에너지 위기
美빅테크, TMI 등 폐쇄 원전까지 재가동
1970년대 오일쇼크 이어 AI發 전력수요가 원전 호출
고리 1호기서 시작한 50년…UAE·체코로 뻗은 K원전
12차 전기본 원전 역할 주목…사용후핵연료 처리는 숙제
인공지능(AI)이 원전을 다시 깨우고 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메타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원전과 잇달아 손을 잡고 있다. 새 원전을 짓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때 문을 닫았던 원전까지 다시 돌려 AI에 전력을 공급하려 한다. 미국 정부는 원전 설비를 대폭 늘리는 정책을 추진하고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에서도 신규 원전 건설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한동안 멈춰 있던 세계 원전의 시계가 다시 움직이는 모습이다.
흥미로운 점은 지금의 모습이 약 50년 전과 닮았다는 것이다. 1970년대에는 두 차례 오일쇼크가 원전을 불러냈다. 석유 공급이 흔들리고 가격이 치솟자 각국은 특정 지역과 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원전 건설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이란 전쟁을 계기로 다시 부각된 에너지 안보에 탄소중립과 AI발 전력수요 급증이 겹쳤다. 50년 전에는 석유가 부족해 원전을 찾았다면 이제는 AI가 쓸 전기까지 확보해야 하는 시대가 된 셈이다.
한국도 이 흐름의 한가운데 있다. 에너지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상황이 여전한 가운데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전력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서 대형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를 새로 짓기로 한 데 이어 제12차 전기본 수립을 앞두고 2040년 이후 원전의 역할을 둘러싼 논의도 시작됐다.
사고 상징 TMI까지 부활…AI가 돌린 원전 시계
4일 업계에서는 원전의 귀환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곳으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TMI)을 꼽는다. 1979년 TMI 2호기에서 발생한 사고는 미국 원전 산업이 급격히 위축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사고는 작은 설비 이상에서 시작됐다. 1979년 3월28일 TMI 2호기의 급수 계통에 문제가 생겨 원자로가 자동 정지했지만, 원자로의 압력을 낮추기 위해 열린 밸브가 다시 닫히지 않으면서 냉각수가 빠져나갔다. 운전원들이 이를 제때 파악하지 못하면서 노심 일부가 녹는 사고로 이어졌다.
외부로 방출된 방사성 물질은 많지 않아 주민 건강에 미친 영향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사고가 원전 산업에 남긴 충격은 컸다. 대형 원전도 설비 고장과 운전 과정의 문제가 겹치면 중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면서 미국의 신규 원전 건설은 급격히 위축됐다. 이후 1986년 체르노빌 사고까지 발생하면서 세계적으로 원전 확대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반세기 가까이 흐른 지금 같은 원전 단지가 원전 부활을 상징하는 장소가 됐다. MS는 2019년 가동을 멈춘 TMI 원전 1호기를 2028년 재가동해 20년간 전력을 공급받기로 했다. 미국 에너지부도 재가동에 10억달러 규모의 대출을 지원한다. 1970년대 세계 원전 산업의 흐름을 바꿔놓았던 장소가 AI 시대에는 원전 재가동을 상징하는 곳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TMI의 부활은 세계 원전 산업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1970년대 오일쇼크가 원전 건설을 촉발하고 TMI 사고가 그 확산에 제동을 걸었다면, 반세기 뒤에는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 AI발 전력수요가 원전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원전을 바라보는 세계의 셈법이 다시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MS뿐만 아니라 다른 빅테크 기업들도 원전 전력 확보에 나섰다. 구글은 SMR 개발업체 카이로스파워와 손잡고 2030년까지 500MW 규모의 차세대 SMR을 건설해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받기로 했다. 아이오와주 두안아널드 원전도 2029년 재가동해 600MW의 전기를 25년간 구매할 계획이다.
아마존은 펜실베이니아주 서스쿼해나 원전과 연결된 960MW 규모 데이터센터 캠퍼스를 6억5000만달러에 인수하고 2042년까지 최대 1920MW를 공급받는 장기 전력구매계약을 맺었다. SMR 개발업체 엑스에너지에는 5억달러를 투자했다. 메타 역시 일리노이주 클린턴 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을 2027년부터 20년간 공급받기로 했다.
빅테크 넘어 정부까지…원전 확대 나선 미국·유럽
AI가 촉발한 전력 확보 경쟁이 원전 투자로 이어지는 배경에는 데이터센터의 특성이 있다. 막대한 양의 전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서버를 24시간 가동해야 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발전원이 필요하다. 전력을 얼마나 싸게 생산하느냐를 넘어 필요할 때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가 AI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빅테크뿐 아니라 정부 정책도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2024년 11월 원전 설비용량을 2050년까지 3배로 확대하는 로드맵을 내놓은 데 이어 지난해 5월에는 원전 용량을 4배로 늘리는 정책을 발표했다. 신규 원전 건설뿐 아니라 기존 원전 계속운전과 폐쇄 원전 재가동, SMR 개발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프랑스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추진했던 원전 의존도 축소 계획을 폐기하고 신규 원전 6기를 건설하는 한편 8기 추가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영국은 2050년까지 원전 설비를 현재 약 7GW에서 24GW로 확대할 계획이다. 스웨덴은 신규 원전을 기존 부지에만 짓도록 하고 원전 수를 10기로 제한했던 조치를 폐지했다.
특히 탈원전의 상징과도 같았던 독일에서도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지난 1월 탈원전 결정을 "심각한 전략적 실수"라고 평가했다. 마지막 원전을 계속 가동했다면 발전설비를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취지다. 독일은 2023년 마지막 원전을 폐쇄했지만 다른 국가의 원전 건설에 반대하던 입장에서는 물러났다.
오일쇼크에 원전 택한 한국…50년 만에 수출국으로
세계가 원전을 다시 찾는 모습은 한국에는 더욱 익숙한 장면이다. 약 50년 전 한국이 원전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게 된 출발점에도 에너지 안보가 있었다. 당시 원전을 불러낸 것은 AI가 아니라 석유였다.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는 석유를 언제든 싼값에 사올 수 있다는 믿음을 무너뜨렸다.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하던 한국에는 충격이 더 컸다. 철강·석유화학·조선 등 에너지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산업이 빠르게 성장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 자원은 부족했다. 국제유가가 치솟을 때마다 산업 경쟁력과 국가 경제가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에너지원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커지면서 원전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1978년 고리 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했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은 원전 설계와 핵심 기자재를 해외 기술에 의존해야 했다. 이후 국내에서 원전을 계속 건설하면서 설계와 주기기 제작, 시공, 운영·정비 등 관련 기술을 하나씩 축적했다.
세계 원전 산업이 순탄하게 성장한 것은 아니었다. 앞서 TMI 사고에 이어 1986년 옛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성 논란이 불거졌다. 독일 등 일부 국가는 탈원전을 선택했고 세계 신규 원전 시장도 장기간 위축됐다.
한국은 그 사이 원전 건설과 운영 경험을 계속 쌓았다. 그 결과물이 1400MW급 한국형 원전 APR1400이다. APR1400은 2017년 유럽사업자요건(EUR) 인증을 받은 데 이어 2019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인증을 취득했다. 2023년에는 유럽 수출형 APR1000도 EUR 설계인증을 받았다.
기술 축적은 수출로 이어졌다. 2009년 UAE 바라카 원전을 수주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유럽 시장에서도 성과를 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2024년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뒤 약 8개월간 협상을 거쳐 지난해 6월 두코바니 5·6호기 설계·조달·시공(EPC) 본계약을 체결했다. 체코 정부가 밝힌 사업비는 약 4070억코루나, 우리돈 약 26조원으로 체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에너지 투자 프로젝트다.
1970년대 해외에서 원전 기술을 들여와야 했던 나라가 반세기 만에 다른 나라에 원전을 짓는 국가로 바뀐 셈이다. 그러나 한국이 처음 원전을 선택하게 만들었던 문제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필요한 에너지 대부분을 해외에서 들여와야 하는 상황은 5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에너지 93.4% 수입…50년 전 숙제는 여전
에너지경제연구원의 '2025 에너지통계연보'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3.4%였다. 에너지 수입액은 220조143억원으로 같은 해 국가 예산 656조6000억원의 약 33.5%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석유·석탄·액화천연가스(LNG) 등 화석연료 수입액만 218조3104억원으로 전체 에너지 수입액의 99.2%를 차지했다.
특히 석유의 중동 의존도는 71.5%다. 중동 이외 지역 전체에 대한 의존도 28.5%의 2.5배가 넘는다.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고 국제유가가 오를 때마다 국내 에너지 가격과 수급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원전은 연료 특성에서 석유나 LNG와 차이가 크다. 우라늄은 소량으로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어 운송과 저장이 상대적으로 쉽다. 원자로에 연료를 한 번 장전하면 약 18개월 동안 교체하지 않고 운전할 수 있어 일정 수준의 연료 비축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국제정세 변화에 따른 연료 공급 충격을 상대적으로 완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50년 전에는 없었던 조건도 추가됐다. 탄소중립이다. 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ECE)의 생애주기평가(LCA)에 따르면 원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발전량 1kWh당 5.1~6.4gCO₂ 수준이다. 발전소 가동 때 발생하는 배출량뿐 아니라 연료 확보와 발전소 건설 등을 포함한 생애주기를 고려한 수치다.
국토가 좁은 한국에서는 토지 이용도 고려 대상이다. UNECE 자료에서 원전의 1kWh당 토지 이용 영향 점수는 평균 0.05점, 최대 0.07점으로 제시됐다. 발전소 부지뿐 아니라 연료 확보 등 발전 전 과정의 토지 이용 영향을 포함한 결과다.
1970년대 한국이 원전을 선택하게 만든 에너지 안보라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탄소중립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더해진 것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의 전력수요까지 또 하나의 변수로 등장했다.
AI·반도체 전력수요까지…다시 계산하는 원전 비중
이에 따라 국내 원전 논의의 초점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기존 원전을 계속 가동할 것인지, 원전 비중을 줄일 것인지가 논쟁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앞으로 늘어날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어떤 발전원을 얼마나 확보해야 하는지가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2025년 확정된 제11차 전기본에는 신규 대형원전 2기, 총 2.8GW와 SMR 1기, 0.7GW가 반영됐다. 현재 국내에서는 원전 26기가 운영 중이고 4기가 건설 중이다. 신규 대형원전 후보지는 경북 영덕, SMR 후보지는 부산 기장으로 정해졌다. 대형원전은 각각 2037년과 2038년, SMR은 2035년 준공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다음 시험대는 제12차 전기본이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등 새로운 전력수요가 얼마나 늘어날지, 이를 원전과 재생에너지 등 어떤 발전원으로 충당할지에 따라 2040년 이후 전원 구성이 달라진다. 특히 대형원전은 계획부터 준공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향후 필요한 물량을 미리 판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원자력계에서는 이미 11차 전기본보다 많은 신규 원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원자력학회는 2050년 발전요구량을 143.6GWy로 놓고 기존 원전의 20년 계속운전과 85% 이용률 등을 가정했을 때 2050년 원전 발전 비중 35%를 유지하려면 신규 대형원전 20기와 SMR 12기가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대형원전은 2031년부터 2042년까지 매년 평균 1.67기씩 착공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원전 발전 비중을 50%로 가정하면 규모는 대형원전 34기와 SMR 20기로 늘어난다. 대형원전을 2031년부터 2042년까지 연평균 2.83기씩 착공해야 한다는 시나리오다. 이는 정부의 원전 건설 계획이 아니라 원자력학회가 자체적으로 설정한 가정에 따른 추산이다.
50년 쌓인 사용후핵연료 어디로…원전 르네상스의 또 다른 숙제
원전 확대에 앞서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지난 50년 가까이 원전을 가동하면서 쌓인 사용후핵연료를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다. 1978년 고리 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후 국내 원전은 꾸준히 늘어났지만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밖으로 옮겨 보관할 중간저장시설이나 최종적으로 처분할 영구 처분시설은 아직 없다. 그동안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는 각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에 보관하고 있다.
저장 공간도 빠르게 차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경수로 사용후핵연료는 한빛 7619다발, 한울 7548다발, 고리 7471다발 등이 저장돼 있다. 중수로를 사용하는 월성에는 52만6412다발이 쌓여 있다. 고리의 저장시설 포화율은 92.9%에 달하고 한빛 84.5%, 월성 84.1%, 한울 73.5% 등이다. 예상 포화 시점은 한빛이 2030년으로 가장 빠르고 한울 2031년, 고리 2032년, 월성 2037년 순이다.
경북 경주에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이 있지만 사용후핵연료를 비롯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최종 처분하는 시설과는 별개다. 고준위 방폐물을 한데 모아 보관하는 중간저장시설은 물론 최종 처분시설의 부지도 아직 선정되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해 시행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토대로 뒤늦게 부지 확보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특별법에 따라 국무총리 소속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위원회가 설치됐고 올해 3월 위원회 구성이 마무리됐다. 앞으로 후보부지를 도출한 뒤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신청을 받아 기본조사와 심층조사를 실시하고 주민투표 등을 거쳐 최종 부지를 선정해야 한다.
시간표는 길다. 특별법은 중간저장시설은 2050년 이전, 최종 처분시설은 2060년 이전에 운영을 시작할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장 한빛은 2030년, 한울은 2031년, 고리는 2032년 기존 저장시설 포화가 예상되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시차가 있다. 정부가 원전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 확충을 추진하는 것도 중간저장시설이 마련될 때까지 이 기간을 버티기 위해서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발생할 물량이다. 정부가 마련해야 할 관리시설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이미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뿐 아니라 기존 원전의 남은 가동기간과 계속운전 과정에서 나올 물량까지 받아내야 한다. 여기에 제11차 전기본에 반영된 신규 대형원전 2기와 SMR, 향후 제12차 전기본에서 추가 원전이 반영될 경우 발생할 사용후핵연료까지 고려해야 한다.
특별법도 이 문제를 반영해 30년 단위로 수립하는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에 발생 현황과 전망, 저장·처분계획뿐 아니라 관리시설의 부지와 시설계획을 담도록 했다. 결국 앞으로 원전이 얼마나 늘어나느냐에 따라 중간저장시설과 최종 처분시설이 감당해야 할 물량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원전 르네상스를 이야기할 때 발전소를 몇 기 더 지을지만 계산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신규 원전을 건설하고 기존 원전의 수명을 늘릴수록 전력 생산과 함께 사용후핵연료도 계속 발생한다. 원전 확대가 지속가능하려면 지난 50년간 쌓인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는 동시에 앞으로 수십년간 추가로 발생할 물량까지 감당할 저장·처분시설을 확보해야 한다. 원전의 앞단에서 건설 계획을 세우는 것만큼 후행주기의 해법을 마련하는 일도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된 셈이다.
제12차 전기본을 둘러싼 논의는 '원전이냐 재생에너지냐'라는 이분법만으로 풀기 어려워졌다. 원전은 안정적인 전력공급과 탄소 감축,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역할이 커지고 있지만 사용후핵연료와 건설기간·비용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필요한 전원이지만 전력망과 ESS 등 계통 보강이 뒤따라야 한다. AI와 반도체가 요구하는 대규모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면서 탄소 배출과 에너지 수입 의존도까지 낮추려면 각각의 장단점을 함께 고려한 전원 조합을 찾아야 한다. 원자력학회 역시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상호 보완적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50년 전 한국은 오일쇼크를 견디기 위해 원전을 선택했다. 당시에는 해외에서 원전 기술을 들여와야 했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다른 나라에 원전을 수출하는 국가가 됐다. 동시에 지난 50년간 원전을 운영하며 쌓인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라는 숙제도 남았다. 원전을 둘러싼 선택지가 늘어난 만큼 따져야 할 조건도 많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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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 석유가 원전을 불러냈다면 지금은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 AI가 원전을 다시 호출하고 있다. 원전 확대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는 가운데 앞으로는 신규 원전 건설뿐 아니라 재생에너지와의 적정 전원 구성, 전력망 확충, 사용후핵연료 처리까지 아우르는 중장기 전력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과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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