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은 모른다"… 항소심 선고 앞에 놓인 녹취의 무게
1심, 조사 5건·2100만원 대납 인정
같은 녹취에 엇갈린 해석…신빙성 쟁점
녹음 35개 중 3개 제출…특검, 선별 지적
의뢰 증언, 직접 들었나 전해 들었나
김종인, 의뢰 부인하며 명씨 신빙성 비판
벌금 100만원 이상 확정 땐 시장직 상실
"오세훈이는 몰라요."
오세훈 서울시장의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 항소심에 제출된 명태균씨 통화 녹음에는 이런 말이 담겼다. 통화 상대인 사업가 김한정씨도 "이 양반 돕고 싶어서 내가 일을 했잖아"라며 "거기서 원해, 원한 것도 아니고, 내 혼자 해가지고"라고 말했다. 오 시장 측은 여론조사 의뢰와 비용 대납 요청이 없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제시했다. 명씨는 오 시장이 몰랐다는 대상은 여론조사가 아니라 야권 후보 단일화 전략이었다고 반박했다. 같은 대화를 두고 양측이 다른 사건을 설명하고 있는 셈이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구회근)는 전날 오 시장과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김씨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항소심 변론을 마쳤다. 특검은 오 시장에게 징역 1년 6개월과 추징금 3300만원을 구형했다. 선고는 오는 23일이다. 1심은 오 시장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는 명씨의 법정 증언과 사건 당시 통화 내용이 서로 양립할 수 있는지, 새 녹취를 기존 증거와 함께 놓고도 1심 유죄 판단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쟁점으로 남았다.
1심은 조사·입금 시점과 결과 전달 경로에 주목
공소사실의 핵심은 오 시장이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한 뒤 김씨에게 비용을 대신 내게 했느냐는 것이다. 특검은 오 시장이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조사를 부탁했고, 당시 캠프 비서실장이던 강 전 부시장이 설문지를 주고받는 등 조사에 관여했다고 봤다. 김씨가 지급한 3300만원은 오 시장이 부담해야 할 조사 비용을 대신 낸 돈이라는 판단이었다.
특검은 1심 결심공판에서 "정치 활동과 밀접한 여론조사 비용을 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제삼자에게 지급하게 해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라는 입법 목적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오 시장 측은 명씨의 사기·공갈로 벌어진 사건이라며 의뢰와 대납 요청을 모두 부인했다.
1심은 공소사실에 포함된 여론조사 10건 중 5건에서 의뢰와 대납을 인정했다. 2021년 1월 22일 첫 조사와 두 번째부터 네 번째 조사, 2월 18일 여섯 번째 조사였다. 조사 실시 시점과 김씨의 입금 시점이 맞아떨어지고, 강 전 부시장 등 오 시장 측이 공표 전에 결과를 지속적으로 받아본 정황 등을 근거로 삼았다. 유죄로 인정한 금액은 2100만원이었다.
명씨의 진술을 모두 믿은 것은 아니었다. 재판부는 오 시장이 울면서 전화했다거나 SH공사 사장 자리를 약속받았다는 등 일부 진술에는 과장이 있다고 봤다. 다만 카카오톡 대화와 문자, 통화 기록 등 객관적 자료에 부합하는 부분은 신빙성을 인정했다. 명씨에게 조사를 의뢰할 동기가 없다는 오 시장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정치적 상황과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의 관계 등을 고려하면 자신의 경쟁력을 강조하고 김 전 위원장과 접점을 만들 목적으로 조사를 맡길 동기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나머지 조사에서는 다른 결론이 나왔다. 4건은 오 시장 의뢰를 인정하지 않았다. 2월 28일 실시된 마지막 열 번째 조사는 의뢰를 인정했지만 비용 대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봤다. 조사 의뢰와 비용 대납을 각각 판단한 것이다. 항소심에서도 김씨가 돈을 지급한 사실에 더해, 그 돈이 오 시장의 의뢰에 따른 조사 비용이었고, 오 시장이 대납에 관여했는지가 입증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오세훈이는 몰라요"…의뢰·대납 증언과 양립하나
오 시장 측은 이날 결심공판에서 "여론조사 의뢰나 비용 대납 요청이 없었다는 게 명확하다"고 주장했다. 명씨가 법정에서 설명한 의뢰·대납 경위가 사건 당시 오 시장의 요청 없이 진행했다는 취지로 김씨와 나눈 대화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 시장 측이 근거로 삼은 자료는 지난달 16일 항소심 공판에서 공개된 명씨와 김씨의 통화 녹음이다. 명씨는 "하여튼 오세훈이는 몰라요, 모르고. 그래도 걱정하지 말라니까요. 내가 알아서 합니다"라고 말했다. 김씨도 오 시장 측이 원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돕고 싶어 혼자 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녹음에는 명씨가 오 시장에게 김씨를 직접 소개받지 않았다고 말한 대목도 있었다.
이 통화 녹음은 명씨의 기존 증언과 상반됐다. 명씨는 8월 28일 항소심 증인신문에서 재판부가 오 시장에게 여론조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김씨가 비용을 대기로 한 게 맞는지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수사기관에서는 오 시장이 김씨를 비용을 댈 사람으로 소개했다고 진술했다. 녹취 속 대화가 공소사실에 포함된 여론조사와 그 비용 지급을 가리킨다면, 의뢰·대납을 연결하는 이 증언의 신빙성을 흔들 수 있게 된다.
명씨는 그러나 통화 맥락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는 재판부에 낸 진술서에서 "당시 김한정씨와 통화는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야권 단일화 전략에 관한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오 시장이 몰랐다는 대상은 여론조사가 아니라 자신이 구상한 단일화 전략과 세부 진행 상황이었다는 설명이다.
명씨는 그러면서 통화가 이뤄진 시점을 근거로 들었다. 공소사실에 포함된 여론조사 10건은 2021년 1~2월에 실시됐다. 녹음은 오 시장이 국민의힘 후보로 선출돼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와 단일화를 추진하던 3월 6일과 13일 통화다. 명씨는 당내 경선이 끝난 뒤 경선용 여론조사를 이야기할 이유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변호인은 이날 최후변론에서 2021년 3월 20일 명씨와 김씨의 통화 내용도 제시했다. 명씨는 "오세훈이 이리 말 안 들으면 우째해야합니까 제가"라고 말했다. 오 시장에게 전화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며 그의 처신을 비난하기도 했다. 변호인은 수사와 재판이 시작되기 전 자연스럽게 나눈 대화라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 통화에서 드러난 명씨의 강한 반감을 근거로, 오 시장에게 여론조사를 의뢰받았다는 명씨의 설명을 믿을 수 있는지 문제 삼은 것이다.
반면 특검은 녹취의 내용과 별개로 제출 경위를 문제 삼았다. 이날 결심공판에서 김씨의 휴대전화에 녹음 35개가 있었는데 3개만 제출됐고, 정작 대납 당시의 녹음은 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달 16일 녹음파일 3건을 명씨 진술의 신빙성을 다투는 탄핵증거로 채택했다. 재판부는 각 통화의 앞뒤 맥락을 통해 두 사람이 어떤 활동을 이야기했는지 들여다볼 것으로 전망된다. 3월 6일과 13일 대화가 앞선 조사와 비용 지급을 되짚은 내용인지, 단일화 과정의 별도 활동을 가리킨 것인지가 쟁점이다. 명씨의 해명이 김씨가 혼자 했다는 발언과 소개 경위에 관한 대화까지 설명하는지도 판단 대상이다. 3월 20일 통화에 대해서는 애초 의뢰 관계가 없었다는 정황인지, 의뢰 이후 관계가 나빠진 상황을 보여주는지 가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조사가 먼저 시작됐다는 반론…증언과 기록의 선후관계
오 시장 측은 1심부터 명씨 증언을 당시 기록과 대조하며 반박했다. 4월 3일 공판에서는 첫 조사가 시작된 시각을 문제 삼았다. 포렌식 결과상 조사는 2021년 1월 22일 오후 2시께 시작됐는데, 명씨가 요청 전화를 받았다고 주장한 시각은 오후 3시 30분 이후라는 것이다. 조사 시작보다 늦은 전화를 의뢰 근거로 삼을 수 있느냐는 취지였다.
변호인은 조사를 의뢰했다면 선거 전략이나 문항 설계 등을 협의한 과정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런 자료가 없다고도 주장했다. 명씨는 "전화로 설명을 다 했다"고 반박했다. 요청 전화 이전에 어떤 협의가 있었는지, 해당 전화가 처음 의뢰였는지 추가 요청이었는지 등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통화 사실을 확인하는 기록과 통화 내용을 설명하는 증언을 함께 대조해야 하는 대목이다.
오 시장이 여론조사를 의뢰했다는 사실을 미래한국연구소 관계자들이 직접 확인했는지, 명씨에게 전해 들었는지도 다퉈졌다. 첫 공판에 나온 강혜경씨는 명씨에게서 오 시장이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조사를 원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후 공판에서 오 시장이나 김씨에게 의뢰·대납 이야기를 직접 들었느냐는 질문에는 "직접 들은 기억은 없다"고 답했다. 김태열 전 소장도 명씨에게서 오 시장이 도와달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강씨와 김 전 소장이 직접 관여한 조사·입금 업무에 관한 증언은 여론조사 실시와 돈의 지급을 확인하는 자료다. 반면 명씨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만으로 오 시장이 조사를 의뢰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지는 별개 쟁점이다. 의뢰에 관한 설명의 출처가 명씨라면, 여러 사람이 같은 취지로 증언했다는 사정만으로 독립된 증거가 늘어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항소심에서는 새 녹취로 명씨 진술의 신빙성이 흔들리는 부분과 그 진술에 기대지 않고도 확인되는 기록을 구분하는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김종인 "의뢰 안 했다… 명태균 얘기도 신뢰 안 해"
오 시장 측은 1심 때부터 여론조사가 김종인 전 위원장의 의뢰로 실시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달 11일 증인으로 출석한 김 전 위원장은 명씨에게 서울시장 보궐선거 여론조사를 의뢰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명씨에 대해 "자기 과시를 위해 말을 만들어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며 "그 사람이 얘기하는 것을 신뢰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자신이 조사를 의뢰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부인했지만, 명씨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 삼은 오 시장 측 주장에는 힘을 실어준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이 의뢰를 부인했다고 해서, 오 시장이 했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명씨에게 과장된 진술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의뢰와 대납에 관한 증언 전체가 배척되는 것도 아니다. 1심은 당시 기록에 부합하는 진술을 받아들였다. 항소심은 여기에 새 녹취를 더한 뒤에도 각 조사에 관한 의뢰와 대납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는지 판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2항이 정한 유죄 인정의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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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은 오 시장의 정치적 생명에도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정치자금 부정수수죄로 벌금 100만원 이상이 확정되면 시장직에서 물러나야 하고, 5년간 공직 취임도 제한된다. 1심은 이 기준을 넘는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다만 오는 23일 항소심 선고만으로 곧바로 시장직을 잃는 것은 아니다. 공직 상실은 형이 확정된 뒤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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