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건 한국PEF운용사협의회 회장
한국투자공사(KIC)가 지난해 처음으로 누적 운용수익 1224억달러(약 166조원)를 기록하며 위탁원금 1186억달러를 넘어섰다. 출범 20년 만의 성과다. 이제 KIC를 둘러싼 질문은 한 단계 나아가야 한다. 해외 시장에서 축적한 투자 역량을 어떻게 국내 산업과 자본시장의 성장으로 연결할 것인가.
정부가 추진하는 KIC 전략투자계정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 특히 국내 전략산업 기업에 대한 KIC의 투자는 네 가지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첫째는 인내자본이다. 반도체·인공지능(AI)·바이오처럼 산업 파급력이 큰 분야는 기술 축적과 시장 형성에 긴 시간이 필요하다. 만기가 정해진 일반 펀드만으로는 10년 이상의 시간을 충분히 감당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긴 호흡으로 접근할 수 있는 직접 지분투자가 필요한 이유다. 국민성장펀드가 간접투자와 융자로 산업 생태계의 저변을 넓힌다면, KIC는 더 긴 호흡의 자본을 더해 재원 구조를 두텁게 만들 수 있다.
둘째는 체급 보완이다. 국내 대형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외국계 자본의 존재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내 최대 토종 펀드가 4조원대인 반면, 아시아를 겨냥한 글로벌 펀드는 20조원을 웃도는 경우도 있다. 연기금과 공제회의 사모펀드(PEF) 출자만으로 이 격차를 모두 메우기는 쉽지 않다. 조(兆) 단위 전략 자산을 놓고 글로벌 자본과 경쟁하려면 KIC가 단독으로든, 국내 운용사와 함께든 참여할 수 있는 국적 자본 기반이 필요하다.
셋째는 정책펀드의 사각지대 보완이다. 관세 장벽과 공급망 재편으로 우리 기업의 해외 거점 확보는 생존 조건이 되고 있다. 그러나 모태펀드와 국민성장펀드는 기본적으로 국내 산업 지원에 무게가 실려 있다. 해외 진출과 크로스보더 M&A를 뒷받침할 장기 자본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해외 자산에 20년간 투자해 온 KIC가 메울 수 있는 공백이다. 일본이 지난해 본원소득수지로만 42조엔, 약 360조원을 벌어들였듯 해외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금융 역량 역시 국부의 중요한 축이다.
넷째는 앵커 효과다. KIC는 해외 투자시장에서 신뢰와 인지도를 가진 기관이다. 해외 공동투자자와의 네트워크, 장기 투자자로서의 평판, 축적된 실사 경험은 개별 거래에서 중요한 신뢰 기반이 될 수 있다. 아일랜드 전략투자기금(ISIF)은 97억유로 규모의 직접투자를 집행하며 민간자본 137억유로를 함께 끌어왔다. 사우디 국부펀드 PIF가 앵커로 나선 중동 펀드도 1차 결성만 20억달러 규모였다. KIC가 참여하는 거래는 해외 투자자에게도 일정한 기준점이 되고, 국내 운용사와의 협업 과정에서도 글로벌 투자 경험을 공유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국부펀드의 역할이 재무수익을 넘어 산업 전략과 연결되는 것은 세계적 흐름이다. 싱가포르 테마섹은 20년 수익률이 6.8%에 달하고, 아부다비 무바달라는 비(非)석유 GDP의 5.7%를 책임지는 등 재무적 수익과 자국 산업 육성을 함께 추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두 목표는 반드시 충돌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수익 규율을 지키면서 정책 효과도 노리도록 균형 있게 설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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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C의 다음 20년은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축적한 투자 경험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국내 산업과 자본시장의 체급을 함께 키우는 시간이어야 한다. 국부펀드의 성과는 이제 얼마를 벌었는가뿐 아니라, 어떤 산업과 투자 생태계를 남겼는지로도 평가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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