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기술혁신으로 극복하는 에너지 위기
중동 전쟁으로 천연가스 가격↑
가스보일러 대체 히트펌프, 에너지안보 측면 주목
유럽선 LNG 운반선 200척 분량 열에너지 공급
韓 올해 제주도부터 실증…내년엔 육지로 확대
개별난방·아파트 중심 주거형태, 보급 걸림돌

편집자주최근 중동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위기, 정부의 메가프로젝트 등으로 에너지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차 에너지의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 경제 성장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정부와 산업계에서 에너지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하는 기자들이 다양한 현안들을 짚어보고 대안을 찾는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
삼성전자 광주사업장 제2캠퍼스에서 ‘EHS 히트펌프 보일러’를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

삼성전자 광주사업장 제2캠퍼스에서 ‘EHS 히트펌프 보일러’를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

AD
원본보기 아이콘

"액화천연가스(LNG)는 가장 비싼 에너지원이면서 공급처가 불안정합니다. 히트펌프는 LNG에 대한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유럽히트펌프협회 폴 케니 사무총장)


미국-이란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유럽에서 히트펌프 사용자가 늘고 있다. 3일 유럽히트펌프협회(EHP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유럽 12개국에서 판매된 히트펌프는 116만3000대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04만8000대)보다 11%가 증가한 수치다.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폐쇄되고 석유와 가스 가격이 폭등하자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히트펌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것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석유와 가스 소비를 줄이기 위해 전기요금을 인하하도록 장려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히트펌프는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지만 가동을 위해서는 일정량의 전기가 필요하다.


유럽은 히트펌프가 천연가스 소비를 대체해 에너지 안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히트펌프협회(EHPA)에 따르면 2025년말 기준 유럽 21개국에 2930만대의 히트펌프가 설치돼 있다. 이는 매년 약 250억㎥의 가스 수입을 줄여 유럽의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협회는 "히트펌프는 LNG 운반선 200척 이상에 해당하는 열을 공급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제주부터 히트펌프 보급 확대…내년 예산 5.5배↑

우리나라 역시 중동 전쟁으로 LNG 수급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히트펌프가 새로운 열에너지 공급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 수입하는 LNG의 절반은 난방용으로 사용된다. 외부 열원과 전기의 힘으로 난방을 제공하는 히트펌프가 확대되면 그만큼 가스 소비를 줄일 수 있다.

히트펌프는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히트펌프 가동에 필요한 전기는 재생에너지나 원전 등 무탄소 전원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또 국내 가전사들이 직접 히트펌프를 제작, 공급할 수 있어 국내 산업 육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


다만 가스보일러 중심의 국내 주거 환경을 단시일 내에 히트펌프로 교체하기란 쉽지 않다. 히트펌프는 기존 가스보일러 대비 가격이 비싸고, 설치에 제약이 따른다. 전기요금에 대한 부담도 있다. 정부는 제주 지역을 시작으로 점차 히트펌프를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제주는 올해 주택의 난방 시설을 히트펌프로 교체하는 실증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제주 영평동에서 '난방 전기화 1호 설치 가구 현판식'도 개최했다. 제주는 올해 말까지 2460가구에 히트펌프를 보급할 계획이다.

제주 실증주택 지하 기계실에 설치된 삼성전자 'EHS 히트펌프'의 하이드로유닛과 축열조의 모습. 강희종기자

제주 실증주택 지하 기계실에 설치된 삼성전자 'EHS 히트펌프'의 하이드로유닛과 축열조의 모습. 강희종기자

원본보기 아이콘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올해 편성한 단독주택 히트펌프 보급 사업 예산(145억원) 가운데 95%인 138억원이 제주에 배정됐다. 히트펌프 설치를 희망하는 가구에 비용의 70%를 지원한다. 정부 지원에도 불구하고 자부담 비용이 300만~400만원에 달하는 점은 부담이다.


하지만 히트펌프는 연료비를 아낄 수 있어 장기적으로는 기존 가스·기름보일러 대비 경제적일 수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평균적으로 가스보일러에서 히트펌프로 교체하면 지역 에너지 가격과 주택의 에너지 효율에 따라 비용을 20~60% 이상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제주에서 시작된 히트펌프 보급 사업은 내년에는 육지로 확대될 예정이다. 히트펌프 등을 활용한 전체 열에너지 전기화 사업에 내년 예산 859억원이 편성됐다. 올해 157억원보다 5.5배 늘어난 규모다.

에어컨 원리 역이용…성능계수란?

히트펌프란 주변의 공기, 물, 땅의 열을 건물의 냉난방에 이용하는 기술이다. 히트펌프는 크게 증발기(열교환기), 압축기(콤프레서), 응축기(콘덴서), 팽창밸브로 구성된다.


내부를 순환하는 냉매는 증발기에서 외부의 열을 흡수해 기체로 변한다. 기체 상태의 냉매는 압축기에서 고온 고압 상태로 변한다. 응축기에서는 열을 방출해 냉매를 액체 상태로 만든다. 이때 방출하는 열을 난방에 활용하게 된다. 액체 냉매는 팽창밸브를 기체로 변하기 쉬운 상태가 되어 다시 증발기로 이동한다.


이때 어떠한 외부 열원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공기열·수열·지열 히트펌프로 분류한다. 자연열 외에도 공장 폐수 등을 활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반도체 공장이나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이용한 히트펌프도 등장하고 있다. 대형 히트펌프와 지역난방 시스템을 결합하면 아파트단지나 산업단지 전체에 열을 공급할 수 있다.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임.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임.

원본보기 아이콘

히트펌프에서 가장 많은 전기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은 압축기다. 히트펌프는 천연가스를 사용하지 않아 친환경적이지만 전기 사용량이 누진되면서 전기료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정부가 히트펌프를 활성화하기 위해 별도 요금제를 도입하려는 이유다.


히트펌프는 에어컨의 원리를 역이용한 것이다. 에어컨은 실내의 열을 흡수해 실외의 열교환기에서 열을 방출하는 반면, 히트펌프는 실외에서 열을 흡수해 실내에 열을 방출하는 방식이다. 히트펌프와 에어컨 모두 냉매가 압축, 응축, 팽창, 증발하는 과정을 거친다. 에어컨의 원리와 동일하게 때문에 국내 가전사들이 히트펌프에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제주도 시범사업에는 삼성전자, LG전자, 대성히트에너지스가 참여하고 있다.


히트펌프의 효율을 나타내는 핵심 개념이 성능계수(COP)다. 히트펌프가 소비한 전기 에너지 대비 생산한 열에너지의 비율을 뜻한다. 예를 들어 COP가 4.0이라면 1킬로와트(㎾)의 전기를 사용해서 4㎾의 열을 생산한다는 의미다. 사용한 전기보다 생산한 열에너지가 높은 것은 외부의 열원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특정 시점이 아닌 시즌 전체의 평균 효율을 나타낼 때는 계절성능계수(SCOP)를 사용한다.


성능계수는 외부 열원의 종류 및 온도, 열교환기의 성능, 냉매의 종류 등 여러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이 외부 열원의 종류와 온도다. 열원의 온도가 일정하면서도 높을수록 성능계수가 높다. 정부가 따뜻한 제주도에서 우선 시범 서비스를 실시하는 이유다.


제주도에 설치된 삼성전자 'EHS 올인원' 히트펌프 제품의 경우 여름철 성능계수는 4 이상을 기록했다. 삼성전자 측은 영하 15℃까지 떨어져도 2.5 이상의 성능계수를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추운 나라' 노르웨이·핀란드·스웨덴, 가구 절반 히트펌프 사용

우리보다 먼저 친환경 정책을 적극 추진해온 유럽에서는 히트펌프가 상당히 보급됐다. 2025년 유럽 21개국에서는 288만대의 히트펌프가 판매됐다. 이는 2024년(256만대)보다 12.5% 증가한 것이다.


유럽 내 히트펌프 판매량은 2021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천연가스 요금이 폭등한 이후 급증했다. 2021년 235만대였던 판매량은 2022년 331만대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다시 천연가스 가격이 안정되고 일부 국가에서 지원 정책을 축소하면서 2023년(319만대), 2024년(256만대) 등 2년 연속 판매량이 감소했다.

[에너지 오디세이]⑧"공기·땅·물도 에너지가 된다"…LNG 수입을 줄이는 법 원본보기 아이콘

2025년에는 여러 국가가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전기요금을 인하하면서 다시 히트펌프 판매량이 증가했다. 중동 전쟁으로 천연가스 요금이 급등하면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히트펌프 판매량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의 상당수 국가에서는 전기요금이 가스요금보다 높게 설정돼 있어 히트펌프 도입을 주저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유럽히트펌프협회는 "히트펌프 보급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세제 개혁,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 단계적 폐지, 히트펌프에 대한 금융 지원 등을 결합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가별로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에서는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히트펌프를 보유하고 있다. 2025년 말 기준 1000가구당 히트펌프 보유대수를 보면 노르웨이가 651대로 가장 많고, 핀란드(543대). 스웨덴(506대), 에스토니아(362대), 덴마크(231대), 프랑스(217대) 등의 순이다.


날씨가 추운 북유럽 국가에서 히트펌프가 상당히 많이 보급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겨울철 날씨가 추워 히트펌프 성능이 떨어질 것이라는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에너지 오디세이]⑧"공기·땅·물도 에너지가 된다"…LNG 수입을 줄이는 법 원본보기 아이콘

폴란드, 슬로바키아, 영국은 아직 히트펌프 보급률이 저조하다. 하지만 이들 국가에서도 히트펌프 보급 정책을 도입하고 있어 향후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분석이다.

아파트·개별난방 중심 韓, 히트펌프 보급 어려운 이유

한국의 경우 유럽과 주거 구조가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다. 단독주택이 대부분인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아파트가 절반 이상이다. 유럽의 경우 공동주택에서도 개별난방 대신 주로 지역난방을 이용하기 때문에 히트펌프로의 전환이 용이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공동주택에서 개별난방을 사용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단독주택의 기름·가스보일러를 히트펌프로 교체하는 유럽 모델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보급의 한계가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총 주택 1987만3000호 가운데 아파트는 1297만4000호로 전체의 65.3%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시 공동주택통합정보마당에 따르면 서울시 전체 아파트 2886단지 가운데 개별난방이 1961단지로 67.9%에 이른다. 지역난방이 26.3%, 중앙난방은 4.5%를 차지하고 있다.

[에너지 오디세이]⑧"공기·땅·물도 에너지가 된다"…LNG 수입을 줄이는 법 원본보기 아이콘

결국 우리나라에서 의미있는 규모로 히트펌프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공동주택의 개별난방을 전환해야 한다. 하지만 기존 구축 아파트의 난방 시설을 히트펌프로 교체하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히트펌프 실외기와 축열조를 설치해야 할 장소를 별도로 확보해야 하고 온수 배관 공사도 필요하다.


정부는 신축아파트를 중심으로 히트펌프 보급을 촉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초기부터 히트펌프를 고려해 아파트 내부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히트펌프를 선택하는 신축아파트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에 열을 공급하는 지역난방도 신속히 대형 히트펌프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지역난방의 경우 주로 열병합발전(CHP)을 통해 전기와 열을 함께 공급하고 있다. 열병합발전소를 히트펌프로 교체하는 데는 막대한 투자비가 필요하다.


전기만 생산하는 기존 일반 발전소와 달리 열병합발전소는 에너지 이용효율을 약 30%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주로 LNG를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여전히 화석연료에 의존해야 한다.


한국지역난방공사는 현재 5곳의 지사에서 소규모로 히트펌프를 운영하고 있다. 히트펌프를 이용한 열 생산량은 연간 101기가칼로리(Gcal)로 지역난방공사 총열생산량(1607만1000Gcal, 2025년 기준)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AD

지역난방공사는 "히트펌프를 포함한 청정열의 비중을 현재 28%에서 2035년까지 38%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도체공장, 데이터센터, 하수처리장, 산업단지 등에서 발생한 폐열을 히트펌프로 회수해 지역난방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강희종 에너지 스페셜리스트 mindl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