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있을 때는 보복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당해보니 부아가 치밀더라." 최근 만난 한 야권 인사 얘기다. 정치보복에 반대했던 사람조차 자의든, 타의든 앙갚음으로 밀려가는 요새 정치권의 단면이다.
영화 '암살자(들)' 논쟁도 비슷하다. 영화는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에 의문을 던진다. 국민의힘은 이중 잣대라며 반발한다. 오늘은 박정희 대통령이 '내가 (총탄을) 맞고 어머니(육 여사)가 살았더라면'이라고 쓴 편지도 공개됐다.
문제 제기 자체는 일리가 있다. 옹호의 논리로 사용되는 '표현의 자유'가 특정 인물·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진보 진영이 5·18 왜곡 등엔 적극 대응해 왔지만, 보수진영이 예민하게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선 다른 잣대를 들이대 온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좌파도 그랬으니 우리도 하겠다"는 보복의 논리라면 그간 비판해 온 진보 진영 오류를 답습하게 된다. 당장 상영 중단 및 감독 국정감사 출석요구, 출연진 공격도 벌어진다.
이런 피장파장 식의 대응, 보복의 논리는 지지층에 카타르시스를 주는 데는 유효할 수 있다. 허나 과유불급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윤석열 전 대통령을 보자. "제 사전에 정치보복이란 단어는 없다"고 했지만, 집권 뒤엔 "민주당 정부 때는 안 했나"라고 반문했다. 그 정치의 끝은 우리도 잘 알고 있는 12·3 비상계엄이다.
반대편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있다. 지지층의 분노, 본인의 한(恨)이 있었으나 보복 대신 화해와 통합을 선택했다. 호남과 민주화 세력만으로 다수파 형성이 어려운 상황에서 불가피한 정치 전략이었겠으나,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정권교체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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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자(들) 논란도 전화(轉化) 할 수 있다. 영욕의 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지,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진영을 넘어선 공통된 잣대는 무엇인지로 바꿔야 한다. 분노에 올라타는 건 쉽다. 그러나 정치가 해야 할 더 어려운 일은 그 분노를 넘어 새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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