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문명의 야수성 불안한 미래 조명
"결국 저 위태로운 모습이 우리 자회상"

[남산길 산책]왜 다시금 오이디푸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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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가을 시즌 우리 국립극단은 독일 극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의 5부작 '안트로폴리스'의 세 번째 작품 '오이디푸스(송전 역, 정진새 각색, 강량원 연출)'를 선보이고 있다.


오이디푸스 앞에 붙어있는 다소 생소한 '안트로폴리스'라는 명칭은 저자인 쉼멜페니히가 만들어낸 단어다. 직역한다면 '인간 도시'쯤 되겠다.

신에 대한 종속과 군주에 대한 충성에 이어 근대적 자아가 탄생시킨 '인간' 중심적 문명에 의한 위기 의식이 높아져 가는 이즈음, 쉼멜페니히는 인간 공동체를 위협하는 본성적 야수성에 주목한다. 그를 위하여 그리스 신화에서 긴장도가 가장 높은 지점 중 하나인 '오이디푸스'를 중심으로 한 서사들을 소환한다. 그리하여 그의 가계에 얽힌 디오니소스 신으로부터 그의 아버지 라이오스, 그리고 아내 이오카스테 및 딸 안티고네를 차례로 조명하는 5부작을 완성하였다. 초연은 2023년 독일 함부르크 도이쳬스 샤우슈필하우스에서 카린 바우어의 연출로 3일간 연속 공연되어 크나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국립극단은 2025년부터 그의 5부작 중 1부와 2부의 공연에 이어 올해 '오이디푸스' 외에도 '이오카스테'와 '안티고네' 공연을 앞두고 있다. 쉼멜페니히의 작품이 소포클레스의 원전 '오이디푸스'와 유독 크게 다르지 않음에, 강량원 연출은 작가의 동의하에 각색을 거쳐 본인의 세계관을 투영한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는 고대 비극의 미학을 꿰뚫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저 '시학'에서 비극의 완성에 도달한 명작으로 칭송받았다. 극 전체의 구성 요소들의 총화가 결국 관객에게 제공하는 '연민'과 '공포'를 거쳐 스스로의 억압과 불안이 해소되는 '카타르시스'에 도달하게 한다는 것이다.


명동예술극장 무대의 9분의 1에 해당되는 화이트 큐브 안으로 "곪은 발(오이디푸스의 본래 의미)"을 이끌며 맨몸으로 등장하는 우리의 오이디푸스는 "고귀한 신분에 보통의 덕성을 지닌다"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인물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신분은 왕이지만 그의 왕국은 이미 쇠락하여 종말을 기다리는 듯한 황폐한 곳이다. 끔찍한 저주로 인하여 출생과 함께 발뒤꿈치에 족쇄가 채워진 채 버려졌던 터라 곪아있는 발로 평생을 절뚝이며 살아온 그는 극초반부터 이미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지배하게 된 왕국을 구하겠노라 신탁이 명하는 대로 선왕의 살해범을 추적해 나가는 추진력과 용기만이 원전과 다르지 않다.


장애를 안은 채, 이방인으로서 지배하게 된 왕국에서 그는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는 끔찍한 저주의 핵심으로 진입한다. 그러한 그를 동반하는 주변 인물들 그리고 각종 동물 및 광물로 표현된 코러스(그리스극에서의 합창대)까지 그의 위험한 여정을 지켜보며 연민을 보낸다. 비극의 정점으로 치닫는 한 순간 그의 아내이자 어머니인 이오카스테는 자신의 머리를 빗던 빗으로 그의 머리를 한동안 빗어 내린다. 절뚝이며 낮은 자세로 일관하던 그가 가장 높이 올라가는 순간은 천정에 목을 매단 이오카스테를 끌어내리는 장면에서다. 이처럼 그녀의 시신을 수습한 그는 그녀 옷깃의 핀으로 자신의 눈을 찌르며 영원한 어둠에 갇히도록 한다.


선왕의 살해범을 왕국으로부터 추방하라는 신탁에 따라 가차 없이 스스로를 추방하며 유랑을 떠나는 극의 막바지, 무대를 가두던 거대한 벽이 열리며 나타나는 대형 공간 안으로 그는 여전히 절뚝이며 스러진다. 그곳은 어떤 곳일까. 무대 후면, 드높이 솟아있는 빌보드 위에 우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불안한 미래의 표상인 듯한 영상이 맺히는 동안 관객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저 위태로운 오이디푸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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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원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회장, 경계없는예술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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