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코리아 2027' 출간 간담회…내년 10대 소비트렌드 공개
"AI는 이미 범용필수재"…권태사회·휴먼엣지·안목자본 등 제시

2027년을 전망하는 10개의 소비 키워드에는 뜻밖에도 '인공지능(AI)'이라는 단어가 없다. AI의 중요성이 줄어서가 아니다. 스마트폰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며들어 더 이상 별도의 신기술로 떼어 말하기 어려워졌다는 진단이다.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던 단계에서, AI가 바꿔놓은 사회에서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단계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트렌드 코리아 2027'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열가지 키워드를 설명하고 있다. 미래의창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트렌드 코리아 2027'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열가지 키워드를 설명하고 있다. 미래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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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3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트렌드 코리아 2027'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AI는 이제 일상의 범용필수재가 됐다"며 "AI 기술 자체보다 AI가 개인과 조직, 사회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우리는 그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살펴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트렌드 코리아'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매년 이듬해 소비 흐름을 전망해온 시리즈로, 2008년 '트렌드 코리아 2009'를 시작으로 올해 19번째 책을 냈다. 2027년판은 AI가 무엇을 대신할지를 묻기보다, AI가 너무 익숙해진 이후에도 인간에게 남는 경쟁력이 무엇인지를 10개의 키워드로 풀어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꼽은 2027년 10대 소비트렌드는 ▲권태사회 ▲라이프 ROI ▲폼팩터 시프트 ▲해봄경제 ▲저장인류 ▲바이브 워킹 ▲리:텐션 전략 ▲휴먼엣지 ▲하프 시그널 ▲안목자본 이다.


첫머리에 놓인 키워드는 '권태사회'다. 예전의 권태가 할 일이 없고 자극이 부족해 생기는 '결핍형 권태'였다면, 지금은 정반대다. 쇼츠와 유튜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넘나들며 하루 종일 자극에 노출되고 끊임없이 바쁘게 움직이는데도 정작 삶은 단조롭고 재미없다고 느끼는 '과잉형 권태'가 나타난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바쁜 사람은 많은데 재미있다는 사람을 보기가 어렵다"며 "넷플릭스를 보면서도 더 재미있는 것이 없나 찾고, 신호대기만 걸려도 휴대전화를 꺼낸다. 바쁘게 시간을 보내지만 의미 있는 경험으로 축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극을 계속 갈아치우다 보니 하나의 경험이 충분히 숙성되기 전에 지겨움을 느끼고, 다시 새로운 자극을 찾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설명이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트렌드 코리아 2027'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열가지 키워드를 설명하고 있다. 미래의창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트렌드 코리아 2027'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열가지 키워드를 설명하고 있다. 미래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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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ROI'는 투자수익률을 뜻하는 ROI(Return On Investment)의 계산법이 돈을 넘어 삶 전체로 번지는 현상이다. 직장과 인간관계, 취미와 시간 사용까지 "들인 것에 비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를 따진다. 효율을 중시하며 관계를 빠르게 정리하는 사람이 늘면서 역설적으로 마지막까지 남는 가족의 밀도가 높아지는 현상도 여기에 포함된다.


모든 순간을 기록하는 '저장인류'도 등장했다. 회의와 수업, 대화는 녹음하고 방문한 장소와 음식, 운동 기록은 애플리케이션에 남긴다. 기억해야 할 것을 골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모든 것을 저장한 뒤 필요할 때 다시 꺼내 쓰는 방식으로 삶의 기록법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프 시그널'은 인생의 중간 지점에 접어든 소비자에게 주목한다. 갱년기를 단순한 신체적 노화 현상이 아니라 인생의 반환점에서 울리는 신호로 바라보고, 이 시기의 남녀가 건강과 관계, 소비와 자아를 새롭게 설계하는 흐름을 포착했다.


기업과 일의 방식도 바뀐다. '바이브 워킹'은 AI를 단순히 업무에 추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과 AI가 하나의 흐름 안에서 움직이도록 업무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개념이다. 김 교수는 AI를 도입했다고 기업 생산성이 저절로 크게 향상되는 것은 아니라며 과업과 AI, 인간 사이의 협업 체계를 새로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폼팩터 시프트'는 기능을 추가하는 대신 형태 자체를 바꾸는 혁신을 뜻한다. 접는 스마트폰이나 붙이는 비타민, 알약 형태의 육수처럼 익숙한 상품의 물리적인 형태를 바꿔 새로운 사용 경험을 만드는 방식이다.


인구 감소와 저성장 시대에는 신규 고객을 끝없이 끌어오는 전략도 한계를 맞는다. '리:텐션 전략'은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는 것보다 이미 확보한 고객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다시 찾게 만드는 데 기업의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흐름을 가리킨다.


AI가 낮춘 실행 비용은 '해봄경제'를 만들어낸다. 과거에는 자본과 인력, 전문기술이 있어야 가능했던 일을 생성형 AI와 각종 디지털 도구를 이용해 개인이 빠르게 시도할 수 있게 됐다. 완벽하게 준비한 뒤 시작하는 대신 일단 실행하고, 결과를 보고 수정하며 다시 시도하는 사람이 기회를 얻는 시대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과거에는 완벽해질 때까지 준비했다면 지금은 일단 빨리 해보는 것이 중요해졌다"며 무엇을 아느냐 못지않게 실제로 무엇을 해봤느냐가 경쟁력이 된다고 말했다.

AI는 사라지고 '안목'이 남았다…김난도가 본 2027년 원본보기 아이콘

AI가 결과물의 평균적인 완성도를 끌어올릴수록 인간의 역할은 오히려 선명해진다는 게 '휴먼엣지'다. 무엇을 선택했고 어떤 판단을 내렸으며 그 결과에 누가 책임지는지, 결과물에 남은 인간의 흔적이 차별화 요소가 된다는 의미다. 매끈한 완성도보다 손맛과 작은 결점,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새로운 가치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마지막 키워드인 '안목자본'도 같은 맥락이다. AI를 이용하면 누구나 일정 수준 이상의 글과 이미지, 기획안을 생산할 수 있는 시대에는 만들어내는 능력 자체보다 수많은 결과물 가운데 무엇이 좋은지 골라내는 눈이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AI 시대의 진정한 승자는 AI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안목을 갖춘 사람"이라며 안목이 사회적 영향력과 경제적 기회로 축적되는 하나의 자본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2027년을 관통하는 슬로건은 '알파 쉽(ALPHA SHEEP)'이다. 알파는 그리스 문자의 첫 글자로 '처음'과 '시작'을 뜻한다.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양처럼 변화의 흐름에 그대로 휩쓸리는 대신 무리에서 먼저 뛰쳐나와 자신의 판단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자는 의미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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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초지능적인 존재가 등장하면서 사람이 주체성을 지키기가 이전보다 어려워지고 있다"며 "변화의 바다에 먼저 뛰어들어 무리를 이끄는 존재가 되자는 의미에서 알파 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말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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