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딜 정책, 내용보다 이름으로 많이 소비
기존 정책 틀·재원 변화없이 명칭만 빌려
국민 공감 위해 생애주거복지 플랫폼 구축
주택 중심으로 돌봄·일자리·공동체 결합
거버넌스·기본법·과감한 재정 투자 필수적
정부 추진 '3대 메가프로젝트'도 연계해야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7일 취임 후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새로운 주거정책 거버넌스와 '주거뉴딜'을 제안했다. 정책 결정 과정을 중앙과 지방, 이해관계자가 함께 참여하는 구조로 바꾸고 주택 부문에 과감히 재정을 투입하자는 것이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1일 발표한 '주거안정플랜'에도 이런 방향이 상당 부분 담겼다. 2030년까지 공적주택 119만가구를 공급해 장기공공임대 재고를 전체 주택의 10% 이상으로 늘리고, 지방정부의 참여로 주거복지 전달체계를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공공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주거복지를 강화하는 주거안정플랜을 주거뉴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별도의 주거뉴딜을 구상하고 있는 것일까? '뉴딜(New Deal)'은 대공황이라는 재난적 위기를 넘기 위해 추진한 경제·사회 개혁을 통칭한다. 주거뉴딜이라는 이름에서 국민이 기대하는 것도 기존 정책의 보완이 아니라 주택정책 기조의 전면적인 전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면 전환이나 위기 극복을 내건 정책을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차례 추진했다. 2004년 연기금으로 사회기반시설 투자를 늘리는 종합투자계획이 '한국형 뉴딜'로 불렸다. 2006년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투자·일자리와 규제 완화를 맞바꾸는 사회적 대타협으로 뉴딜을 제안했다.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 해양수산부의 어촌뉴딜300, 코로나19 이후의 한국판 뉴딜도 그 계보다. 그러나 정책의 틀 자체를 바꾼 전환적 성과를 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평가도 많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39회국회(정기회) 제3차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주거뉴딜 추진의사를 밝혔다. 2026.09.07 윤동주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뉴딜이 정책의 내용보다 이름으로 소비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존 정책의 틀과 재원은 그대로 둔 채 명칭만 빌려 쓰는 것이다. 뉴딜은 새로운 추진체계를 요구하지만, 실제로는 기존 조직이 익숙한 방식으로 사업의 양과 속도를 늘리는 데 그쳤다. 정권이 바뀌면 간판과 함께 사업도 힘을 잃었다.
지금 필요한 주거뉴딜은 명칭이 아니라 정책의 틀을, 기존 조직이 아니라 추진체계를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추상적인 비전보다 지금 가장 절박한 삶의 문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소득의 상당 부분을 월세로 내는 청년, 보증금을 떼일까 불안한 세입자, 집 한 채 말고는 노후 대비가 없는 고령층, 빈집이 늘어가는 지방 소도시가 그 현장이다.
주거뉴딜의 성공을 위한 실행조건은 네 가지다. 첫째, 주거뉴딜은 주택을 각종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인프라이자 플랫폼으로 인식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주택은 삶의 터전을 넘어 자산 비축과 투자의 수단이 됐고, 정책은 과도한 수요가 빚은 가격과 임대료 상승을 누르는 데 매달려 왔다.
주택을 중심으로 돌봄·일자리·에너지 전환·공동체 서비스를 결합하고, 단위주택을 넘어 지역의 기반시설과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구상한다면 주택은 여러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반도체·피지컬 인공지능(AI)·AI 데이터센터의 3대 메가프로젝트도 주거뉴딜과 연계해야 한다. 일자리와 산업시설을 조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택·교육·돌봄·교통을 함께 갖춰야 종사자와 가족이 지역에 정착하고, 대규모 투자가 지속적인 지역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주거뉴딜이 성공하려면 주택 부문에 대한 정부의 과감한 재정 투자가 필수적이다. 주택문제는 국정의 핵심 과제이자 국정 지지도를 좌우하는 변수다. 그런데도 올해 국토교통부 일반회계의 주택 부문 예산은 3조4780억원으로 정부 총지출 727조9000억원의 0.5%에도 못 미친다. 저소득층 임차료를 지원하는 주거급여 3조2300억원을 빼면 2500억원 남짓이다. 주택정책은 갚아야 할 기금 융자와 공기업의 개발·매각 수입에 기대어 왔다. 이 구조는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건설비뿐 아니라 운영비와 서비스 비용까지 뒷받침하는 안정적인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 재정의 틀을 바꾸지 않는 주거뉴딜은 또 하나의 간판에 그칠 수밖에 없다.
셋째, 주거뉴딜이 국민적 관심과 공감을 얻으려면 국민의 생애 주거복지 플랫폼을 구축하는 새로운 구상이 뒷받침돼야 한다. 미국 뉴딜의 대표적 성과 가운데 하나도 연방주택청(롬)을 세워 장기 분할상환 모기지를 정착시키고 중산층의 주거사다리를 놓은 주택금융 혁신이었다. LH 등 공기업 중심의 공급 구상을 넘어 국민연금과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도시기금을 잇는 새 틀이 필요하다. 싱가포르의 중앙적립기금(CPF)처럼 청년기에는 주택 마련을 지원하고, 40~50대에는 자산을 쌓고, 노년기에는 주택연금으로 이어지는 생애 주거복지 모델을 설계할 수 있다. 수도권과 대도시의 주택을 유동화해 지방의 주거·의료·요양·돌봄·문화가 결합된 거점으로 옮겨갈 길을 열면, 주택은 자산의 형성과 관리, 지역균형발전을 이끄는 수단이 된다.
넷째, 무엇보다 주택정책 결정과 집행 거버넌스를 바꿔야 한다. 미국의 뉴딜은 의회 입법과 이를 지지하는 광범위한 정치적 연합 위에서 동력을 얻었다. 반면 우리의 뉴딜은 대부분 행정부 발표로 시작해 법적 기반과 사회적 합의가 약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토교통부가 공급을 꼼꼼히 챙기거나, 세제와 규제를 조이는 것만으로는 주택가격 안정과 주택정책의 성공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범부처를 아우르고 지방정부와 공공기관,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국가주거정책위원회 같은 기구를 법률로 설치해야 한다.
지방정부에는 계획 수립에 참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주거정책을 실행할 권한과 재원을 함께 넘겨야 한다. 나아가 주거뉴딜의 목표와 재원, 추진체계를 담은 기본법을 여야 합의로 제정해야 정권이 바뀌어도 이어지는 제도가 될 수 있다. 김 대표가 여야가 함께하는 민생경제협의체에서 주거정책을 우선 다루겠다고 밝힌 것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주거뉴딜이 역사적인 뉴딜의 이름만 소비하는 또 하나의 구호에 머물지 않고, 국민의 생애와 국토의 균형을 함께 설계하는 주택정책 전환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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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흠 세종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전 국토교통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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