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수용확인 폐지 95% 반대
병원 지정·의무수용 92% 반대
실시간 고지 의무 96% "불가능"
응급의학과 전문의 10명 중 9명이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으로 불리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이하 의사회)가 전문의 301명을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93%가 개정안에 반대했고, 92%는 법이 개정돼도 응급실 수용곤란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의사회는 개정안이 병원이 응급환자를 받지 못하는 원인을 그대로 둔 채 병원에 수용 의무만 부과했다고 주장했다.
의사회는 29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대강당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이런 내용이 담긴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의사회는 25일부터 28일까지 응급의학과 전문의 301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설문 응답자는 40대가 50%, 봉직의가 54%, 지역응급의료센터 소속이 50%였다. 응답자의 57%는 서울·경기·인천에서 근무했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3%가 개정안에 반대했다. 개정안에 찬성한 응답자는 8명(3%)이었다. 전문의들은 개정안의 핵심 조항에 모두 반대했다. 응답자의 96%가 "병원이 수용곤란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95%는 119구급대가 이송 전에 병원의 수용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없애는 데 반대했다. 응답자의 92%는 상황실이 수용 병원을 지정하고 지정된 병원이 환자를 반드시 받도록 하는 조항에 반대했다. 응답자의 86%는 중대한 과실이 없으면 형사처벌을 면제한다는 조항만으로는 법적 위험이 줄지 않는다고 봤다. 응답자의 91%는 지역 이송지침을 강화해도 응급환자 이송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전문의들은 자유응답에서 입법 과정의 문제를 가장 많이 지적했다. '현장 의견 미반영·탁상행정'을 지적한 의견이 79건으로 가장 많았다. '의료진 이탈·응급의료 붕괴 우려'가 52건, '법적 책임 전가·면책 불충분'이 45건, '배후진료·최종치료 역량 부족'이 42건으로 뒤를 이었다. 한 응답자는 "응급실에 환자를 수용시켜도 배후진료과와 수술실, 중환자실에서 최종 치료가 불가능하면 문제를 응급실 안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응답했다.
의사회가 개정안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병원이 수용을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를 현장에서 입증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의사회는 "시설·인력·장비나 최종치료 인력이 부족한 상황을 실시간으로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병원이 이를 입증하지 못해 처벌받게 된다면 결국 현장에 무조건 수용을 강요하게 된다"고 밝혔다.
의사회는 병원이 수용곤란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야 하는 의무도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응급실 상황은 시시각각 바뀌기 때문에 병원이 이를 매번 확인해 보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의사회는 병원이 알린 정보가 정확하지 않았을 때 생기는 법적 책임도 현장 의료진이 모두 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의사회는 실시간 고지 체계가 현장에서 활용되지 않고 방치된 '내 손안의 응급실'처럼 예산만 낭비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사회는 119구급대의 사전 수용확인 절차를 없애고 상황실이 병원을 지정하는 방식이 환자를 위험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의사회는 "최종치료 역량이 없는 병원에 수용을 강제하면 기존 환자와 새로 이송된 환자가 모두 위험해진다"고 밝혔다. 의사회는 병원이 환자를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받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개정안이 그 책임을 의료진 개인에게 떠넘긴다고 주장했다. 의사회는 "수용해야 한다는 말이 법에 명시되는 순간, 수용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말과 같다"고 했다.
이들은 응급실 과밀화가 해결되지 않는 한 개정안이 효과를 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경증부터 중증까지 모든 환자가 응급실을 자유롭게 찾고 119구급대가 이송하는 환자의 절반 이상이 경증인 상황에서는 병원이 중증환자를 진료할 여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의사회는 "권역응급의료센터의 이름을 '중증응급의료센터'로 바꾼다고 역량이 향상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의사회는 입법 과정에도 불만을 드러냈다. 의사회는 "지난 5년간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정부와 국회는 현장과 제대로 논의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전문의 대다수가 반대하는데도 일부의 찬성을 근거로 합의가 이뤄진 것처럼 포장해 상임위원회를 통과시켰다"고 주장했다.
대안으로는 병원의 환자 수용 여부를 행정기관이 아니라 현장 전문의가 판단하는 체계를 제시했다. 의사회는 미국 응급의료법(EMTALA)처럼 민·형사상 면책 기준을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정하고, 119 이용을 유료화해 과밀화를 줄이고, 의료 취약지의 인력 계획을 유연하게 짜야 한다고 제안했다. 의사회는 정부와 국회가 법안 조율과 후속 시행규칙 개정, 응급의료 발전계획 수립 과정에 현장 전문가를 참여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응급실 미수용 문제는 법적 위험을 줄이고 과밀화를 해소하며 인프라를 확충하는 선결 과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절대 풀리지 않는다"며 "면책 없는 강제 의무 입법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개정안은 응급실 미수용을 막기 위해 8개 법안을 통합한 대안이다. 개정안은 병원이 응급환자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정당한 사유'를 법에 명시했다. 시설·장비·인력이 모두 사용 중인 경우, 최종진료를 맡을 의료진이 다른 중증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경우, 재난으로 환자를 받을 수 없는 경우 등이다. 병원은 이런 사유가 생기거나 해소되면 중앙응급의료상황실에 지체 없이 알려야 한다. 중증 응급환자를 이송할 병원이 신속하게 정해지지 않으면 중앙응급의료상황실과 119구급상황센터가 수용 병원을 지정할 수 있고, 지정된 병원은 환자를 받아야 한다. 119구급대가 이송 전에 병원의 수용 여부를 확인하던 절차는 없어진다. 개정안은 응급의료 과정에서 의료진에게 중대한 과실이 없으면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조항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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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안은 이달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28일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국회는 다음 달 2일 본회의에서 개정안을 표결할 예정이다. 개정안은 본회의에서 의결되면 6개월 뒤부터 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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