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압류 뒤 합의해제, 채권자에 대항 못 해
예외는 제3채무자가 입증…원심 파기환송
돈을 받을 채권자가 그 돈을 가압류한 뒤 계약 당사자들이 합의해 계약을 없앴더라도, 돈을 지급할 의무가 있는 쪽은 원칙적으로 이를 이유로 가압류채권자에게 지급을 거절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29일 A씨가 B사를 상대로 낸 추심금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울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관 11명이 전원일치 의견을 냈다.
A씨는 2015년 한 회사의 사업에 3억원을 투자했다. 사업이 진행되지 않자 회사로부터 투자금과 이익금 등 4억원을 돌려받기로 했다. 이후 이 회사는 바이오가스 발전 사업을 B사에 8억5000만원에 넘기는 계약을 맺었다.
A씨는 회사가 B사로부터 받을 사업 양도대금 가운데 3억5000만원을 2020년 가압류했다. 이후 본압류로 이전하는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아 B사에 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B사는 가압류 뒤 해당 회사와 양수계약을 합의해제했으므로 양도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사라졌다고 맞섰다.
1·2심은 B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두 회사가 아무런 합리적 이유 없이 A씨가 가압류한 채권을 없앨 목적으로 계약을 해제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이는 가압류 뒤 계약을 합의해제한 경우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그 효력을 가압류채권자에게 주장할 수 있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른 판단이다.
대법원은 이 판례를 변경했다. 가압류 효력이 발생한 뒤 채무자와 제3채무자가 새로 합의해 계약을 없앤 경우, 제3채무자는 원칙적으로 가압류된 채권이 소멸했다는 이유로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합의해제가"압류의 처분금지효가 발생한 상태에서 피압류채권을 소멸시키는 채무자의 행위"라며 "채권 자체를 처분하는 행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했다. 기존 판례대로라면 채권자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 가압류하더라도 채무자와 제3채무자의 사후 합의로 그 성과가 사라질 수 있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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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대법원은 법정·약정해제 사유가 이미 갖춰졌거나 계약의 성격과 합의해제 경위 등을 고려할 때 합의해제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면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예외 사유는 압류된 돈을 지급할 의무가 있는 제3채무자가 증명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대법원은 원심이 계약 해제의 효력을 인정할 만한 예외적인 사정이 있는지는 따져보지 않았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은 채권압류 후 계약 합의해제에 관한 원칙과 예외를 전환해 채무자의 처분 자유보다 압류채권자의 이익을 우선해 보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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