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진의 세계]⑤수의계약의 덫…폐쇄적인 거래 관행 바꿔야
공정위 농협 유통사업 제재 수년째 반복
납품 거래 관행 수술대 올려야
수의계약 공개…평가·제재도 필수
특정업체 수의계약과 공사대금 부풀리기.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11월부터 운영한 농협 관련 익명제보센터에 접수된 비리 신고 중 일부다. 가족 명의로 조합에 농산물을 납품하거나 품질 미달 상품을 공급해 수요가 급감했다는 제보도 있다. 10개월간 쏟아진 제보만 1000건이 넘는다. 전국 하나로마트를 채우고 있는 농산물을 비롯한 상품 구매권은 납품업체의 생사권을 쥐고 흔들수 있는 막강한 권한으로 납품업체에 대한 갑질이 반복되고, 이는 백마진 의혹으로 번졌다.
전문가들은 농협의 구매·납품과 공사 발주 과정에서 반복되는 부당 거래 의혹을 막기 위해선 농협 개혁 과정에서 폐쇄적인 거래 관행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쟁 시스템 구축
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농협유통은 농산물의 경우 농협경제지주로부터 매입해 하나로마트에 공급하지만, 축산·수산물에 대한 구매권을 갖고있다. 한우의 경우 3가지 경로로 유통되는데, 축산물공판장 경매로 사들이는 한우 풀셋(한우 한 마리 모든 부위 세트)을 제외한 나머지 유통구조는 이권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
임도축(비경매)의 경우 농협유통 MD와 판매장 담당자가 사전협의로 도축물량과 도축장을 결정하고, 부분육은 농협유통이 경매에서 구입한 한우를 직매입 계약이 체결된 협력사를 통해 임가공한 뒤 다시 농협유통에 넘긴다. 수산물도 활어는 농협유통과 공급된 다수 업체에서 견적을 받아 공급받고, 선어는 직매입 계약 업체로부터 받는다.
농협은 중앙회장은 물론, 각 조합장이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만큼 선거 보은과 비용 보전을 둘러싼 비리 의혹이 반복되고 있다. 실제 이재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림부로부터 넘겨받은 익명제보센터 제보내용에는 조합장이 개인적 이익이나 선거 보은을 위해 고가 자산을 매입하고 무리한 사업을 추진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선거 관련 금품 제공과 인사·예산 사유화, 하나로마트 신규 투자와 경제사업장 신축으로 조합에 손실을 끼쳤다는 제보도 포함됐다.
또 불투명한 수의계약이 감사에서 적발되기도 했다. 한 지역농협은 수의계약 기준인 2억원을 넘는 추정가격 2억3500만원의 경화장 신축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발주했고, 1000만원짜리 외부회계감사 계약에서는 견적서도 받지 않았다. 농협경제지주에서도 수의계약 사유가 없는 물품 계약을 수의계약으로 처리한 사실 등이 확인됐다.
이 때문에 농협 유통 조직은 상품과 납품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시장 경쟁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조언이다. 최병옥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연구위원은 "경쟁력에 따라 납품업체를 관리했다기보다 영향력이 큰 지역농협 등을 중심으로 판매가 이뤄질 여지가 있는 구조가 더 큰 문제"라며 "누가 구매권을 갖느냐보다 경쟁에 의해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최 연구위원은 "시장 경쟁에 의해 돌아가지 않는 폐쇄적인 구조를 바꾸지 않고 구매권만 옮긴다고 경쟁력이 생기는건 아니다"고 덧붙였다.
수의계약 공개… 검증·제재까지
수의계약을 맺더라도 외부 견적과 시공·납품 조건을 비교하고, 같은 업체와 계약을 반복하는 이유를 확인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교수는 "계약은 사유를 공개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며 "계약 이후 가격·품질·반복 계약을 점검하고, 문제가 확인되면 실제 계약 제한까지 이어져야 투명성이 확보된다"고 말했다. 계약 사유서를 갖추는 형식적인 관리에서 벗어나 납품과 시공 결과를 평가하고 이를 후속 계약에 반영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공공기관에 권고한 수의계약 개선 방안도 참고할 만하다. 권익위는 지난해 12월 공공기관 331곳에 수의계약 사유의 사전 공개와 계약 정보 공개 확대, 동일 업체와의 반복 수의계약 제한 등을 권고했다. 같은 업체와 맺는 계약의 횟수와 누적 금액에 제한을 두고, 불가피한 경우에는 사유를 제시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농협도 업체별 계약 건수와 금액을 함께 살펴 특정 업체에 일감이 몰리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독립적 감사기구 설치
납품업체에 대한 갑질이 반복되고 있는 만큼 이를 감시할 독립적 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8월 농협하나로유통에 과징금 4억6200만원을 부과했다. 납품업체 판촉사원을 사전 약정 없이 데려다 쓰고, 출시 6개월이 넘은 상품 187개를 '신상품'으로 취급해 입점 장려금을 받았다.
앞서 2020년에도 공정위는 농협유통과 농협하나로유통에 과징금 총 7억8000만원을 부과했다. 농협유통은 계약서 교부와 납품업체 직원 사용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 농협하나로유통은 납품업체 77곳에서 약 22억1200만원을 '성과 장려금' 명목으로 받았다. 2019년에는 농협유통이 납품업체 18곳에 정당한 사유 없이 냉동 수산품 약 1억2065만원어치를 반품한 사실이 적발됐다. 양재점에서 허위 매출 약 3억2340만원을 일으킨 뒤 납품업체로부터 그 1%인 약 323만원을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개선 약속 이후에도 계약서 교부와 납품업체 인력 사용 등 유사한 위반이 다시 적발된 것이다.
이재관 의원은 "1년도 되지 않은 기간 1000여건의 제보가 쏟아졌다는 것은 범농협 조직의 부패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것"이라며 "독립적인 감사기구를 설치해 농민을 위한 조직으로 탈바꿈할 때"라고 말했다.
산지 강점 살리고 점포별 맞춤 전략도
거래 관행을 바꾸는 것과 함께 점포 운영과 상품 구성도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모든 점포를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기보다 상권과 매장 여건에 맞춰 투자와 마케팅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상윤 경남대 교수는 "매장 면적과 주차 여건, 마케팅 등 점포별 특성에 따라 성과를 결정하는 요인이 달라 획일적인 점포 전략보다 상권과 점포 특성에 맞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상품 전략의 핵심으로는 신선식품이 꼽힌다. 일반 유통업체와 비슷한 상품 구색으로 경쟁하기보다 전국 산지 조직을 활용해 농협만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상열 농협대 교수는 "하나로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경쟁 관계를 분석한 결과 성공한 그룹은 농·수·축산물 매출액 비중이 높다"며 "하나로마트의 차별화된 경쟁력 역시 농·축·수산물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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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 경쟁력을 매출로 연결하려면 물류와 온라인 판매 체계도 함께 바꿔야 한다. 좋은 상품을 확보하는 데 더해 소비자가 편리하게 구매하고 배송받을 수 있도록 유통망을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우 KREI 연구위원은 "확대되는 온라인 유통채널을 지원할 수 있는 구조로의 전환 및 보완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최 연구위원은 "안 되는 사업은 정리하고 농협이 원래 잘할 수 있는 농산물, 특히 신선 농산물을 중심으로 유통·물류·판매체계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며 "산지에서 소포장과 물류센터를 거쳐 소비지 판매점까지 이어지는 신선 농산물 전문 계열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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