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兆 굴리는 운용사 18곳 긴급 성명
10월 1일 본회의 상정 앞둔 정무위안 반대
지배주주는 전량, 일반주주는 일부만 팔수있어
"코리아 디스카운트 굳힐 수도"

"의무공개매수안, 지배주주만 웃는다"…뿔난 운용사들 공동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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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탁고 87조원 규모의 국내외 자산운용사 18곳이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둔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안에 일제히 반대했다. 제도 도입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안을 그대로 처리할 경우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의 매각 기회 차별을 법으로 굳힐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29일 자본시장업계에 따르면 라이프자산운용, 머스트자산운용, VIP자산운용, 신영자산운용,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차파트너스자산운용, 타임폴리오자산운용, 페트라자산운용, 오아시스매니지먼트, 마이알파매니지먼트 등 국내외 운용사 18곳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다음 달 1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의무공개매수제도 정무위안의 처리를 보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 운용사들은 30일 오후 공동 기자회견도 열 예정이다.

운용사들은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 취지에는 공감한다는 입장이다. 경영권이 바뀔 때 일반주주에게도 지배주주와 동등한 조건의 매각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현재 정무위안이 인수자의 '선행매수'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정무위안은 인수자가 지배주주 지분을 장외에서 먼저 취득한 뒤, 50%+1주에 부족한 수량만 공개매수하도록 하는 구조다. 운용사들은 성명을 통해 "이 방식이 도입되면 지배주주는 보유 지분을 전량 매각할 수 있는 반면, 일반주주는 일부만 팔거나 경우에 따라 한 주도 팔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지배주주가 40%를 보유한 회사에서 인수자가 해당 지분을 먼저 사들이면, 이후 일반주주에게서는 과반 확보에 필요한 10%+1주만 공개매수하면 되는 식이다. 이 경우 일반주주 60%가 모두 응모하더라도 각자 보유 주식의 약 6분의 1만 팔 수 있고, 인수자가 사들이는 물량의 80%는 지배주주 몫이 된다. 지배주주가 이미 과반을 보유한 회사라면 일반주주는 매각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할 수 있는 셈이다.

해외는 물론 국내 기존 제도보다 후퇴

운용사들은 정무위안이 과거 국내 제도와 해외 입법례보다도 후퇴한 안이라고 지적했다. 1997년 도입됐다가 1998년 폐지된 국내 의무공개매수제도 역시 50%+1주 기준의 부분매수 방식이었지만, 지분을 25% 이상 확보하려면 원칙적으로 처음부터 공개매수를 거치도록 했다. 지배주주 지분만 장외에서 먼저 사들이는 구조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일본의 경우 부분매수를 허용하는 대신 일정 지분 이상 취득 시 원칙적으로 공개매수를 거치도록 해 선행매수를 막고 있다. 영국·유럽연합(EU)·홍콩·싱가포르는 선행매수를 허용하더라도 잔여 주식 전부에 대한 매수 제안을 의무화하고 있다.


운용사들은 국내 시장 관행도 이미 정무위안보다 앞서 있다고 봤다. 오스템임플란트, 루트로닉, 제이시스메디칼, 비즈니스온, 에코마케팅 인수 사례에서는 법적 의무가 없었음에도 일반주주에게 지배주주와 같은 가격으로 폭넓은 매각 기회가 주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무위안처럼 제한된 수량만 사도 의무를 다한 것으로 인정하는 법이 생기면, 인수자들이 법이 정한 최소한에 맞춰 거래를 설계할 유인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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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주주 보호정책과 충돌…비례적 공개매수 필요

운용사들은 이번 법안이 정부와 국회가 추진해 온 일반주주 보호 정책과도 충돌한다고 주장했다. 개정 상법은 이사에게 모든 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하라고 요구하지만, 정무위안은 경영권 거래에서 지배주주만 먼저 전량 매각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또 개정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관여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정무위안이 시행되면 기관투자자가 일반주주 보호를 요구할 근거가 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형 '베어허그' 제도와도 정면으로 어긋난다고 봤다. 한국형 베어허그는 이사회가 인수 제안을 주주 관점에서 검토하도록 하는 제도지만, 정무위안은 인수자가 이사회를 거치지 않고 지배주주와 직접 협상해 경영권 지분을 먼저 사는 기존 관행을 그대로 허용할 수 있다.


운용사들이 '비례적 공개매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지배주주도 일반주주와 마찬가지로 공개매수에 응모하게 하고, 모든 주주에게 같은 가격과 같은 안분비례 원칙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앞선 사례처럼 지배주주가 40%를 보유한 회사 지분이 매물로 나올 경우, 모든 주주가 전량 응모한다면 인수자는 지배주주에게서 약 20%, 일반주주에게서 약 30%를 매수하게 된다. 모든 주주가 각자 보유 주식의 약 절반을 같은 가격에 팔 수 있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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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는 "지금까지 이런 차별은 법에 규정이 없어 생긴 관행이었지만, 정무위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잘못된 관행이 '법이 정한 의무를 다한 거래'가 된다"며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오히려 더 굳어질 수 있는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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