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DC 적립금 이전 여부 핵심 쟁점
금융당국 가입자 보호·노동계 규모의 경제
금융회사 역할 재편·경영계 사외적립 부담

정부가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위한 세부 가이드라인 마련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당초 7월까지 제도안을 확정할 계획이었지만 이달 말까지도 결론을 내지 못하면서 일정이 약 3개월 늦어졌다. 기존 확정기여형(DC) 적립금을 기금형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할지를 두고 금융당국과 노동계가 맞서고 있어서다. 논의가 길어질 경우 연내 법 개정 일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재정기획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 이 부총리는 대미투자 협상 경과 및 세부 내용을 비공개로 보고 했다. 2026.09.22 윤동주 기자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재정기획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 이 부총리는 대미투자 협상 경과 및 세부 내용을 비공개로 보고 했다. 2026.09.22 윤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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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27일 취임 후 첫 경제현안간담회에서 고용노동부·금융위원회 등과 퇴직연금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기금형을 둘러싼 이견을 더는 미루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기금형을 추진하는 것은 올 2분기 기준 553조원에 달하는 퇴직연금 적립금을 전문적이고 장기적으로 운용해 노후소득을 높이기 위해서다. 현재는 기업이 은행·증권·보험사 등과 개별 계약을 맺는 계약형이 중심이다. 기금형은 여러 사업장의 적립금을 모아 전문 운용조직이 통합 관리한다. 정부는 적립금이 대형화되면 자산 분산과 장기투자 확대 등 규모의 경제를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정부는 지난 2월 노사정 공동선언 이후 재정부·금융위·노사·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실무작업반을 꾸렸다. 당초 7월까지 유형별 세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연내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었지만, 핵심 쟁점에 대한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기존 DC 적립금 이전 놓고 금융위·노동계 충돌

가장 큰 쟁점은 기존 확정기여형(DC) 적립금을 가입자의 적립금을 기금형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할지 여부다. 퇴직연금 기금형이 기존 계약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두 제도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추진되면서다. 금융당국은 기존 DC 적립금을 기금형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금융상품의 계약·이전 등에 적용되는 규제를 완화하는 특례를 둘 경우, 금융상품 간 규제 형평성이 훼손되고 운용 과정에서 가입자 보호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신중한 입장이다.


반면 노동계는 기존 적립금의 이동을 막으면 기금형 제도의 도입 취지가 퇴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금형은 여러 사업장의 적립금을 모아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전문적인 자산운용을 통해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핵심인데, 기존 가입자가 움직이지 않고 신규 가입자 중심으로 기금이 쌓이면 초기부터 충분한 규모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또 기존 DC 적립금이 기금형으로 이전될 경우 가입자에게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별도의 특례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류제강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은 "기금형 도입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며, 퇴직금 체불 해소와 수급권 확대라는 실질적인 근로자 보호 측면도 깊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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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역할 재편에 중소기업 부담까지

그동안 퇴직연금을 운용해온 금융회사들의 역할 재편도 불가피하다. 현재 계약형 퇴직연금은 은행·증권·보험사 등이 사업자로 참여하지만, 기금형이 도입되면 별도의 수탁법인이 적립금을 통합 운용할 수 있어 경쟁 구도에 놓이게 된다. 금융권에서는 민간 사업자의 역할이 기존 상품 판매 중심에서 자산관리와 고객관리, 성과관리 등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계약형과 기금형이 병존할 경우 수수료 구조 차이에 따라 기금형으로 전환 유도에 소극적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경영계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중소기업의 자금 부담을 고려한 단계적 도입과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소규모 사업장은 퇴직금 재원을 운전자금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갑작스러운 사외적립 의무화가 인건비 부담과 유동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상철 한국경영자총협회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상시 유동성 한계를 안고 있는 소규모 사업장이 많다"며 "고용 조정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 사업체의 62%를 차지하지만, 퇴직연금 도입·가입률은 10%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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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입장에서는 노사정 합의와 금융시장 규율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노동부는 기금형 도입을 포함해 수탁자 책임 강화와 퇴직급여 사외적립 의무화 등을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 한편 정부 일각에서는 기금형으로 이동하려는 근로자가 많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신규 가입자를 중심으로 기금형을 도입하는 방안도 열어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기존 확정기여형과 기금형의 제도적 장치가 실효성 있게 작동할 수 있도록 다각도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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