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 끊어진 사다리]⑤"이상론에 갇힌 韓…현실적 경로 재설계해야"
"청정수소 목표만 있고 실행전략 부족"
"'수소 공급 믹스'로 과도기 거쳐 단계적·점진적 전환"
"데이터센터 등 대형 수요처 확보해 시장 키워야"
①걸음마 떼자마자 악순환 말려든 생태계
②"정부 믿고 투자했는데"…끝나지 않는 '죽음의 계곡'
③딜레마에 갇힌 韓 청정수소 전환 정책
④청정수소 전환도 단계 있다…美·中·日 전략은
⑤"이상론에 갇힌 韓 …현실적 경로 재설계해야"
"국내 수소정책은 청정수소로 간다는 목표만 있을 뿐, 추진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전략이 부족합니다."
박진남 한국수소및신에너지학회 회장(사진)은 12일 본지 인터뷰에서 국내 수소산업의 문제를 이렇게 설명했다. 부생·개질수소 중심의 기존 수소체계에서 탄소배출이 적은 청정수소 중심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구체적인 실행수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글로벌 흐름에 따라 한국이 청정수소 전환에 속도를 내려면 정책 목표에 적합한 재정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우선 2021년 수립된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을 현재 시장과 기술 수준에 맞게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실제 산업의 성장 속도가 당시 예상과 달라진 만큼 목표와 실행방식을 재점검할 시점이란 취지다. 특히 새 계획에는 선언적인 목표에 그치지 않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재정지원 규모와 방식, 단계별 실행수단 등을 체계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 지원의 범위도 연구개발(R&D)에 머물지 않고 생산과 활용, 산업화 단계까지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린수소는 아직 기존 화석연료나 부생·개질수소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매우 낮아 초기 청정수소 시장 형성을 민간에만 맡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정부는 청정수소 생산과 활용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수소산업에 장기간 투입할 수 있는 안정적인 재정 기반을 마련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정책 방향만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이 실제 사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가격 격차를 메워주는 역할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적 당위성만으로는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재정지원과 함께 청정수소로 넘어가는 전환 단계를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정부의 탈탄소 정책에 맞춰 청정수소로 전환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면 일본 등 해외 주요국처럼 과도기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기존 수소를 계속 사용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기존 시장과 공급망, 인프라를 유지·확대하면서 시기와 여건에 맞춰 그레이·블루·핑크·그린수소를 적절히 조합하는 '수소 공급 믹스'를 통해 점차 청정수소 비중을 높여가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박 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그레이·블루·핑크·그린수소는 서로 경쟁하기보다 보완하면서 같이 가는 것"이라며 "그때그때 최적의 조건으로 조합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전환을 뒷받침하려면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해 수소산업의 시장 기반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수소업계에서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대규모 메가프로젝트를 수소산업의 새로운 '대형 고객'으로 주목하고 있다. 전력망 확보가 데이터센터 구축의 병목으로 지목되면서 연료전지와 수소터빈 등을 활용해 수요지 인근에서 전력을 공급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한 수소업계 관계자는 "재생에너지가 확대될수록 수소의 역할도 커질 것"이라며 "3대 메가프로젝트가 수소의 첫 대형 고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특히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수전해 설비가 전력계통을 보완하는 역할에 주목했다.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크게 달라 발전량이 많은 시간에는 전력 공급이 수요를 웃돌 수 있다. 이때 남는 전력으로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장치인 전해조를 가동하고, 반대로 전력 공급이 부족한 시간에는 전해조의 가동을 줄이면 전력 수급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전해조를 단순한 수소 생산설비가 아니라 전력망 상황에 따라 전기 사용량을 조절할 수 있는 일종의 '유연부하'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전력계통이 감당해야 할 변동성도 커지는 만큼 수전해가 재생에너지 확대와 수소 생산을 연결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회장은 "원전과 재생에너지, 수소가 서로 연계돼 각 에너지원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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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수소의 수요와 활용처가 확대되면 수소 생산설비와 저장·운송 인프라에 대한 투자도 늘릴 수 있다. 수요 확대가 투자를 이끌고, 생산량과 시장 규모가 커지면 생산단가를 낮추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도 있다. 기존 수소시장의 기반을 넓혀 청정수소로 단계적으로 전환할 토대를 만들고, 이를 발판 삼아 청정수소 시대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끊어진 사다리'를 다시 잇는 작업이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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