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 끊어진 사다리]④청정수소 전환도 단계 있다…美·中·日 전략은
에너지안보에 수소 가치 커졌지만 전환은 '난항'
2030년 잠재 생산량 전망 1년 새 27% 감소
日 가격차 지원·中 수요 확대·美 투자 연속성 확보
①걸음마 떼자마자 악순환 말려든 생태계
②"정부 믿고 투자했는데"…끝나지 않는 '죽음의 계곡'
③딜레마에 갇힌 韓 청정수소 전환 정책
④청정수소 전환도 단계 있다…美·中·日 전략은
⑤"이상론에 갇힌 韓…현실적 경로 재설계해야"
한국은 대표적인 에너지 수입의존국이다. 12일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한국의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2024년 잠정 기준 93.7%에 달한다. 한국처럼 에너지의 해외 조달 비중이 높은 국가는 지정학적 충격에 더욱 취약하다. 특정 공급국과 에너지원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산업과 경제 전반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을 최근 다시 한번 각인시킨 사례가 유럽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이다.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으로 향하는 파이프라인 가스 공급을 대폭 줄였고, 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유럽 전체가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겪었다. 중동에서도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주요 산유국과 호르무즈 해협을 비롯한 수송로의 공급 차질 우려가 국제유가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수소의 전략적 가치는 이러한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점차 부각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원이라는 기존 역할에만 머물지 않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수소가 자국의 에너지원을 활용하는 폭을 넓혀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국과 공급경로를 다변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재생에너지 기반 수소는 기존 주요 석유·가스 생산국이 아닌 지역에서도 생산할 수 있어 공급국을 분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수소가 당장의 에너지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IEA에 따르면 그린수소 등 생산 과정에서 탄소배출을 크게 낮춘 저배출(low-emissions) 수소는 아직 대부분의 지역에서 기존 화석연료 기반 수소보다 비싼 데다, 대규모 생산과 저장·운송 인프라 구축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수요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기도 어렵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수소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이를 실제 시장으로 연결하기까지 넘어야 할 문턱은 여전히 높은 셈이다.
IEA가 지난 6월 발표한 '글로벌 수소 리뷰 2026'에서 2030년 가동을 목표로 발표된 저배출 수소 프로젝트의 연간 잠재 생산량은 2700만t이다. 지난해 보고서의 3700만t보다 27% 줄었다. 일부 프로젝트의 가동 시점이 2030년 이후로 미뤄지거나 사업이 일시 중단·취소된 영향이다. 높은 생산비와 불확실한 수요 등도 프로젝트 추진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지난해 전 세계 저배출 수소 수요는 약 100만t으로 전체 수소 수요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해외 주요국은 장기적으로 저배출 수소 시장을 키워가기 위해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위험을 낮추는 방식으로 정책을 보완하고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환경적 당위성만으로는 시장이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IEA도 새로운 수요처만 기다리기보다 정유·화학 등 이미 수소를 사용하는 산업부터 저배출 수소로 전환하고, 초기 가격 격차를 줄이는 지원과 장기간 예측 가능한 정책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결국 관건은 기존 화석연료 기반 수소에서 저배출 수소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얼마나 매끄럽게 감당해낼 수 있느냐다.
일본은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50여년간 수소 관련 기술개발과 정책을 이어왔다. 일본의 에너지 자급률은 2023년 기준 15.3%로, 주요 7개국(G7) 최저 수준이다. 이에 따라 수소를 국가 에너지전략의 핵심 축으로 보고, 정책적 확신과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국내외 산업계의 전반적인 평가다. 정책도 기초 연구·개발(R&D)에서 실증과 공급망 구축, 최근에는 시장 창출과 민간투자 유도로 단계적으로 확장했다.
눈에 띄는 것은 일본이 이상적인 그린수소 단일 경로에 매달리기보다 실용적인 접근을 택했다는 점이다. 현실적인 전환 가능성과 초기 수요 확보를 우선시해 블루수소와 암모니아 혼소 등 당장 활용 가능한 여러 경로를 병행하는 방식이다. 특히 기존 화력발전소를 활용한 암모니아 혼소를 신규 인프라 투자 없이 대규모 수요를 즉각 창출하면서 화력발전의 저탄소화도 추진할 수 있는 현실적 수단으로 봤다. 한국이 올해부터 청정수소발전 입찰시장에서 석탄·암모니아 혼소를 제외한 것과 대조적이다.
또한 수소사회추진법에 따라 저탄소 수소와 기존 연료·원료의 가격 차이를 15년간 보전하는 차액계약(CfD)형 제도를 운영한다. 저장·운송 등 공급망 구축과 정책금융도 지원해 가격과 투자 위험을 정부가 함께 분담하는 구조다. 이처럼 그린수소 인프라가 성숙하기 전까지 수요 공백을 메우며 단계적으로 '수소사회'를 실현한다는 전략이다.
중국은 2035년까지 수소의 다원화된 활용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목표 아래 시장을 육성하고 있다. 지난 3월 발표한 '수소에너지 종합응용 시범사업'에서는 기존 수소연료전지차 중심에서 철강·화학 등 산업 분야로 활용처를 넓히는 한편, 정유·석탄화학 등 수소 다소비 산업의 화석연료 기반 수소를 재생에너지 기반 수소로 점진적으로 대체하도록 했다.
수요 창출을 위한 지원 방식도 성과 중심으로 설계했다. 중앙정부가 일률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기보다 실제 수소 사용 규모와 제품 적용 등 성과에 따라 지원액을 차등하는 '이장대보(以奖代补)' 방식을 적용하며, 도시군별로 4년간 최대 16억위안(약 3200억원)을 지원한다. 2030년까지 도시군에서 수소의 대규모 활용을 확대하고 최종 수소 사용가격을 평균 ㎏당 25위안(약 5000원) 이하로 낮추는 것이 목표다.
장기적 관점에서 수소정책을 추진하더라도 정권 변화나 시장 상황에 따라 세부 정책은 조정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이다. 2022년 미국의 조 바이든 당시 행정부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2032년 말까지 착공한 청정수소 프로젝트를 생산세액공제(45V) 지원 대상으로 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를 2027년 말까지 착공한 프로젝트로 5년 앞당겼지만, 기한 내 착공하면 생산 개시 이후 최대 10년간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구조는 유지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한국 가서 한탕 벌자"…외국인들 우르르 몰려든 '이곳' [주末머니]
하지원 한국수소연합 국제협력실장은 "정책을 변경하더라도 이미 투자 중인 프로젝트의 예측 가능성과 연속성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