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수소차 보급 청사진과 현실 괴리 지속
수요·인프라 선순환 지연에 선투자 기업 이중고
수소유통·활용기업 70% 연매출 10억원 미만

편집자주우리나라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주목받아온 수소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가 세계 최초로 수소법까지 제정하며 생태계 구축에 공을 들였지만, 청사진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산업의 토양 자체가 급속히 허약해지는 양상이다. 정부가 제시한 방향에 맞춰 연구·개발(R&D)과 설비투자에 선제적으로 나선 수소기술 중소기업들은 생사의 기로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아시아경제는 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이런 현실을 조명하고, 수소시대를 넘어 청정수소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해법을 모색한다.

①걸음마 떼자마자 악순환 말려든 생태계

②"정부 믿고 투자했는데"…끝나지 않는 '죽음의 계곡'

③딜레마에 갇힌 韓 청정수소 전환 정책

④청정수소 전환도 단계 있다…美·中·日 전략은

⑤"이상론에 갇힌 韓…현실적 경로 재설계해야"


"7년차 이후에는 수익이 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죽음의 계곡'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11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본사에서 만난 성낙철 수소에너지네트워크(하이넷) 전략기획실장은 국내 수소충전 시장의 현주소를 설명하며 이렇게 하소연했다.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은 기술개발이나 초기 사업화에는 성공했지만, 본격적인 시장 안착과 수익 창출에 이르기 전 자금 부족과 수요 부진 등으로 중소·벤처 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시기를 뜻한다.

성낙철 수소에너지네트워크(하이넷) 전략기획실 실장이 지난달 11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하이넷 본사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호경 기자

성낙철 수소에너지네트워크(하이넷) 전략기획실 실장이 지난달 11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하이넷 본사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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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넷은 정부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한 2019년 출범한 민관 협력 특수목적법인(SPC)이자 수소전문기업이다. 한국가스공사와 현대자동차 등 13개사가 1350억원을 출자해 수소전기차 보급에 앞서 충전 인프라를 먼저 구축하는 '마중물' 역할을 맡았다.


처음부터 적자를 감수한 투자였다. 차량이 많지 않은 초기에는 충전소를 운영할수록 손실이 나더라도 인프라가 먼저 깔리면 수소차 보급이 늘고, 다시 충전소 가동률이 높아져 수익성을 확보하는 선순환의 구조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이넷은 사업계획상 적자 구간을 7년으로 예상했고 2026년께면 자생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설립 7년 반이 지난 지금, 상황은 기대와 매우 다르다. 하이넷이 전국에서 운영하는 수소충전소 59곳 가운데 손익분기점에 그나마 근접한 곳은 5곳 안팎이다. 정부는 2019년 로드맵에서 2022년 국내 수소차 6만7000대 보급을 목표로 제시했지만, 실제 보급은 2만9733대에 그쳤다. 충전소를 먼저 깔면 차량이 뒤따를 것이라는 전제가 흔들린 것이다.


성 실장은 하이넷의 흑자전환 시점을 당초 법인 운영기간이 끝나는 2028년을 넘긴 2031년께로 예상한다. 적어도 그 시점까지는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임만규 일진하이솔루스 대표가 지난달 10일 전북 완주테크노밸리 일진하이솔루스 연구·개발(R&D)센터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호경 기자

임만규 일진하이솔루스 대표가 지난달 10일 전북 완주테크노밸리 일진하이솔루스 연구·개발(R&D)센터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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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부품업체들도 별다른 돌파구를 못 찾고 수소차 보급 확대만을 목놓아 기다리는 실정이다. 지난달 10일 전북 완주테크노밸리 일진하이솔루스 연구·개발(R&D)센터에서 만난 임만규 대표는 불투명한 국내 수소차 시장의 현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토로했다.


일진하이솔루스는 수소차의 연료인 수소를 고압으로 저장하는 용기를 만드는 수소전문기업이다. 2014년부터 현대자동차 수소전기차용 고압 수소저장용기를 양산했고 2018년 출시된 넥쏘에 공급도 해왔다. 정부가 수소 모빌리티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던 2021년부터 회사의 무게중심도 수소로 옮겨갔다. 2020년 전체 매출의 49.4%였던 수소사업 비중은 지난해 97.3%까지 높아졌다. 회사의 명운을 수소사업에 건 셈이다.


정부가 수소차 보급의 무게중심을 승용차에서 버스 등 상용차로 옮기자 일진하이솔루스도 사업구조를 바꿨다. 2021년 수소사업 매출의 85.3%였던 승용 수소용기 비중은 지난해 38.5%로 낮아진 반면, 상용차용과 수소운송용 등을 포함한 기타 용기는 14.7%에서 61.5%로 높아졌다.


문제는 상용차 시장 역시 정부 계획대로 빠르게 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정부는 수소승용차 7300대와 수소버스 2000대를 보급할 계획이었지만 실제 보급은 각각 5708대와 1177대에 그쳤다. 달성률은 승용차 78.2%, 버스 58.9%였다. 정부는 올해 수소승용차 6000대, 수소버스 1800대 보급을 목표로 잡았지만, 임 대표는 실제 보급량이 이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진하이솔루스는 결국 2023년 98억원, 2024년 95억원, 지난해 112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시장 확대를 예상해 확보한 설비와 인력은 생산량 감소로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면서 고정비 부담으로 돌아왔다.

"정부 믿고 투자했는데"…끝나지 않는 '죽음의 계곡'[수소, 끊어진 사다리]② 원본보기 아이콘

이 같은 어려움은 일부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12일 정부의 수소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말 수소충전이 포함된 수소유통 기업 833곳 가운데 77.6%는 수소사업 매출이 연간 10억원에 못 미쳤다. 모빌리티가 포함된 수소활용 기업 1261곳도 64.4%가 매출 10억원 미만이었다. 수소산업에 뛰어든 기업이 늘었지만, 상당수가 아직 안정적인 매출 기반을 확보하지 못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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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021년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에서 수소 활용이 수소차와 연료전지 발전에 집중돼 수요 확대와 규모의 경제를 통한 단가 인하에 한계가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에 수소 모빌리티를 다변화하고 발전·산업 등으로 활용처를 넓혀 신규 수요를 창출하고, 이를 생산·공급자의 안정적인 수익으로 연결하는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과제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선순환 구조가 아직 자리 잡지 못하면서, 정부의 초기 계획을 믿고 선제 투자한 기업들은 좀처럼 '죽음의 계곡'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형국이다.


최호경 기자 hocan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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