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90% 중동 의존서 방향 전환
미국산 비중 37%로 최대 공급국
조달처·수송로 다변화 대책 추진

[블룸버그 칼럼] 일본, 세계 석유 판도를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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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요 에너지 소비국 중 일본만큼 에너지 안보가 취약한 나라도 없다. 일본은 자국에서 소비하는 석유 99.9%, 석탄 99.7%, 천연가스 97.8%를 수입할 정도로 해외 의존도가 높다. 이 때문에 일본은 대규모 에너지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공급처를 재검토하며 발 빠르게 대응해왔다. 일본의 움직임이 세계 에너지 시장을 가늠하는 글로벌 선행 지표 역할을 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번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분쟁으로 찾아온 에너지 위기 속에서 일본이 보내는 신호는 무엇일까. 바로 중동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19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에너지 안보의 취약성을 실감한 나라다. 그러나 이후에도 중동을 주요 원유 공급처로 삼으며 원유 수입의 90% 이상을 이 지역에 의존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일본 내부에서도 이는 잘못된 선택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나카 노부오 전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도 이런 중동 의존 정책을 '일본의 실수'라고 평가한 바 있다.


현재 일본 정부는 중동에만 의존했던 과거의 정책 실패를 바로잡기 위해 조달처와 수송 경로의 다변화에 힘쓰고 있다. 내각에서 구체적인 수치나 목표는 아직 제시하지 않았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반복되는 에너지 공급 불안과 제약으로 일본의 경제성장이 가로막히는 구조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현재 관련 계획이 논의되고 있으며, 구체적인 원유 수입 목표와 재정 지원 방안을 담은 대책이 연내 발표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일본은 이란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수입처를 바꾸는 중이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최신 통계인 지난 7월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최대 공급국은 중동에서 미국으로 변화했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은 일본 전체 석유 수입의 37%를 차지했다. 이제 워싱턴이 도쿄의 최대 원유 공급처가 된 것이다.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지역의 비중도 3%에 달했다.


특히 미국이 일본의 최대 석유 공급국으로 올라선 것은 미국의 '셰일 혁명(기술 혁신으로 미국 에너지 생산량이 급증한 현상)'과 이란 전쟁이 세계 원유 시장에 가져온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동 중심의 기존 원유 공급 구조가 흔들리는 가운데, 미국이 새로운 대체 공급처로 부상하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중동 정세 악화로 일시적으로 생긴 수입 비중의 변화를 장기적인 공급 구조로 정착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을 돌아보면 일본은 국가 안보가 위협받는다고 판단할 경우 에너지 소비 구조까지 과감하게 바꿀 수 있는 나라다. 1970년대 후반 일본의 하루 석유 소비량은 550만 배럴을 웃돌았으며, 전체 전력의 60% 이상을 원유와 중유를 태워 생산했다. 이후 에너지원을 석탄과 원자력, 액화천연가스(LNG)로 전환하면서 발전 부문에서 석유를 사실상 퇴출했다. 그 결과 2025년 일본의 하루 석유 소비량은 300만 배럴 아래로 떨어져 55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제 일본이 주목해야 할 분야는 수송 부문이다. 과거에는 전력 생산 부문에서 석유 의존도를 대폭 낮췄다면 다음 목표는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바로 자동차 연료 소비를 줄여 원유 수요 자체를 낮추는 것이다. 일본은 하이브리드 자동차 보급을 통해 지난 20년간 휘발유 소비량을 절반가량 줄이는 것에 성공했다. 도요타자동차는 최초의 양산형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프리우스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순수 전기차(EV) 보급에서는 여전히 뒤처져 있다. 하이브리드 기술을 먼저 개발한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중국 업체들만큼 적극적으로 EV 개발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 4위 자동차 시장인 일본에서 순수 전기차가 신차 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에 불과하다. 유럽 평균인 28%를 크게 밑돌 뿐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보다도 낮다. IEA는 높은 아파트 거주 비중과 개인 주차 공간 및 충전 인프라 부족 등을 일본의 전기차 보급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했다. 따라서 일본 정부는 원유 수입처를 다변화하는 동시에 전기차 보급 확대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일본의 이런 변화는 궁극적으로는 세계 석유 시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이 중동산 원유 의존도를 낮추면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비슷하게 움직이려 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특정 지역의 원유 수입 비중을 전체의 50%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현재 한국의 원유 수입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75%를 웃돈다. 인도 역시 이란 전쟁 이전부터 원유 수입처 다변화를 모색해 왔다.


세계 석유 시장은 한 국가가 새로운 공급처를 확보하면 기존 구매국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제로섬 구조다. 일본 역시 중동산 원유 의존도를 낮추는 과정에서 서아프리카와 미주 지역 등으로 수입처를 확대해야 한다. 이들 지역은 전통적으로 유럽 정유사들이 원유를 조달해 온 시장인 만큼, 일본과 기존 구매국 간의 경쟁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반대로 중동 산유국들은 새로운 구매자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문제는 과연 어느 나라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중동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려 하겠냐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선뜻 떠오르는 나라가 없다.


물론 이는 일본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니다. 다만 일본의 선택이 세계 석유 지도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비에르 블라스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니스트


이 글은 블룸버그의 칼럼 'Japan Could Redraw the Global Oil Map'을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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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블룸버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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