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은행장을 뽑나]①'제왕적 회장' 견제에…세지는 이사회 입김
신한·하나 이어 KB·우리도 9월 내 인선 절차 착수
5대 은행장 선임 레이스 본격화
금감원, 자회사 임추위 실질적 역할 주문…'제왕적 회장' 견제
지주 인사 기능 약화·사외이사 영향력 비대 우려도
추석 연휴가 끝나면서 연말 임기가 일제히 만료되는 5대 은행장 선임 레이스가 본격화한다. 금융당국이 능력 중심 인사와 인선 절차의 독립성 강화를 주문하면서 올해는 누가 은행장이 되느냐만큼 '누가 은행장을 뽑느냐'가 주목된다. '제왕적'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금융지주 회장의 영향력을 견제할 필요가 있지만, 자칫 지주사 체제에서 지주의 인사 기능은 약화하고 자회사인 은행 이사회의 입김만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과 우리금융은 늦어도 내일 안으로 은행장 등 자회사 최고경영자(CEO) 선임 절차에 착수할 예정이다. 임기 만료 최소 3개월 전 CEO 승계 절차를 시작하도록 한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모범관행에 따른 것으로,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은 이미 인선 절차에 들어갔다.
주요 변수로는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가 꼽힌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추석 연휴 직전 8대 금융지주 회장을 금감원으로 소집해 계파·친소 관계를 배제하고 능력에 기반한 자회사 CEO 선임을 주문했다. 특히 지주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가 은행 등 자회사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에 CEO 상시 후보군 등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후보 평가 과정에서 임추위원의 의견을 반영하는 등 임추위의 실질적인 역할을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은행 임추위에 후보 추천권을 부여하라고 요구한 지 일주일여 만에 승계 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지주 회장이 자신과 가까운 인사를 사외이사로 앉혀 '참호'를 구축하고 자회사 CEO 인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후보 발굴과 검증이 형식적으로 이뤄진다는 금융당국의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퇴임 이후에도 자신이 선택한 후임자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른바 '상왕'식 경영에 대한 우려도 이런 인식과 맞닿아 있다. 자회사 임추위가 있어도 지주 차원에서 사실상 낙점한 후보를 받아들이는 데 그쳤다는 지적도 있었다.
주요 지주는 금감원 요구에 맞춰 자회사 임추위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CEO 인선 절차를 속속 손질하고 있다. 이번 주요 은행장 인사는 달라진 선임 절차가 실제 인사 관행의 변화로 이어질지를 보여줄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지주 회장의 과도한 권한을 견제하는 것과 지주와 자회사 이사회 간 인사 권한을 조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국내 대부분 은행은 금융지주가 지분 100%를 보유한 완전 자회사다. 지주 차원에서 그룹 전략을 수립하고 자본과 리스크를 관리하며 경영 성과에 책임을 지는 만큼 핵심 자회사 경영진 선임에도 지주의 일정한 역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은행은 그룹 내 비중이 가장 큰 핵심 자회사인 만큼 지주가 세운 경영 방향을 공유할 수 있는 인사를 CEO로 선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현실론도 적지 않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주와 은행 이사회가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것 자체를 문제로 보긴 어렵다"며 "지주 회장은 권한을 바탕으로 그룹의 경영 방향을 정하지만 이를 실행하는 건 은행장인 만큼 회장이 손발을 맞출 은행장을 선호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이어 "문제는 지주의 목소리가 회장 한 사람의 목소리가 되는 것"이라며 "공식적인 절차 밖에서 회장이 개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까지 제도적으로 차단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은행 임추위의 권한을 강화한다고 실질적인 독립성이 담보되는지도 미지수다. 후보 추천권을 부여하고 외부 컨설팅 업체나 헤드헌터 등을 통해 후보군을 넓힌다고 해도, 은행 임추위가 후보를 추천한 뒤 지주 자추위가 최종 후보를 정하는 기본 구조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CEO 후보를 은행에서 추천하나 지주에서 추천하나 외부 컨설팅이나 헤드헌터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후보가 결정되는 상황에서 절차만 늘어나는 요식행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반대로 은행 임추위의 권한을 계속 강화하면 사외이사의 인사 영향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최근 KB금융의 차기 회장 인선에서도 양종희 현 회장이 연임에 실패하는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오면서 사외이사의 영향력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은행장 후보의 발굴·검증·추천 권한이 커지는 만큼 CEO 후보군에 포함된 인사들이 임추위원인 사외이사와의 관계 관리에 치중하는 등 또 다른 형태의 '줄서기'가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금융권 사외이사는 겸직이 제한돼 후보군 자체가 넓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의 인사 권한까지 커질 경우 전문성과 독립성을 어떻게 검증할지, 인사 결정에 따른 책임을 어떻게 물을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결국 회장 개인에게 쏠린 영향력을 견제하는 것과 지주 자체의 인사·승계 기능을 제한하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자회사 이사회의 독립성을 어느 수준까지 보장할지와 지주가 그룹 전체 인재를 육성·배치하는 기능을 어떻게 조화시킬지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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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지주 자회사의 바람직한 승계 구조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논의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금융당국이 이를 일률적으로 구체화하고 정형화하는 건 옳지도, 현실적으로 쉽지도 않다"며 "결국 경영진은 성과로 평가받는다는 원칙 아래 투명하고 공정한 승계가 금융산업의 문화와 관행으로 자리 잡도록 시간을 두고 정착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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