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마음건강, 정확한 진단이 우선
대학 자율 맡길 게 아니라 정부 지원 필요
'정책 액티비즘' 벗어나 성과까지 공개해야
"지금의 교육정책은 축구 경기를 하면서 몇 골을 넣었는지 집계하지 않고 열심히 뛰라고만 하는 것 같다."
고영선 한국교육개발원장(KEDI)은 1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생을 비롯한 학생들의 마음건강 위기에 대응하려면 무엇보다 정확한 데이터부터 구축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마음건강 지표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악화되고 있는지 정확하게 진단해야 그에 맞는 예방책도 낼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2024년 KEDI 원장에 취임한 고 원장은 첫 일성으로 "선험적 믿음과 주관적 판단이 아닌, 실증적 근거에 따라 정책이 수립되도록 지원하겠다"고 했을 정도로 교육의 '과학적 데이터'를 중시한다.
데이터 공백에 비공개까지 문제
그가 대학생 마음건강 문제에서도 가장 먼저 지적한 것은 정책의 부재보다 '데이터의 부재'였다. 정부와 교육청은 그동안 학교에 상담·지원 인력을 배치하고 사회정서역량 관련 조사와 각종 마음건강 사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고 원장은 정책 시행 전후 학생들의 우울·불안이나 사회정서 상태가 실제로 어떻게 달라졌는지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은 충분하지 않았다고 했다.
고 원장은 "사업을 시행한다는 것만 알리는 데서 끝날 게 아니라 그에 따른 성과(결과)까지 공개하고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교육당국의 데이터 부재가 비단 대학생 마음건강 뿐 아니라 각종 사업에 걸친 전반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는 사업은 많지만, 정작 성과나 결과에 대한 데이터는 부족하다"며 "개인정보 등 민감한 부분을 제외하고 연구자들이 정책 분석에 필요한 수준에서 데이터를 확보, 활용할 수 있는 체계는 구축돼야 한다"고 했다.
KEDI나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등이 보유한 인프라를 활용하는 방안도 언급했다. 그는 "교육계에서는 평등이라는 가치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데이터 공개를 꺼리는 측면이 강하다"며 "하지만 불평등한 현실을 직시하고 진단할 줄 알아야 불리한 여건에 있는 학교나 학생에게 어떤 정책이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낼 수 있다"고 했다. 고 원장은 이를 정책의 '러닝 바이 두잉(learning by doing)'이라고 표현하면서 "지금처럼 모든 것을 감춰두는 상황에서는 정책을 계속 개선해 나가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대책부터 내놓는 '정책 액티비즘' 벗어나야
고 원장은 데이터에 대한 평가 없이 새로운 대책부터 내놓고 보는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이 정책을 지나치게 활발하게 만들어내는, 이른바 '정책 액티비즘(policy activism)' 성향이 짙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를 인용하며 "새 정책만 추가하는 데에 급급하기보다, 기존의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정책의 효과성부터 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고 원장은 "사회적 이슈가 되면 부처는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력에 노출되고 길어야 2~3개월 만에 정책을 만들어내는 패턴이 있다"며 "교육부는 마음만 먹으면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상당히 많은 만큼 새로운 정책을 계속 만들어내기보다 기존 정책을 점검하고 분석·평가해 발전시키는 데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데이터의 공백이 학생 마음건강 문제에서 더욱 치명적이라고 봤다. 위기의 징후가 언제 시작되고 어떻게 누적되는지를 파악하려면 초·중·고에서 대학, 나아가 노동시장 진입 이후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단절된 마음건강 데이터…'연결고리' 필요
고 원장은 대학생 정신건강에 대해서도 정부 차원의 지원과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봤다. 현재 대학 학생상담센터들의 협의체가 관련 실태조사를 하고 있지만 자발적인 노력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만큼 정부 지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더 나아가 대학을 졸업한 청년과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청년까지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향후 KEDI 차원에서도 학생 마음건강 문제를 보다 체계적으로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고 원장은 "KEDI에도 사회정서 분야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있는 만큼 이 문제에 체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학생들의 사회정서역량과 마음건강을 어떻게 연구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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