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뻥 뚫리는 삭힌 홍어, 먹갈치가 꼭 정답은 아니다"…직접 여행 가보니 보이는 목포의 '앞장면'[디깅 트래블]
'목포·신안 일주일 살기' 따라 2박3일
위판장·선상낚시·홍마카세부터 700년 전 신안선까지
700년 전 신안선·근대항구 골목 따라가니 보인 '바다가 만든 도시'
국도 1·2호선도 여기서 출발했다…한반도 '끝'에서 발견한 기점
먹거리와 근대도시를 함께 만든 서남해 바닷길을 걷다
홍어는 대개 코로 먼저 만난다. 목포에서는 순서가 거꾸로였다.
목포 홍어 전문점 ‘조아홍’에서 흑산도 홍어 한 마리를 통째로 올려놓고 해체 과정을 설명한 뒤 직접 시연하는 정태연 대표. 홍어를 먹기 전에 한 마리의 생선이 한 접시가 되는 과정을 먼저 보여준다. 김희윤 기자
넓적한 흑산도 홍어 한 마리가 도마를 거의 다 차지했다. 정태연 조아홍 대표가 칼을 넣었다. 날개를 떼고 살을 가르고 내장을 꺼냈다. 칼이 몇 번 오가자 '홍어'라는 한 단어였던 생선에 아홉 가지 부위와 이름이 생겼다. 그날 아침 흑산도수협 위판을 거친 생홍어였다.
재미있는 것은 냄새가 별로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홍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알싸한 암모니아 향보다 먼저 오는 건 쫀득한 살의 감촉이다. '홍어를 먹을 줄 아느냐'는 질문도 조금 머쓱해진다. 강하게 삭힌 홍어를 참아내는 일이 언제부터 미식의 용기를 재는 시험이 됐을까.
정 대표는 흑산도 출신으로 홍어썰기학교를 거쳤다. 지금은 한 마리를 눈앞에서 해체하고 부위와 먹는 법을 설명한 뒤 곧바로 맛보게 하는 '홍마카세'를 운영한다. 익숙한 지역음식에 새 이름만 붙인 것은 아니다. 소비자가 좀처럼 보지 못하던 '접시 이전의 홍어'를 상품으로 만든 셈이다.
돌이켜보니 이번 목포 여행에는 이런 장면이 자꾸 나왔다. 관광객은 보통 결과물을 소비한다. 회는 이미 썰려 있고, 빵은 진열대에 있고, 유물은 이름표를 단 채 유리장 안에 들어 있다. 그 앞의 노동은 감쪽같이 사라진다.
목포는 그 앞 장면을 꽤 많이 남겨둔 도시였다. 북항 위판장에서는 냄새보다 소리가 먼저 달려들었다. 얼음을 퍼붓는 소리, 상자가 끌리는 소리, 젖은 바닥을 밟는 장화 소리. 녹색 깔판 위에는 바다에서 올라온 생선들이 크기별로 누웠다. 얼음이 녹은 물은 바닥을 타고 흘렀고 그 사이를 사람들이 바쁘게 오갔다.
여행지 '수산시장'이라고 하면 좌판과 흥정을 떠올리기 쉽지만 위판장은 아직 쇼핑 이전의 장소다. 생선이 상품이 되는 중간 지점이다. 물고기는 여기서 종류와 크기로 나뉘고 값이 붙는다. 오늘 저녁 누군가의 갈치구이가 될 놈도 이 단계에서는 그저 경매를 기다리는 물건이다.
'목포는 맛의 도시'라는 소개는 그래서 절반만 맞는다.
맛있는 것을 많이 먹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 음식이 어디서 와서 어떤 손을 거쳐 접시가 되는지가 아직 눈앞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목포 앞바다 선상 갈치낚시에서 기자가 갓 낚아 올린 갈치를 직접 들고 포즈를 취했다. 집어등 아래 모습을 드러낸 갈치는 물 밖에서도 은빛 몸을 번쩍였다. 김희윤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몇 시간 뒤에는 그 과정을 한 단계 더 거슬러 올라갔다. 아예 바다로 나갔다. 배가 항구를 빠져나갈 때 하늘은 아직 붉었다. 낚시 포인트에 닿아 채비를 마칠 즈음, 바다는 먼저 밤이 됐다. 집어등을 켜자 검은 물 한가운데만 형광빛처럼 밝아졌다. 사람들이 난간을 따라 서서 그 좁은 빛을 내려다봤다.
낚싯대 끝이 두어 번 툭툭거렸다. 릴을 감는다. 한참 아래에서 가느다란 빛 하나가 올라왔다. 수면을 깨고 나온 순간에야 그것이 갈치라는 걸 알았다. 마트 냉장고에 얌전히 누운 갈치와는 꽤 다른 물건이었다. 몸을 뒤틀 때마다 금속처럼 번쩍였다.
목포 앞바다 선상 갈치낚시 체험에서 갓 잡은 갈치를 즉석에서 손질해 회무침을 만들고 있다. 몇 분 전 바다에서 올라온 갈치가 곧바로 한 접시 음식이 되는 순간이다. 김희윤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초보자도 크게 겁낼 일은 없었다. 낚싯대와 미끼가 준비돼 있고 줄을 내리는 법도 선상에서 알려줬다. 이날 바다도 잔잔했다. 갈치가 수면 가까이 붙기 시작하자 갈매기들이 배 주변으로 몰렸다. 사람은 낚싯줄을, 갈매기는 바닷물을 내려다봤다. 도구만 달랐지 저녁 메뉴는 같았다.
더 재미있었던 건 잡은 다음이다. 갈치 일부가 곧장 조리대로 갔다. 칼이 지나가고, 살을 썰고, 채소와 양념을 버무렸다. 옆에서는 라면이 끓었다. 조금 전 낚싯줄 끝에서 몸을 비틀던 놈을 배 위에서 회무침으로 먹었다. 신선함은 이 배에서는 형용사가 아니었다. 경과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꽤 짧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목포는 훌륭한 수산도시 여행이다.
그런데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수중유산박물관에 들어가면 이야기가 갑자기 700년쯤 길어진다. 올해 한국 수중발굴 50년을 맞아 특별전 '바다를 건넌 나무, 자단'이 열리고 있다. 전시의 주인공은 청자도, 금붙이도 아니다. 시커멓고 투박한 나무토막들이다.
1323년 중국에서 일본으로 가다 신안 앞바다에 침몰한 무역선, 신안선에 실렸던 자단목이다. 1975년 어부의 그물에 중국 도자기가 걸려 올라온 것이 발단이었다. 이듬해부터 1984년까지 이어진 발굴에서 중국 동전 28t, 자단목 1100점, 도자기와 각종 공예품 약 2만7600점 등이 나왔다. 한 어부의 그물이 결과적으로 한국 수중고고학의 시작을 건져 올린 셈이다.
자단목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또 다른 것이 보인다. '천육(天六)' '황오(黃五)' 같은 한자와 숫자, 원나라 공식 문자인 파스파 문자, 일본 문자와 여러 기호가 나무에 남아 있다. 최근 연구에서 이 표식들이 화물을 구분하고 소유자·수령자 등을 식별하기 위한 물류 정보였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천자문 글자에 숫자를 붙여 화물을 분류하기도 했다. 요즘 말로 하면 700년 전의 물류 코드다. 그 순간 오전의 위판장이 겹쳐졌다.
자단목 표면에 새겨진 한자와 기호. 국립해양유산연구소 특별전 ‘자단, 바다를 건넌 나무’에서는 이런 표식을 통해 14세기 동아시아 해상교역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김희윤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생선 앞엔 번호표가 있었고, 700년 전 자단목에는 글자와 기호가 있었다. 물론 같은 제도는 아니다. 다만 바다를 건너온 물건은 어느 시대든 이름을 붙이고, 나누고, 주인을 찾아줘야 했다. 항구는 배가 닿는 곳이기 전에 물건의 상태가 바뀌는 곳인지도 모른다. 바다의 것이 육지의 상품이 되고, 먼 나라의 화물이 어느 상인의 몫이 된다. 그 과정이 쌓이면 도시가 된다.
목포를 흔히 한반도 남서쪽 끝이라고 부른다. 원도심에서 국도 1·2호선 기점 기념비를 만나면 그 표현이 조금 민망해진다. 근대적 도로망이 만들어지던 시절 국도 1호선은 목포에서 신의주로, 2호선은 목포에서 부산 쪽으로 뻗었다. 1호선은 1906년 공사를 시작해 1911년 개통했다. 이후 노선과 기점은 바뀌었지만 목포가 한국 근대 도로망의 중요한 출발점이었다는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다. 끝이면서 시작이었던 셈이다.
1897년 개항한 목포는 항구를 통해 물건과 사람이 몰려들며 급격히 커졌다. 1920년대 기록에는 면화가 해안에 산처럼 쌓이고 건축이 잇따랐다는 묘사가 남아 있다. 호남의 물산이 모이는 항구의 번영은 동시에 식민지 수탈의 구조와 맞물려 있었다. 지금 목포근대역사관 1관으로 쓰이는 옛 일본영사관과 2관인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이 그 양면을 한 골목에서 보여준다. 목포는 1897년 10월1일 개항했고, 이후 도로·철도와 항만을 축으로 근대도시의 골격을 갖췄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거리에서 열린 ‘2026 전남광주 아트페스티벌 전광섞화’ 현장. 오래된 골목과 유휴공간 곳곳에 전시·공연·체험 프로그램이 펼쳐지며 시민과 관광객이 거리를 오가고 있다. 김희윤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그래서 근대역사문화거리는 건물 몇 채를 보는 관광지가 아니라 항구가 도시로 변한 흔적을 읽는 곳에 가깝다. 목포는 요즘 그 오래된 골격에 새 용도를 넣고 있다. 과거 정미소였던 공간을 활용한 송자르트에는 이제 커피 냄새가 난다. 오래된 생활도구와 그림, 포스터 사이에 빵이 놓이고 신안 소금과 지역 무화과 같은 재료가 메뉴로 들어간다. 낡은 공간을 전부 새것처럼 고치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오래된 도시를 관광지로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깨끗하게 복원한 다음 설명판을 붙이는 것이다. 가장 지루해지는 방법도 종종 그것이다. 사람이 다시 쓰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미소가 카페가 되고, 생선 손질이 공연이 되고, 한때 바다 밑의 화물이었던 자단목이 700년 전 국제교역을 설명한다.
목포 관광이 신선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과거를 진열하는 대신, 과거에 있던 기능을 지금의 경험으로 바꾸는 것. 목포에서 밤을 두 번 보냈다. 첫날 밤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갈치의 입질을 놓칠까 낚싯대 끝과 검은 수면을 쳐다봤다. 다음 날 평화광장에서는 반대였다.
해상W쇼의 음악이 시작되고 바다분수 뒤로 불꽃이 올라가자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같은 바다를 하루 사이 정반대 자세로 봤다. 낮에 해상케이블카에 올라가면 유달산과 목포항, 고하도와 섬들이 한꺼번에 내려다보인다. 갓바위 앞에서는 바람과 파도가 깎은 기묘한 암석을 본다. 이른바 '볼거리'로만 따지자면 이런 장면들이 훨씬 목포답게 사진에 찍힌다.
돌아와서 오래 남은 것은 이상하게도 전망이 아니었다. 젖은 위판장 바닥. 갈치가 물 밖으로 튀어나오던 찰나. 홍어 살 사이로 지나가던 칼끝. 자단목에 700년 동안 남아 있던 몇 글자. 모두 무언가가 완성되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갈치배가 항구로 돌아올 때 목포대교 불빛이 검은 물 위에서 길게 흔들렸다. 조금 전 그 물속에서 저녁을 건졌고, 다음 날에는 같은 서남해 바다가 700년 된 무역선을 품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목포를 '바다가 아름다운 도시'라고만 설명하면 중요한 것을 하나 빼먹는다. 이곳의 바다는 오랫동안 일했다. 물고기를 먹였고, 물건을 실어 날랐고, 길을 만들었고, 도시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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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목포가 관광으로 보여줘야 할 것도 어쩌면 그 바다 자체가 아니다. 바다가 도시가 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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