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거래의 경제학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무엇이고, 그 경계는 누가 정하는가. 201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시장 설계'의 개척자인 앨빈 로스는 경제학이 가장 다루기 껄끄러워하는 장소로 들어간다. 성매매와 대리모, 입양, 고금리 대출과 재난 때의 폭리, 마약, 의료조력사망, 백신 임상시험, 혈액과 신장까지. 당사자끼리는 원하지만 사회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막아서는 거래를 그는 '혐오(repugnance)'라는 개념으로 묶는다. 특히 돈을 주고 신장을 사는 것은 대부분 국가에서 금지되지만 장기 부족은 계속되고, 금지된 거래가 지하로 밀려날수록 참여자가 오히려 범죄와 위험에 노출된다는 역설은 이 책의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렇다고 로스가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더 날카로운 질문은 우리의 도덕적 직관과 실제 피해가 늘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가에 있다. 한때 범죄였던 동성 간 성관계와 인종 간 결혼의 규범이 바뀌었듯 혐오에는 역사성이 있고, 반대로 거래를 허용했을 때 약자 착취가 커질 가능성도 따져야 한다. 금주법과 마약 규제, 코로나19 초기의 가격 폭등 사례처럼 '금지'가 반드시 보호를 뜻하지 않는다는 대목을 지나면 시장과 도덕을 단순한 적대 관계로 놓기 어려워진다. 경제학이 가격을 계산하는 학문이라면, 이 책은 무엇에 아예 가격을 붙이지 못하게 할 것인지까지도 경제학의 질문이라고 밀어붙인다. 불편해서 피했던 거래일수록 판단의 근거를 더 정확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468쪽의 도발이다. (앨빈 로스 지음ㅣ이경식 옮김ㅣ생각의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
50여 년 동안 11권의 '문명 이야기'를 써온 윌 듀런트와 에어리얼 듀런트가 마지막에 남긴 것은 200쪽짜리 얇은 책이었다. 지리와 생물학에서 종족, 성격, 도덕, 종교, 경제, 사회주의, 정치체제, 전쟁을 거쳐 마지막 질문 '진보는 실재하는가?'까지, 수천 년의 역사를 열두어 개의 렌즈로 압축한다. 첫 장 제목이 '망설임'인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저자들은 1만 년을 몇백 쪽의 결론으로 밀어 넣는 일 자체가 위험하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위험을 감수한다. 역사가 인간에게 처음 가르치는 것이 승리의 법칙이 아니라 '겸손'이라는 결론도 이 거대한 압축에서 나온다.
읽는 내내 감탄과 반론이 함께 생긴다. 전쟁이 기록된 역사에서 거의 상수였다는 진단, 문명은 여러 집단의 협동이 축적된 공동 유산이라는 통찰은 여전히 힘이 있다. 반면 생물학적 경쟁을 인간 사회로 곧장 옮기거나 불평등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는 시선, '종족'을 다루는 일부 언어는 오늘의 독자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바로 그 낡음까지 포함해 읽을 때 이 책은 더 흥미로워진다. 1968년 퓰리처상을 받은 부부 역사학자가 인간 본성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욕망과 공포, 경쟁과 협력은 여전히 뉴스의 얼굴을 바꿔가며 되풀이된다. 역사는 정답지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처음 겪는다고 믿는 일이 얼마나 자주 이미 다른 이름으로 일어났는지를 보여준다. (윌 듀런트·에어리얼 듀런트 지음ㅣ안인희 옮김ㅣ돌베개)
서사경영
전략회의가 지루한 이유는 숫자가 많아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구스노키 겐은 목표 매출, 고객 수, 제품 사양, 유통 계획을 빼곡히 적어도 그것들이 "왜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되는가"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전략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에게 좋은 전략은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이야기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이 왜 거점 공항을 포기했는지, 스타벅스가 왜 직영을 고집하며 '제3의 장소'를 만들었는지, 아마존의 플라이휠이 어떻게 구성 요소를 서로 밀어주는지를 따라가며 전략을 콘셉트·구성 요소·크리티컬 코어·경쟁우위·일관성의 '5C'로 해부한다. 2010년 일본 출간 뒤 30만 부 이상 팔린 책이 15년이 지나 다시 번역된 데는 유행을 덜 타는 이유가 있다.
여기서 '스토리'는 브랜드에 그럴듯한 서사를 입히는 마케팅 기법이 아니다. 남들이 보기엔 비합리적인 선택 하나가 다른 요소들과 맞물려 전체적으로 강한 합리성을 만드는 구조가 핵심이다. 저자가 '크리티컬 코어'라 부르는 이 지점 때문에 경쟁사는 부분만 따라 할수록 오히려 원래 기업과 더 멀어질 수 있다. 중고차업체 걸리버의 부사장이 슬라이드 한 장 없이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되고…"라고 풀어낸 전략에서 저자가 흥분했다는 일화도 같은 이야기다. 기업 사례 일부에는 세월이 묻지만, 전략을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왜 그것들이 서로 이어져 돈을 버는가'로 보라는 요구는 여전히 날카롭다. 결국 좋은 전략은 보고서 안에서 완벽한 것이 아니라, 조직 안의 사람이 다음 장면을 스스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인과가 살아 있는 이야기다. (구스노키 겐 지음ㅣ이용택 옮김ㅣ21세기북스)
환상 공동체
아이돌을 좋아하는 마음은 왜 '가짜'라는 말을 자주 견뎌야 할까. 맹미선은 그 질문을 뒤집어, 애초에 케이팝이 얼마나 정교하게 환상을 만들고 또 팬들이 그 환상을 얼마나 능동적으로 살아내는지를 들여다본다. 엑소의 초능력자 세계관 같은 콘셉트, 뮤직비디오와 홈마 사진, 버블과 라이브 방송, 콘서트와 팬사인회는 모두 현실에 없는 존재를 꾸며내는 장치이면서 동시에 팬이 실제 감정을 경험하는 통로다. 팬들은 아이돌의 모든 것이 진짜라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화면과 무대 사이의 찰나에 자기 기억과 욕망을 덧붙인다. 국문학·심리학을 공부하고 과학철학·과학기술학을 전공한 저자가 자신의 오랜 '덕질'을 연구자의 언어와 겹쳐놓으면서, 케이팝은 상품이면서 이미지이고 기술이며 하나의 세속적 의례가 된다.
뒤로 갈수록 초점은 아이돌보다 팬들에게 옮겨간다. '실물을 본다'는 경험, 렌즈 너머에서 만들어지는 이미지, 스크린 앞의 공동체,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순례와도 같은 콘서트를 거치며 각자 다른 환상을 품은 사람들이 잠깐 '우리'가 된다. 여기서 공동체는 굳건한 결속보다 느슨하고 잠정적인 동시성에 가깝다. 공연이 끝나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성스러움은 조금씩 벗겨지지만, 함께 움직였던 감각은 남는다. 팬덤을 저항 공동체나 소비 집단 가운데 하나로 깔끔하게 규정하지 않는 점이 좋다. 결국 환상은 현실에서 도망치는 가짜 세계라기보다, 현실을 다시 견디게 만드는 별도의 감각일 수 있다는 쪽으로 책은 조용히 기운다. (맹미선 지음ㅣ돌고래)
환상사회
예전에는 남들이 사는 모습을 가끔 훔쳐봤다. 지금은 눈을 뜨자마자 본다. 성공한 사람의 커리어, 운동으로 빚은 몸, 감각적인 집, 행복한 가족, '나다움'을 완성한 듯한 사람까지 화면에는 언제나 지금의 나보다 한 발 앞선 이미지가 흘러온다. 정지우는 그런 시대의 인간을 '호모 판타즈마'라 부른다. 기 드보르가 말한 '스펙타클 사회'가 대중에게 하나의 이미지를 주입했다면, 알고리즘 시대에는 각자의 취향에 맞춤 제작된 수천 개의 이상이 개인을 포위한다. 몇 초 더 본 영상, 한번 누른 '좋아요'가 취향이 되고 다시 그 취향을 강화하면서, '나 자신이 되라'는 주문은 어느새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나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라는 압박으로 변한다. 저자가 '항시적-초조함'이라 이름 붙인 감각은 포모와 번아웃, 도파민 크래시를 하나의 시대 정서로 묶는다.
진단만 놓고 보면 익숙한 SNS 비판에 가까워질 수 있다. 정지우가 한 걸음 더 나가는 곳은 후반의 '세계-만들기'다. 인생의 구멍을 억지로 메우지 말 것, 완벽함의 거짓을 알아볼 것, SNS를 전시장이 아니라 생산과 연대의 장으로 쓸 것, 하나의 성공 경로보다 여러 개의 삶의 선을 가질 것. 특히 삶을 프로필처럼 관리하자는 대목은 자칫 또 다른 자기계발의 언어처럼 들리지만, 저자가 말하는 프로필은 스펙의 목록보다 한 가지 실패로 전체가 무너지지 않는 '안티프래질'한 삶에 가깝다. 결국 문제는 이미지를 보는 데 있지 않다. 남의 욕망을 구경하느라 자기 시간을 다 써버리는 데 있다. 환상에서 탈출할 수 없다면, 적어도 누구의 환상 안에서 살 것인지는 고를 수 있어야 한다는 책이다. (정지우 지음ㅣ한겨레출판)
에고이스트의 탄생
막스 슈티르너는 국가도, 종교도, 도덕도, 심지어 '인류'라는 말까지 의심했다. 인간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 인간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순간, 그런 관념은 모두 '유령'이 된다고 보았다. 1844년 '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낸 이 독일 철학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격렬한 비판을 받았고 이후 철학사에서도 변방으로 밀려났다. 박홍규는 그에게 붙어버린 '극단적 이기주의자'라는 꼬리표부터 떼어낸다. 슈티르너의 '에고이스트'는 남을 짓밟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람이 아니라, 국가나 교리, 전통이 대신 내려준 삶의 답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사는 '유일자'라는 것이다. 2023년 『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직접 번역했던 저자가 이번에는 생애와 시대, 핵심 개념을 312쪽 안에서 다시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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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박홍규가 슈티르너를 박물관에 세워두지 않는 방식이다. 마르크스와 니체, 아나키즘을 거쳐 푸코의 자기돌봄과 불교의 무아사상까지 나란히 놓으며 '유일자'라는 말을 지금의 삶으로 끌고 온다. 특히 니체의 초인이 선택된 소수의 인간상을 연상시킨다면, 슈티르너의 유일자는 인간이면 누구나 이미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는 해석이 저자의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다만 슈티르너 자신이 '어떻게 유일자로 살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한계도 저자는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이 끝내 붙잡는 것은 고립된 개인주의가 아니다. 누구의 복제품도 되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를 억압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에고이스트'라는 가장 이기적으로 들리는 말에서 오히려 연대의 조건을 찾는 역설이 이 책의 맛이다. (박홍규 지음ㅣ아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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