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기망 고의 없지만 허위 정보 제공 인정"
하나은행이 영국 부가가치세(VAT) 대출채권 펀드 투자자들에게 남은 투자금을 돌려줘야 한다는 1심 판단이 나왔다. 잘못된 설명을 듣고 가입한 만큼 계약 자체를 무를 수 있다는 이유다. 하나은행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9부(재판장 고승일)는 지난해 12월4일 투자자 10명이 하나은행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하나은행이 원고들에게 1인당 2931만~1억8991만원씩 총 9억54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했다. 항소심은 서울고법 민사18-2부(재판장 박선준 진현민 왕정옥 고법판사)가 맡았다. 다음 변론은 내달 23일이다.
원고들은 2018년 5월~2019년 8월 하나은행 PB 등을 통해 영국 VAT 대출채권에 투자하는 사모펀드 4개에 모두 38억원을 넣었다. 펀드는 영국에서 상업용 부동산을 사는 사람에게 VAT 납부 자금을 빌려주고, 이들이 영국 국세청(HMRC)에서 VAT를 환급받으면 원리금을 회수하는 구조였다. 국내 자산운용사 두 곳이 설정·운용했고, 하나은행이 모두 570억원어치를 판매했다.
펀드는 2020년 6월께부터 환매가 연기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영국 법정관리인 심사 결과 한 펀드의 차주는 투자금을 VAT 대출과 무관한 관계회사 주식 취득,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 등에 담보 없이 빌려줬고, 다른 펀드의 차주는 후순위 담보권만 설정했다. 재판부는 해외 운용사들이 자금을 유용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이는 펀드 운용 과정에서 생긴 문제라고 봤다.
환매가 막히자 하나은행은 2021년 5월 영국 펀드 투자자들에게 투자원금의 50%를 가지급하기로 했다. 원고들은 이후 받은 배상금 등을 포함해 38억원 가운데 약 29억원을 이미 돌려받았다. 이들은 2023년 11월 사기나 착오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한다는 내용증명을 보낸 뒤, 나머지를 부당이득으로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사기를 이유로 한 취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출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가 이 사건 각 계약을 체결할 당시에 기망의 고의를 갖고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이유다. 하나은행이 허위 사실을 알리고 투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는 수사가 진행됐지만, 검찰은 투자금을 가로채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혐의없음 처분을 한 바 있다.
다만 재판부는 하나은행이 투자를 권유하면서 허위 정보를 제공했다고 인정했다. VAT 대출채권 사업의 파이프라인이 확보돼 있고 실효성 있는 안전장치가 있는 것처럼 알렸다는 것이다. 특히 재판부는 펀드 자금을 빌려 간 영국 현지 회사가 2017년 1월 설립된 뒤 1년 동안 플랫폼을 개발하고 테스트하는 정도의 규모에 그쳤다고 봤다. 외부감사 대상이 아닐 만큼 작은 회사라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이런 허위 정보로 투자자들의 착오가 유발됐다고 보고 계약 취소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만약 원고들이 그러한 사실을 알았더라면 이 사건 각 펀드에 투자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들의 착오는 이 사건 각 계약의 중요한 부분에 관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하나은행은 재판에서 원고들이 투자 경험과 지식을 갖춘 투자자로서 펀드 구조와 원금 손실 위험을 충분히 설명받고 가입했다고 주장했다. 투자자들이 문제 삼는 사정은 펀드 설정 이후 자산운용사들의 부실 운용에서 비롯된 사후적 문제라는 것이다. 설령 착오가 있었더라도 높은 수익을 기대하고 투자한 투자자들의 중대한 과실 때문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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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투자자들에게서 받은 돈이 곧바로 펀드 재산으로 넘어가 운용사 지시대로 쓰였으므로, 은행에 남아 있는 이익이 없어 돌려줄 것이 없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투자금을 'VAT 대출채권 사업에 투자하는 펀드'에 쓰기로 한 합의가 있었는데, 실제로는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 등에 들어가 그 합의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가 위 판매대금으로 취득한 금전을 원고들의 지시나 원고와의 합의에 따라 사용하거나 지출하였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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