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메가프로젝트 추가 전력수요 38GW…APR1400 27기 규모
팹·AI 데이터센터 24시간 가동
송전망·변전소 확충도 과제
손톱보다 작은 반도체 하나를 만들고 인공지능(AI)을 구동하기 위해 필요한 기반시설은 정반대로 거대해지고 있다. 반도체 공장에서는 수백 단계의 공정을 쉬지 않고 돌려야 하고 AI 데이터센터에서는 수많은 서버와 냉각설비가 24시간 가동된다. 정부가 반도체와 AI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내걸면서 이를 뒷받침할 전력과 용수, 송전망을 얼마나 빠르게 확보하느냐도 산업 경쟁력의 한 축으로 떠올랐다.
25일 산업통상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 등에 따르면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피지컬AI·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에 추가로 필요한 전력은 약 38GW(기가와트)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주력 원전인 APR1400의 설비용량이 한 기당 1.4GW인 점을 고려하면 원전 약 27기에 해당하는 규모다. 원전 27기를 새로 건설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첨단산업 투자가 앞으로 국내 전력수요에 더할 무게를 짐작할 수 있는 숫자다.
정부가 지난 6월 발표한 3대 메가프로젝트는 반도체 생산능력을 대폭 늘리고 전국에 GW급 AI 데이터센터와 피지컬AI 산업거점을 구축하는 것이 골자다. 수도권의 기존 반도체 생산거점을 조기에 완성하는 동시에 서남권에는 반도체 메모리 팹 4기와 첨단 패키징 팹, 충청권에는 HBM·낸드 및 패키징 시설 등을 구축한다. AI 데이터센터도 충청권 2GW, 강원권 2.4GW, 영남권 2GW, 서남권 1GW 등 전국 곳곳에 들어설 예정이다.
첨단산업이 요구하는 38GW…용인만 원전 10기 규모
가장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하는 시설 가운데 하나가 반도체 공장이다. 웨이퍼 위에 회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증착·노광·식각·세정 등 수백 단계의 공정을 반복하고 각 공정마다 대형 제조장비가 돌아간다. 미세먼지를 통제하기 위해 클린룸의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공조설비도 쉬지 않는다.
대표적인 곳이 경기 용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생산시설이 들어서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모두 10개의 팹(Fab·반도체 생산공장)이 들어선다. 이들 시설이 모두 가동되면 필요한 전력은 14.7GW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APR1400 10기 이상의 설비용량과 맞먹는다.
AI 데이터센터도 만만치 않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비롯한 고성능 반도체가 대규모로 투입되면서 서버 자체의 전력소비가 커지고 있다. 서버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한 냉각설비와 전력변환장치도 함께 가동해야 한다. AI 사용량과 데이터센터 규모가 커질수록 필요한 전력도 함께 늘어난다.
문제는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가 필요로 하는 시점과 장소까지 전기를 보내려면 송전선로와 변전소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경우 산단 안에 1GW급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3기를 건설해 초기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다. 하지만 최종 수요 14.7GW를 자체 발전만으로 충당하기는 어렵다. 결국 기존 전력망을 보강하고 동해안과 중부권 등 다른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송전망을 통해 끌어와야 한다.
송전망 건설에는 노선 선정과 주민 의견수렴, 인허가 등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반도체 팹이나 데이터센터가 완공됐더라도 송전선로와 변전소 건설이 뒤처지면 필요한 전력을 제때 공급하지 못할 수 있다. 정부가 첨단산업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발전원 확보와 함께 전력망을 국가 전략자산으로 보고 선제적으로 구축하겠다고 밝힌 배경이다.
공장 짓기 전에 '전깃길'부터…정부도 인프라 선투자
정부도 3대 메가프로젝트의 성패가 기업의 공장 투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보고 전력·용수 인프라를 먼저 확보하는 데 재정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기업이 수백조원을 투자해 공장을 지어도 전기와 물을 제때 공급하지 못하면 생산시설을 계획대로 가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년도 예산안에는 이런 방향이 반영됐다. 정부는 전력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에서 수도권 등 수요지로 전력을 안정적으로 보내기 위해 송전단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에 5724억원을 신규 편성했다. 전력수요가 많은 기업을 계통 여유가 있는 지역으로 유도하기 위한 수요유치형 변전소 구축에도 658억원, 전기품질 안정화 설비에는 360억원을 새로 투입한다. 한국전력공사의 전력망 투자 여력을 보강하기 위한 정부 출자금도 5000억원 편성했다.
전력을 많이 쓰는 시설의 입지를 발전소와 전력망에 맞춰 분산하는 작업도 병행한다. 정부가 공개한 3대 메가프로젝트 투자지도에는 수도권에 집중됐던 첨단산업을 충청·서남·강원·영남권으로 넓히는 구상이 담겼다. AI 데이터센터만 해도 충청권 2GW, 강원권 2.4GW, 영남권 2GW, 서남권 1GW 등 대규모 시설을 전국에 분산 배치한다. 전력수요를 수도권에 계속 쌓은 뒤 송전망을 추가하는 방식만으로는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반도체에 필요한 물도 미리 확보한다. 용인 반도체 산단에는 팔당댐에서 전용 관로를 연결해 하루 31만t의 용수를 우선 공급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서남권과 충청권의 신규 첨단산업 거점에도 용수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구축한다. 내년도 예산안에는 호남권 용수공급 1196억원, 충청권 용수공급 81억원이 신규 반영됐고 수자원공사 출자에도 2500억원이 편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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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최근 3대 메가프로젝트에 따른 전력수요 증가와 관련해 전력을 단순한 에너지가 아닌 '국가 안보자산'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칩이나 AI 데이터센터를 준비하는 과정은 마음먹으면 2~3년이면 할 수 있지만 전력을 준비하는 일은 훨씬 더 오래 걸린다"며 "전력을 단순히 산업의 보조수단이 아니라 국가의 전략과제로 삼고 안보자산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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