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오디세이]⑦현대차가 새만금에서 키우는 꿈…수소, 미래 에너지원이 될 수 있을까
Ⅱ. 기술혁신으로 극복하는 에너지 위기
[르포] 현대차, 재생에너지+수소생산·활용 한 곳에 집약
남동발전은 국내 첫 그린수소 이용 수소전소발전 도전
"전력 수요 유연하게 대응 가능…에너지 안보 자원 역할"
지난 21일 전북 군산에 위치한 새만금 1산업단지 7공구에 들어서니 드넓은 공터가 눈앞에 펼쳐졌다. 2024년 매립이 끝난 이 지역은 57만4000㎡(약 17만3635평) 규모로 축구장 80개 크기에 달한다. 7공구와 맞닿아 있는 8공구도 한창 매립이 진행중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7공구는 내년부터 천지개벽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이 새만금에 9조원을 투자해 AI데이터센터, 로봇제조공장, 수소플랜트를 지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이 새만금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이후 새만금은 활기가 돌고 있다. 1991년 방조제 공사 시작 이후 35년 만에 대대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새만금개발청은 현대차 투자 계획에 맞춰 새만금기본계획도 변경할 계획이다. 새만금개발청이 지난 8월 공개한 기본계획 변경안에 따르면 공장이나 연구시설 등을 지을 수 있는 산업용지는 현재보다 2.1배 늘어난 37.5㎢로 확대된다. 현재 1산단 중심의 산업거점도 4개로 늘어난다.
2.3조 투자, 대규모 태양광·그린수소 생산 시설 건설
무엇보다 큰 변화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구축할 수 있는 에너지 용지가 크게 늘어난다는 점이다. 새만금개발청은 수심이 깊어 매립 비용이 많이 들거나 공항 소음 등으로 토지 활용이 어려운 지역은 매립하지 않고 에너지 용지로 전환할 예정이다. 또 농생명용지 3공구도 에너지 용지로 전환하기로 했다.
새만금개발청이 에너지 용지를 크게 확대하는 것은 현대차의 수소 투자와 관련이 깊다. 현대차는 2027년에 200메가와트(㎿)급 수전해 플랜트를 착공해 그린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어떤 설비가 200㎿급이라면 매시간 200㎿의 전기를 사용하는 규모라는 의미다. 총투자 금액은 1조원이다.
그린수소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해 생산한 수소를 말한다. 제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은 청정에너지다. 그린수소를 생산하기 위한 시설이 바로 수전해 플랜트다.
수전해 플랜트에 필요한 고분자전해질막(PEM) 수전해기는 현대차가 2027년 완공하는 울산 수소연료전지 신공장에서 양산할 계획이다. 수전해는 수소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연료전지의 역반응을 이용하기 때문에 부품을 공용화할 수 있다. 현대차는 90% 이상의 국산화율을 달성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현대차는 새만금에 직접 태양광발전소를 지어 수전해 플랜트에 전기를 공급할 계획이다. 2027년부터 1조3000억원을 투입해 2035년까지 새만금에 기가와트(GW)급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한다. 태양광발전소와 수전해 플랜트를 포함해 그린수소 생산 시설 확보에만 2조3000억원이 들어가는 것이다.
GW급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부지가 필요하다. 통상 1㎾의 태양광을 설치하려면 3평의 토지가 필요하다. 이를 감안하면 1GW의 태양광발전소에는 300만평 (약 9.92km²)의 부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현대차는 육상 및 수상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만금개발청에 따르면 에너지 용지로 전환되는 농생명용지 3공구와 새만금신공항 동쪽 부지, 수상태양광 2단계 부지중 일부가 현대차의 태양광 부지로 활용될 예정이다. 모두 현대차 수소플랜트가 들어설 7공구와 거리가 가깝다.
농생명용지 3공구를 활용하면 0.7GW 규모, 새만금신공항 동쪽 부지는 0.6GW의 태양광발전소를 지을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차가 계획한 GW급 태양광발전소에 얼추 들어맞는다.
재생E 전기로 그린 수소 생산 어떻게 하나
문제는 태양광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어떻게 수전해 플랜트에 공급할 것인지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 현대차가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태양광발전소는 하루에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시간대가 하루 3~4시간에 불과하다. 반면 수전해플랜트는 하루 24시간 전기를 공급받아야 한다. 현대차가 GW급 태양광발전소를 지을 경우 낮 시간에는 수전해 플랜트에서 필요한 용량(200㎿) 이상의 전기를 생산하게 된다. 또 밤에는 태양광 전기를 사용할 수 없어 수전해 플랜트를 가동할 수 없다.
이러한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방식은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치해 낮에 쓰고 남은 잉여전력을 저장했다 밤에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엄청난 비용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직접 전력구매계약(PPA) 방식으로 전기를 공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직접 PPA란 한국전력을 거치지 않고 전기사용자(기업)와 발전사업자(또는 전기공급사업자)가 직접 전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말한다.
직접 PPA라 할지라도 한전의 전력망(계통)과 연계할 수 있다. 태양광 전기를 공급받지 못할 때 한전의 망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때 시간대별 정산이 아닌 월간 균등정산 방식을 선택하면 야간에 이용한 전기도 태양광에서 생산한 전기로 계산할 수 있다. 낮에 생산한 잉여 전력을 밤에 사용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대차가 새만금에 1GW의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고 이 태양광발전소의 이용률이 20%라면, 이 발전소가 한 달에 발전한 총 용량은 144GWh(1GW×720시간×20%)다. 월간 균등정산에서는 해당 월의 발전량 144GWh를 720시간으로 나누므로, 계약상 매시간 200㎿의 태양광 전기를 공급한 것으로 배분할 수 있다. 현대차가 구상한 수전해 플랜트 용량과 딱 맞아떨어진다.
그래도 남아 있는 문제가 있다. 태양광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한전의 전력망에 접속할 수 있는지다. 한전은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급증해 송·변전 인프라의 수용 한계를 넘어서자 전국 205개 변전소를 계통관리변전소로 지정해 2031년까지 접속을 제한하고 있다. 이중 호남지역 변전소가 164개에 달한다. 새만금 지역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에 대해 새만금개발청 관계자는 "현대차의 태양광 발전 설비에 대해서는 계통을 확보해 놓은 상태"라고 전했다.
한국 수소 산업의 시험대
수소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생산으로 끝나지 않는다. 생산한 수소를 어디에 사용할 것이며, 생산과 수요처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전주기 생태계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현대차가 건설하는 200㎿급 수전해 플랜트에서는 연간 3만t의 적지 않은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우선 대규모 수소 수요처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이후 저장 및 운송 인프라도 구축해야 한다.
수소의 수요처는 크게 발전과 수송(모빌리티), 산업용으로 구분된다. 발전은 수소연료전지나 수소터빈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향후 수소환원제철 등 산업용 수요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는 생산된 수소를 트램과 버스 등 모빌리티 분야에 우선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정부가 6.6㎦(약 200만평) 부지에 공사중인 새만금 수변도시에 4000억원을 투자해 AI수소시티도 구현할 계획이다. AI 수소시티에 수전해 플랜트에서 생산한 수소를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현대차의 투자에 대응해 지자체들도 수소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는 지난 14일 '2026 제1회 전북특별자치도 수소위원회'를 개최하고 현대차그룹의 새만금 투자와 연계한 수소산업 생태계 육성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전북도는 그린수소 생산뿐 아니라 저장·운송·활용 분야로 산업 영역을 넓혀 전주기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새만금개발청 관계자는 "부안이 수소도시로 지정돼 실증 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완주에 수소특화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될 예정이어서 새만금과 연계해 수소 생태계를 발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가 새만금에 구축하는 수소 생태계는 우리나라 수소 산업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새만금에서 쌓은 경험을 해외 진출에 활용할 수도 있다. 현대차는 재생에너지부터 수소 생산과 활용이 한곳에 집약된 새만금이 국내 수소 산업 전체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남동발전도 새만금서 수소발전 도전
새만금 1산업단지에서 차로 약 30분 떨어진 곳에 전북 부안군 새만금 3권역(3산단)에서는 또 다른 수소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이곳이 바로 1GW 규모 태양광이 설치될 부지입니다. 지금은 허허벌판이지만 5~6년 뒤에는 천지개벽할 겁니다." 함께 현장을 지켜보던 새만금개발청 관계자가 매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울긋불긋한 염생 식물이 자라고 있는 땅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국 남동발전은 3권역 내 약 300만평 부지에 1GW 규모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고 바로 옆 8만평 부지에 그린수소 생산설비와 수소전소 발전 설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로 수소를 만들어 저장한 뒤 수소 터빈을 통해 다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 생산한 그린수소로 전소발전을 추진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를 위해 남동발전은 지난 8월 새만금개발청과 '새만금 그린에너지 복합단지' 조성을 위한 포괄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새만금개발청은 원래 관광·레저용지였던 새만금 3권역의 일부를 산업용지로 바꿔 수소플랜트를 지을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남동발전이 새만금개발청과 MOU를 체결한 것은 정부의 청정수소발전시장(CHPS) 경쟁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올해 청정수소발전시장 물량을 500GWh로 확정했으며 조만간 구체적인 입찰 계획을 공고할 예정이다. 정부는 국내에서 생산한 그린수소에 대해 가점을 부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남동발전이 올해 청정수소발전시장 입찰에서 선정되지 못할 경우 새만금 수소 투자 계획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새만금개발청 관계자는 "MOU의 지속적인 추진 여부는 남동발전의 입찰 결과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수소는 안보 자원…정부, 정책 일관성 있어야 투자"
우리나라는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20년 세계 최초로 수소법(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며 수소산업 선도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하지만 법 시행(2021년 2월) 이후 5년이 지난 현재 수소 산업은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소 가격은 좀처럼 낮아지지 않고 있으며 저장, 운송 등 산업 생태계도 미완성이다. 우리가 주춤하는 사이 중국과 유럽은 대규모 수소 생산 단지를 구축하며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는 이재명 정부 들어 발전 시장에서 수소의 역할을 대폭 축소했다. 정부는 2040년 석탄발전 폐지 로드맵에 따라 올해부터 청정수소발전 시장에서 석탄-암모니아 혼소 발전을 제외했다. 당초 2025년 3000GWh를 공고했던 청정수소입찰 물량은 올해 500GWh로 쪼그라들었다. 처음 청정수소발전 시장이 개설됐던 2024년 공고 물량 6.5TWh에 비하면 92%가 감소한 것이다. 연료전지 중심의 일반수소 입찰 물량도 1300GWh에서 930GWh로 줄어들었다.
그동안 가장 큰 수소 수요처 역할을 하던 발전 시장이 대폭 줄어들면서 수소 산업계에서는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소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정책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 21일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한국공학한림원 2026 수소경제 대토론회'에 참석한 신승규 현대자동차 부사장은 "기업이 수십 년의 기간이 필요한 기술에 투자하려면 정책도 수십년간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며 "수소가 미래의 에너지원이라는 비전이 정부의 변함없는 '신호'가 있다면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투자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청정수소 생산에 대한 보조금 지급과 해외에서의 다양한 수소 공급처 확보를 주문하고 있다. 박진남 한국수소및신에너지학회장(경일대학교 교수)은 지난 8월 'AI 시대 전력 시스템 대전환과 수소의 역할' 정책 포럼에서 "청정수소 생산 설비에 대해 보조금을 지원하고 해외에 수소 생산기지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동발 에너지 위기와 정부의 메가프로젝트 등으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중요해지는 시점에서 안보 자원으로서의 수소의 역할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이관영 청정수소저장활용전략연구단장은 "수소는 해외의 다양한 곳에서 수급할 수 있고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생산이 가능해 에너지 안보 자원으로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극복하기 위해 초장기 에너지저장장치로서 수소를 활용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관영 단장은 "수소에너지저장장치(H2ESS)는 재생에너지 잉여 전력을 흡수해 송전 혼잡을 완화하고 장주기 유연성을 제공할 수 있다"며 "수소 저장 및 운송 인프라를 활용하면 기존 송전망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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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규 현대차 부사장은 "수소는 AI와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증가하는 전력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청정에너지의 저장·전환·활용을 통해 탄소중립 달성을 지원하는 중요한 에너지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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