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차이킴 대표가 밝힌 의상 작업기
"고증은 출발점…새 시선과 상상력 더해"

넷플릭스 시리즈 '스캔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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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스캔들'을 읽는 또 다른 방법은 색이다. 인물의 감정에 따라 한복 빛깔이 달라진다. 정교한 설계는 김영진 차이킴 대표에게서 나왔다. 영화 '해어화'·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비롯해 오페라, 연극, 판소리 무대의상까지 작업해온 한복 디자이너다.


김 대표는 최근 아시아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스캔들' 대본을 처음 접했을 때 인상주의 작품들이 떠올랐다"고 밝혔다. 조씨 부인(손예진)과 조원(지창욱), 희연(나나)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의 개성이 뚜렷해서였다. 의상에서 색감이 그대로 드러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고.

그는 모네와 르누아르, 마네의 작품 속 인물 표정과 의복 선을 중점적으로 살폈다. 특히 모네의 작품에서 빛에 따른 색의 변화에 주목해, 감정이 고조될수록 한복의 색감도 바뀌도록 설계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스캔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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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회화만 영감을 준 건 아니었다. 작품 속 서민들의 모습과 거리 풍경은 신윤복의 '월하정인', '연소답청', '주유청강', '월야밀회', '야금모행' 등을 참고했다. 김 대표는 "단순히 의상을 재현하기보다 그림 속 인물과 공간의 분위기, 그 안에 흐르는 생동감까지 화면에 담길 수 있는 의상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구상은 캐릭터별 해석으로 구체화됐다. 김 대표는 조씨 부인을 "폐쇄적인 사회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여인"이라며 "자의식이 강하고 무언가 창조하는 것을 좋아하며,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다"고 해석했다. 직접 누에를 치고 비단을 만들 만큼 옷에 대한 감각이 빼어나, 화려함보다 개성과 예술적 감성을 입는 인물로 접근했다. 명주부터 숙고사, 생고사, 생초, 자미사까지 다섯 가지 전통 소재를 의상에 사용했다.


누에 치는 장면을 위해 매화를 손수 수놓은 한복을 별도로 제작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매화는 전통적으로 선비를 상징하는 꽃"이라면서도 "조씨 부인의 대범함과 남다른 관능성을 표현하기에 제격이었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스캔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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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 부인이 예술가라면, 조원은 멋쟁이였다. 김 대표는 신분과 부를 과시하려는 욕망이 커지면서 양태가 확장된 18세기 후반의 갓과 다양한 색으로 천연 염색한 세조대(細絛帶·가느다란 띠)로 조원의 세련된 취향을 표현했다. 방랑자 같은 자유로운 성향은 운문(雲紋·구름 무늬)과 생고사·생초·명주의 가볍게 흩날리는 소재감으로 부각했다.


희연은 청상과부라는 설정에 맞게 정적이고 담백하면서도 깊이가 느껴지는 인물로 드러나길 바랐다. 삼베와 무명, 광목으로 담백한 소재감을 살리고, 모노톤으로 절제된 인상을 만들었다. 김 대표는 "여러 겹의 속옷에 각각 다른 소재를 사용해 처연함과 슬픈 서정성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연초전을 운영하는 소옥(신윤하)의 어머니 분희(한선화)는 다양한 문물을 받아들이는 화려하고 트렌디한 인물로 해석했다. 명주에 자수를 놓되 전통 방식 대신 주칠장의 문양 도식을 빌려, 저고리 자체가 화려한 주칠 자개장처럼 보이도록 했다. 김 대표는 "극 중 가장 많은 문양을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김영진 차이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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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양한 소재와 문양을 색으로 관통했다. "색은 인물의 성격과 감정 변화를 가장 직관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는 요소"라며 "기존 사극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색감에서 벗어나, 캐릭터와 감정선을 새로운 색의 언어로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주요 인물들에게 각기 다른 대표색을 부여했다. 조씨 부인은 녹색 계열, 조원은 청색 계열이다. 희연은 창호지 색과 소색(素色·염색하지 않은 원단 그대로의 흰빛을 띤 색), 삼베 색을 기본으로 하지만, 상복을 벗은 뒤에는 도라지꽃과 들국화, 연꽃을 연상시키는 색으로 바뀐다.


분희는 홍화, 소목, 치자황, 괴화색에 은색, 금색, 흑색을 더한 붉은 자주 계열이다. 소옥은 모란색과 홍화색처럼 채도와 명도가 높은 색이 중심이고, 정경부인(강지은)은 소목색과 나무색, 황련색, 연지희색, 밤색, 감색 계열이다. 인호(강찬희)는 연지분홍과 담홍, 옥색처럼 부드러운 색이 주를 이룬다.


넷플릭스 시리즈 '스캔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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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감정선도 색으로 표현됐다. 조씨 부인의 어린 시절인 조윤은 순수하고 활동적이며 창조적이다. 그녀에게 조원을 향한 감정은 이룰 수 없는 것이었고, 이는 점차 욕망으로 굴절되며 내면을 깊고 복잡하게 만들었다. 김 대표는 "색이 맑고 가볍게 시작하지만, 감정이 깊어질수록 점점 짙고 무거워진다"고 설명했다. 조원의 옅은 파란색 또한 조씨 부인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짙어진다.


정교한 설계는 소품에도 적용됐다. 김 대표는 "전통 공예품을 단순히 장식으로 사용하기보다, 그 물건이 가진 시간과 장인의 감각까지 인물의 일부로 연결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시간의 중첩이 느껴지는 모습 그대로 사용해 장인의 예술이 캐릭터의 깊이로 이어지도록 한 것이다.


이 작업에 참여한 장인은 다섯 명이다. 조씨 부인의 노리개는 김 대표가 25년간 소장해온 노미자 서울시무형문화유산 매듭장 보유자의 작품이다. 산호와 비취, 춘천옥이 들어간 장신구로는 김영희 국가무형유산 옥장 보유자와 엄익평 서울시무형문화유산 옥장 보유자의 작품을 사용했다. 조원의 흑립(黑笠)은 박창영 국가무형유산 갓일 보유자가 제작한 것이고, 갓신과 당혜(唐鞋)는 안해표 부산시무형문화유산 화혜장 보유자가 만들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스캔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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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이렇게 공들인 고증이 재현에 머무는 것을 경계했다. "창작자의 시선과 상상이 더해질 때 비로소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진다"며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예로 들었다. 같은 원작이라도 감독과 배우, 의상 감독이 달라질 때 전혀 다른 작품이 나온다고 확신했다.


시대극을 계속 새롭게 제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봤다. 그는 "고증은 창작의 출발점"이라며 "그 위에 새로운 시선과 상상력을 더해 인물과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완성하는 것이 의상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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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표현이 향하는 곳은 해외 시청자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한복이 단순히 한국의 전통 의상이라는 의미를 넘어, 각각의 인물이 가진 삶과 감정, 욕망을 함축적으로 담아내는 하나의 '시'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통 안에 새로운 다름을 심는 일이 변화와 혁신으로 이어지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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