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문가' 여야 9인 정치인 릴레이 인터뷰
"AI법 최소 연 1회 개정…부처 칸막이 없애야"
소버린 AI 투자엔 온도차…응용 AI엔 공감대
일자리 소멸보다 시급한 청년의 '경력 사다리'
AI는 몇 달 단위로 진화하지만, 정부 조직과 예산, 법률은 과거의 속도에 머물러 있다.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으려면 여러 부처의 문턱을 차례로 넘어야 하고, 법이 만들어질 때쯤이면 규제하려던 기술은 이미 시장에서 '올드한' 기술로 평가받는다. 민간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속도를 내는 동안, 정부와 국회는 이를 뒷받침할 제도와 전문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아시아경제는 AI 기본법 시행 원년을 맞아 지난 두 달간 AI 관련 입법과 정책을 주도해온 'AI룰메이커' 9명을 차례로 만났다. 안철수·최형두·이광재·황정아·임문영·이주희·유용원·고동진 의원(인터뷰 순)과 인터뷰 당시 조국혁신당 의원이었던 이해민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이다.
과학계와 IT기업, 행정, 국방 등 이들이 거쳐온 현장에 따라 관점은 제각각이었다. 규제를 언제, 어느 수준까지 적용할지와 독자 파운데이션 AI 모델 대한 투자 우선순위를 놓고도 의견이 갈렸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일해서는 AI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진단에는 이견이 없었다.
국회의 인적 구성도 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술과 산업의 흐름을 미리 읽고 필요한 제도를 앞서 마련하려면 과학자와 경영자, IT 전문가가 국회에 더 많이 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각 상임위원회에 흩어진 AI 관련 법안을 통합적으로 검토하고 조정할 전문 입법 조직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사진 왼쪽부터)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이해민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 임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 아시아경제 제공
원본보기 아이콘AI 시대, 부처별 칸막이부터 걷어내야
이해민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은 의원 시절 AI데이터센터특별법(AIDC법)을 추진하며 건축과 전력, 환경 등 여러 부처의 이해관계가 얽힌 '부처 간 칸막이'를 절감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AI데이터센터법을 통과시키려고 거의 전쟁을 치렀다"며 "부처 간 칸막이가 너무 세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곳과 싸웠다"고 말했다.
부처 간 이견으로 일부 핵심 내용이 빠지면서 법안은 '반쪽짜리'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후 관계 부처가 전력 공급을 비롯한 후속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이 수석은 AI 인프라 구축처럼 여러 영역에 걸친 정책을 기존의 부처별 체계로 추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부처별로 업무가 나뉜 기존 정부 조직으로는 AI 시대에 등장하는 새로운 산업과 사업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청년 AI 전문가를 중소기업 현장에 파견하는 '한국형 현장배치 엔지니어(K-FDE)'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K-FDE를 제도화하기 위한 '산업 디지털 전환 및 인공지능 활용 촉진법 개정안'을 자신의 1호 법안으로 대표 발의했다.
임 의원은 "중소기업과 청년 교육·고용, 창업이 모두 연결돼 있어 교육부와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의 업무가 얽혀 있지만 어느 한 부처의 사업으로 분류하기 어렵다"며 "과거처럼 독임제 부처에 역할을 주고 앞으로 달리게만 해서는 답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AI법 매년 업데이트…입법 방식부터 바꿔야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AI 기술의 발전 속도를 제도가 뒤따라가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입법자가 기술과 산업의 흐름을 먼저 읽고 혁신이 뻗어나갈 길을 제도로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을 보면 국회가 산업과 기술의 흐름을 미리 보고 혁신을 가로막을 규제를 선제적으로 없앤다"며 "우리도 과거지향적인 법에만 매달리면 현상 유지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미래지향적인 법을 만들어야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급변하는 기술에 맞춰 법률도 끊임없이 고쳐야 한다고 했다. 안 의원은 "AI 경쟁 구도는 매달 순위가 바뀔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며 "AI 기본법도 최소한 1년에 한 번은 개정해야 기술 발전을 따라가고 산업의 발목을 잡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년마다 손보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국회의 현실적인 입법 속도를 고려하면 적어도 연례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률의 개정 주기뿐 아니라 규제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의원은 "처음 시작하는 산업에 규제부터 설치해놓고 뛰라는 것은 마라톤 선수에게 모래주머니를 달아주는 것과 같다"며 AI 기본법의 고위험 AI 관련 규제를 3년간 유예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위험성이 큰 영역에는 '핀셋 규제'를 적용하되, 정부가 제시한 기준을 성실히 지킨 기업에는 책임을 덜어주는 면책제도를 마련하고 규제샌드박스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은 국방 제도 역시 AI 발전 속도에 맞게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 무기체계는 요구 성능을 모두 충족할 때까지 개발과 도입에 장기간이 걸리지만, AI 기술은 수개월 단위로 바뀌기 때문이다. 유 의원은 "요구 성능에서 단 1%만 부족해도 도입하기 어려운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당장 80% 수준이라도 활용할 수 있다면 먼저 현장에 투입하고 지속적인 성능 개량을 통해 목표를 채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소프트웨어 중심 무기체계 특별법과 국방첨단전력사업법 등을 발의했다.
소버린 AI에는 이견…"승부처는 응용 AI"엔 한목소리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이른바 '소버린 AI'를 둘러싼 견해는 엇갈렸다. 안철수 의원은 "우리는 도스나 윈도우를 만들지 않았지만 이를 활용해 아래아한글과 V3, 네이버·다음을 만들었다"며 미국·중국과 같은 모델 규모 경쟁을 벌이기보다 오픈소스를 활용한 응용 AI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임문영 의원은 "소버린 AI에 지나치게 투자하는 게 아니라 턱없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며 독자 모델을 국가 존립과 국내 AI 생태계의 기반으로 봤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도 "해외 기업이 갑자기 기술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이재명 정부가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추진하는 것은 잘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가 단계별 평가를 통해 경쟁력 있는 모델을 추린 뒤 이를 오픈소스로 공개해 산업계가 함께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도 내놨다.
투자의 우선순위에는 이견이 있었지만 응용 AI가 한국의 승부처라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황정아 의원은 "실제 가치는 도메인 특화 AI에서 나올 것"이라며 의료·국방 등 분야별 전문성과 AI의 결합을 강조했다. 이광재 의원도 "한국은 원천기술보다 응용기술에 강한 나라"라며 "제조업에 AI를 붙여 제조업 최강국이 되고, 교육·의료·문화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자리 종말보다 먼저 온 청년의 경력 단절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AI가 모든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공포가 과도한 규제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 마차보다 빨리 달리지 못하도록 제한했던 영국의 '붉은 깃발법'을 사례로 들었다. 마차를 모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지키려다 자동차 산업의 혁신을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최 의원은 "고위험 AI에 대한 규제는 필요하지만 일자리 감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기술 발전 자체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자리의 전면적인 소멸보다 청년들이 전문성을 쌓을 첫 단계가 사라지는 문제를 더 시급하게 봤다. 그는 "AI를 활용할 수 있는 시니어는 팔이 여러 개 생긴 것처럼 역량이 커지지만, 주니어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며 "성장하기도 전에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는 상황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난 주식 다 빼서 은행으로 간다"…최고 13.5% 적...
AI가 신입의 반복 업무를 대신하면서 기업이 경력직만 찾게 되면 청년들은 실무 경험과 전문성을 쌓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이 의원은 일자리가 사라진 뒤 대책을 마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청년들이 안전하게 새로운 직무로 이동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새로운 경력 사다리를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전영주 기자 ange@asiae.co.kr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