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 발달과 채용 현장에서 스펙보다 직무 역량 중시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이른바 '좋은 학벌'이 개인의 능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데에는 공감하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학벌 영향력이 크다고 느낀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전국 만 13~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국 사회 내 학력(학벌) 관련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국 사회에서 명문대 졸업 등 '좋은 학력(학벌)'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68.0%로 높게 나타났다. 이는 대학원 재학·졸업자(82.8%)와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재학·졸업자(76.3%)에서 좋은 학력의 필요성을 높게 평가하는 특징을 보였다.
좋은 학력이 필요한 이유로는 '취업·승진 등의 기회가 많아질 수 있다'는 응답이 61.1%(중복응답)로 가장 높았고, '학벌에 따라 차별이 심한 사회여서'(52.9%), '스펙·이력서에서 남들과 차별화될 수 있어서'(49.3%)가 뒤를 이었다.
'더 좋은 인맥을 만들 수 있어서'(46.4%), '연봉 협상에 유리할 수 있어서'(45.5%)라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학벌을 개인의 지식이나 역량 그 자체로 보기보다, 사회생활에서 더 많은 선택지와 기회를 확보할 수 있는 배경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학벌의 영향력을 체감하는 수준도 높았다. 전체 응답자의 81.1%가 '한국 사회는 명문대 등 좋은 학벌을 갖춘 사람을 우대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학벌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경향이 있다'는 응답도 75.6%에 달했다. '실제 능력보다 학벌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응답 역시 74.2%로 높은 수준이었다.
학벌이 영향을 미치는 영역으로는 취업(68.6%, 중복응답)이 가장 많이 꼽혔고, 인맥(56.2%), 연봉 협상(47.0%), 직장 내 인사·고과평가(45.4%)가 뒤를 이었다. 입사 과정뿐 아니라 입사 이후의 보상과 평가에도 학벌이 영향을 미친다고 바라보는 시각이 적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만 '좋은 학벌'이 곧 '개인의 실력'을 의미한다고 보는 시각과는 거리가 있었다. 좋은 학력의 필요성을 낮게 평가한 응답자들은 '좋은 학벌이라고 해도 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54.1%, 중복응답), '좋은 학벌이라고 취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48.4%), '실무 역량과 학벌은 별개다'(41.3%)라는 점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엠브레인 측은 "학벌이 현실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개인의 능력을 보증하는 기준은 아니라는 인식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전체 응답자 기준으로도 '명문대 등 좋은 학벌을 갖춘 사람은 실제로도 일을 잘하는 경우가 많다'는 응답은 36.2%에 그쳤다.
이처럼 학벌의 영향력을 크게 체감하면서도, 학벌 중심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부정적인 편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56.9%가 '우리 사회에서 학벌주의가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고, 절반가량(50.7%)은 '학벌주의가 불공정하다'는 데 공감했다. '요즘 학벌은 개인의 노력보다 부모의 경제력이나 집안 환경에 더 좌우된다'는 응답도 64.2%에 달했다.
그런데도 학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학벌주의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74.9%, 동의율)이라는 데에 높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고, '한국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학벌이 중요하다'(57.2%), 명문대 등 좋은 학벌을 갖춘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59.2%)는 응답도 과반을 차지했다.
이 같은 상반된 태도는 자녀의 학력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났다. '자녀가 명문대에 진학해 좋은 학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응답이 65.0%였고, '자신의 학력이 좋지 않더라도 자녀만큼은 좋은 학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응답도 63.9%에 달했다.
한편 AI가 확산되면서 학벌을 바라보는 기준에도 변화가 감지됐다. 전체 응답자의 45.9%가 AI로 인해 사회 전반에서 학력·학벌의 중요성이 이전보다 감소하고 있다고 느꼈으며, 이전보다 증가했다고 평가한 비율은 14.4%에 그쳤다.
특히, '대학 진학보다 실용적 기술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응답이 60.6%에 달한 점이 눈에 띄었다.
가상의 진학 상황에서도 학교의 명성보다 취업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방 소재 2~3년제 대학을 졸업하는 대신 취업 확률이 거의 100%인 경우'를 선택한 응답이 32.2%로 가장 많았던 반면, 취업 여부가 불확실한 '국내 최상위권 대학(SKY)'과 '해외 아이비리그 수준 명문대'를 선택한 비율은 각각 11.8%, 14.0%에 그쳤다. 학벌의 상징성보다 취업 가능성과 같은 실질적인 결과를 중요하게 고려하는 태도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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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 학력이나 학벌보다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요소로는 'AI 활용 능력'(43.4%, 중복응답)과 '문제 해결 능력'(42.8%)이 가장 많이 꼽혔다. 이어 창의력·아이디어 도출 능력(35.2%), 데이터 분석·활용 능력(35.0%) 순이었다. 미래 경쟁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학문 분야 역시 첨단 학문 계열(AI·IT 등)이 67.4%(중복응답)로 가장 높았고, 공학 계열(54.9%)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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